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1회]
정부 최종 사업승인으로 개성공단 개발 본격 시작… 경제발전 · 신뢰회복 등 남북의 운명 걸려
이런 와중에 터진 용천역 폭발사고는 남북경협의 무게를 더해준다. 이번 사고는 절망적인 경제난의 늪에 빠진 북한의 열악한 사회기반시설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이런 현실이 방치된다면 제2, 제3의 용천 폭발사고가 잇따를 것이며, 남한 또한 그 후유증으로 심한 몸살을 앓지 않을 수 없다.
남북경협은 북한에 일방적인 지원이나 호혜가 지속적인 상생의 관계를 구축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더는 머뭇거릴 때가 아닌 듯하다. 용천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모처럼 한목소리로 모아진 북한 돕기 열기가 남북경협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돌파구의 계기로 작용하기를 염원하면서 은 앞으로 7차례에 걸쳐 남북경협 기획을 연재한다.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한 남북경협 환경을 다각적으로 진단하면서, 앞으로 북한의 안정적 변화를 지원하고, 남한 기업의 생존 돌파구 마련을 위한 전략을 독자들과 함께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
▣ 글/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 협찬/ 한국토지공사
‘개성공단’
북한 주민들에게는 ‘희망’을 상징하는 단어다. 그들은 ‘개성공업지구’라 부른다. 앞으로 공단을 잘만 키우면 그들도 ‘잘먹고 잘살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가 개성공단이라는 넓은 지역을 내줬다. 군사분계선에 제일 가까이 있고, 군사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지역이다. 인민 군대가 거기 포진하고 있다가 다 나왔다. 그리고 그 땅을 공업지구로 선포했다.” 남쪽에서도 매우 낯익은 인물인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이 얼마 전 중국에서 국내 인사들을 만나 한 말이다.
북한의 파격적인 조처는 개성공단에 걸고 있는 기대의 깊이와 크기를 잘 보여준다. 과연 남쪽이 군사요충지인 파주 문산의 군시설들을 다 철거하고 2천만평 넓이의 땅을 북한 기업들에게 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놀라운 태도 변화로 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북한은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개성공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남북 당국간 4개 경협합의서를 맺는가 하면, 개성공업지구 통행·통신·통관·검역에 관한 합의를 하고, 개성공업지구 10개 하위 규정을 제정했다.
“자신 없지만 반드시 성공해야”
최근에는 분양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토지임차료 계약을 마무리지었다. 개성공단의 평당 분양가가 15만원 아래로 정해져 한국 기업들이 입주하면 이익을 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경제특구다운 특구를 운영해보는지라 앞으로도 남북간 이견은 끊임없이 나올 것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핵 문제 등도 여전히 태풍의 눈으로 개성공단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남쪽 정부나 사업자 그리고 기업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이미 많은 난관을 헤쳐왔고, 앞으로의 걸림돌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이제 개성공단의 운명은 남쪽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정부와 공동 사업자인 한국토지공사(사장 김진호)와 현대아산(사장 김윤규)이 개성공단을 대하는 자세는 신중하다 못해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그만큼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끼치는 영향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경제적 차원을 넘는다는 얘기다. 당장은 첫 단추를 잘못 꿸 경우 남북경협을 비롯해 남북관계 전반을 망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솔직히 개성공단 사업이 과연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회의적인데, 저희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공해야 할 사업이고, 그 점에서 정부가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통일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말이다. 그는 “앞으로 개성공단이 남북을 연결하는 물류 중심지로 발전해 경제 공동체 건설을 선도하는 남북경협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통일부는 4월23일 개성공단 100만평에 대한 최종 사업승인을 했다. 그간 최대 난관이었던 토지임차료 협상이 4월13일 타결되면서 개성공단 개발은 일단 시위를 떠난 활처럼 거침없이 내달릴 기세다. 2007년까지 모두 2205억원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한국토지공사가 1110억원을 내놓는다. 내부 기반시설 경비는 정부가 떠맡는다. 정부는 1095억원을 남북경협기금에서 무상으로 지원한다. 입주 기업들의 원활한 사업 추진의 관건인 전력·통신 등은 한전, KT, KTF, 온세통신 등이 남북협력기금을 장기 저리로 대출받아 컨소시움으로 입주 기업들의 생산활동을 지원한다.
개성은 나진 · 선봉과 다르다
곧바로 시범단지 1만평에 대한 터닦기 공사가 시작됐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의 상징이었던 개성 지역이 남북경협의 상징으로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 셈이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칼을 녹여서 보습을 만든다는 표현을 쓰는데, 총을 잠시 내려놓고 삽을 함께 만드는 일들이 남북간에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토공은 5월 말까지 시범단지 입주업체를 선정하는 분양을 끝내고, 6월까지 시범단지 부지조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나머지 100만평 분양과 함께 10여개 기업이 처음으로 시범단지에 입주하게 되고, 빠르면 연말에는 최초의 개성공단 생산품을 볼 수 있게 된다.
앞으로도 여러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제특구’ 성공 욕심이 개성공단의 순풍을 예고한다고 지적한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중국은 그에게 시샘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는 2000년 5월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북한 사회 내 신사고 기풍을 불어넣었다.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높이에서 보고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그 뒤 2001년 1월 김 위원장은 다시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상하이 특구를 모델로 경제특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는 개성공단이나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가 2000년 8월9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을 만나 개성 지역에 우선 2천만~4천만평 규모의 공업지구를 건설하기로 약속한 직후였다.

이어 북한식 시장경제의 첫 신호탄으로 일컫는 2002년 7월의 7·1 경제관리개선 조처가 나오고, 9월에는 신의주를 행정특구로 지정하는 등 세상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조처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김 위원장은 신의주 특구를 홍콩과 같은 화려한 세계적인 금융·무역·오락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지난 4월21일 베이징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도시 톈진을 들른 것도 그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내 기업의 ‘중국 엑소더스’ 해결책
그랬다. 그는 중국이 경제특구를 발판으로 고속 경제발전을 이룬 데 대해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나라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일념 아래 다들 경제특구를 만든다. 이는 사회주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당장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제한적인 공간에서 국지적인 자본주의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그를 안도케 했다. 북한은 1991년 12월 북쪽 변방지역인 나진·선봉에 자유무역지대를 세웠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특구가 워낙 오지에 자리잡은데다, 외국인들의 투자 입질을 견인할 만한 과감한 유인책이 없어서다.
중국의 성공한 초기 경제특구들은 하나같이 투자를 할 만한 잘사는 이웃 가까이에 자리잡았다. 광둥성의 선전은 홍콩, 주하는 마카오와 가까이 붙어 있고, 푸젠성의 샤먼특구의 건너편에는 대만이 마주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개성공단은 경제특구 적지로 평가받는다. 개성공단은 서울에서 불과 70km, 인천에서 60km 떨어져 있다. 인천과 서울까지의 신속한 물류 수송로가 확보되고, 강화~개풍 사이 연륙교가 건설되면 2시간 안에 인천항에 닿을 수 있다.
중국의 경제특구는 초기에 외국기술 전수, 외화 획득, 고용기회 창출 등이 강조되는 수출가공 지역적인 성격이 강했다. 즉,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고, 선진 경영관리의 경험을 습득해 특구 자체의 공업화를 진전시켜 이를 중국 경제 전체에 확산한다는 경제적 목적이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경제적 목적뿐 아니라 특구에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이를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와 결합해 이른바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체제 실험장으로 특구를 활용했다. 나아가 홍콩, 마카오 및 대만과의 경제통합 기반을 조성하는 통일의 목적까지 띠게 됐다는 게 이창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연구개발센터 소장의 설명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개성공단은 남쪽 기업에도 생존 차원의 국가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개성공단 개발의 중요성은 세계적인 ‘공장’인 중국의 용틀임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이미 중저가 섬유, 의류, 백색가전, 신발, 완구, 농업 등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의 투자유치 성공요인으로 값싼 노동력, 광대한 시장, 정부의 과감한 유인정책 등이 꼽힌다. 기업들이 마치 신기루를 좇듯 중국으로 줄달음치면서 홍콩과 대만에 이어 한국에서도 이미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수도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업체의 47.5%가 이미 중국에 진출했으며, 앞으로 2년 안에 중국으로 가겠다는 기업도 4곳 가운데 1곳에 달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국내의 높은 임금(66.1%)에 이어 노사관계 갈등(10.3%)이 엑소더스의 주요인이다. 이제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정보기술, 전자 등 첨단 업종들도 중국으로 이전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가 경쟁력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업인이나 경제 전문가들은 이제 북한과의 경협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 시베리아, 나아가 유럽에 진출하는 것을 국가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당장은 개성공단을 디딤돌로 삼아 대륙 진출의 시대를 대비하자는 제안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소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에서 “개성공단의 조기 조성을 통한 개성공단 진출은 중소기업의 새로운 돌파구이며, 새로운 희망으로 부각되고 있다”면서 개성공단은 중소기업에 구조조정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해외이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 투자는 곧 도산의 지름길’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폭넓게 퍼져 있는 현실을 빗대서다. 개성공단의 성과는 곧 남북경협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개성공단은 다기능 경협 창구다. 남북간 신뢰가 쌓이면 이곳에서는 이산가족들의 상시적 면회가 이뤄진다. 또 일반인들의 북한 관광 관문 구실을 할 테고, 남북 경제교류 협력의 전초기지 역할도 예정되어 있다.
남북경협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
아울러 개성공단 내 남북직교역사무소와 남북경협협의사무소가 곧 들어선다. 남북은 3월5일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올 상반기 안에 개성공단에 직접거래 확대 등을 겨냥한 경제협력협의사무소를 설치·운영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남북교역은 주로 신의주를 마주 보고 있는 단둥에서 협상과 거래가 이뤄지는 터라 기업인들의 불편을 가중하고 있다. 또 외국 선반을 이용해 생산품을 실어나르는 탓에 운송비용도 추가로 물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개성에서 직거래를 하면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또 북한 기업들은 남쪽에서 생산 주문을 더 많이 받게 돼 외화벌이나 고용창출 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남북 합의에 따라 남쪽 기업이 제3국 은행을 거치지 않고 남북의 청산결제은행을 통해 직접 결제할 수 있게 돼 결제비용과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남북경협의 발목을 잡아왔던 국내 정치의 지형도 바뀌어 남북경협 기업인들을 고무하고 있다. 기업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국가보안법 등 각종 법규도 경협 환경의 급변에 맞춰 새롭게 손질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4월30일 “17대 국회에서 당리당략에 얽매여 싸우지 않겠다”며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남북 경제협력과 인도적 배려를 통해 유연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선언했다. 남북경협의 과실이 한반도 전역에 퍼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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