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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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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참사 ‘권민’이 온다

등록 2004-05-06 00:00 수정 2020-05-02 04:23

소식 뜸하던 ‘남한통’이 남북장관급회담 단장으로… 북의 대남 라인 세대교체인가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아니, 그 권민 참사가 장관급 대표로 나온다고….”

북한이 4월30일 남북장관급회담의 단장을 김영성 내각 책임참사에서 권호웅(45) 내각 책임참사로 교체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남쪽의 지인들은 무릎을 쳤다. 반갑기도 하고, 그간 안부가 궁금했던 참이었다. 그는 한동안 공개, 비공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무성한 소문을 달고 다녔다. 남쪽에서는 ‘권민’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그를 둘러싸고 숙청설이 나돌기도 했고, 모처에서 ‘근신 중’이라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북한과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을 맺어온 남쪽 인사들에게 그는 대남사업의 신뢰할 만한 창구였다. 그만큼 남쪽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정상회담 실무자로 맹활약

그는 90년대 중반 남북간 첨예한 긴장이 흐르고 있을 때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다양한 남쪽 인사들을 접촉해왔다. 1959년생인 신임 권 단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미주·유럽담당국장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지냈다. 권 단장은 1999년 1∼2차 차관급 회담과 2000년 1∼5차 정상회담 준비접촉에 대표로, 1∼5차 장관급회담 때는 보장성원 등으로 회담에 참가했다. 그는 특히 특히 남북 정상회담 때 무게있는 실무자로 남북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맹활약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7월 서울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 참석 때부터 권호웅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96년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 심포지엄’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그 뒤 대남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98년 남쪽 주요 언론사 대표들의 방북 추진을 비롯해, 99년 금강산 솔잎혹파리 방제대책협의,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준비회담 등을 주도했다. 같은 해 남북차관급회담 개최를 위한 3차례의 비공식 접촉에서는 전금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 부위원장을 수행했다. 2000년 9월에는 김용순 노동당 중앙위 비서의 서울 방문을 보좌했다. 2003년 1월 임동원 전 대통령 특사의 평양 방문 때는 림동옥 당 통일선전부 제1부부장 등과 함께 평양 순안공항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뒤 한동안 그를 만났다는 남쪽 인사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과거 10여년 동안 주요 대남 라인들이 소문없이 자취를 감춘 경우가 많다보니, 다들 그의 운명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실리중심, 남북관계에도 순기능

일각에서는 권 참사가 40대 중반이라는 점에 주목해 북한의 대남 라인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 13차 장관급 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장관급회담 대표 가운데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과 허수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총사장을 빼고 신병철 내각 참사와 김춘근 민경련 서기장으로 교체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제11차 장관급회담을 앞두고는 조성발 내각 사무국 참사와 김만길 문화성 국장 대신에 최영건 건설건재공업성 부상과 전종수 조평통 서기국 부장을 바꾼 바 있다. 이번 단장 교체로 이제 대표단 모두가 바뀐 셈이 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전임 김 단장은 평소 고혈압으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건강 때문에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4차 남북장관급회담은 5월4∼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다.

북한의 세대교체 바람은 거세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통해 대의원을 물갈이했다. 대남 교류협력에 경험이 풍부하거나 경제실물에 밝은 인사들이 충원됐고, 내각의 주요 자리를 꿰차 앉았다. 이런 맥락에서 대남 회담 관계자들의 세대 교체도 자연스럽게 비친다. 북한이 실리를 중시하는 사회로 급변하면서 세대교체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세대교체는 남북관계에도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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