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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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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거 참 신경쓰이네

등록 2004-05-04 00:00 수정 2020-05-02 04:23

제품 판로 개척과 전략 물자 반출에 규제 많아…‘핵 먹구름’이 개성공단 최대의 고비일 듯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개성공단 개발은 이제부터다.”

통일부, 한국토지공사, 현대아산 관계자들의 한목소리다. 통일부 관계자는 “앞으로 개성공단 개발이 일사천리로 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서로 절충할 것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나올 것이다. 조금도 놀랄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미 많이 겪었고, 또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큰 고비들은 넘겼지만 앞으로도 북한과 밀고 당길 작은 협상거리들이 많다는 얘기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생길 이런저런 돌발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북한은 산업단지 운영 경험이 부족하다. 제도적 장치가 미숙해 공단 운영 과정에서 애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경제제재로 미국에 수출 못해

하지만 정부는 북한보다 대미 관계에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통일부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의 판로 개척과, 전략 물자 등의 개성공단 지역 안 반출에도 다소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생산제품은 ‘북한산’으로 분류되어 미국에 바로 들어갈 수 없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로 높은 관세가 부과됨에 따라 사실상 미국 시장 진출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북한산 반입에 제한이 없는 국내 내수시장과 중국, 러시아, 동남아 등지로 판로를 열어야 한다. 유럽 등지는 미국보다 수출이 쉽지만 역시 높은 관세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들은 핵 걸림돌이 제거되고 북-미 관계가 근본적으로 나아져야 풀릴 수 있는 것들이다.

개성공단에 생산설비를 반출하는 것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사회주의권 나라들에 전략물자의 반출을 제한하는 규정에 따라 입주기업들은 생산 가동에 필요한 일부 민감한 부품은 개성공단에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금속·기계를 가공하는 공작기계와 검사장비, 전자·광학·레이저 관련장비, 미생물(유산균) 배양장비와 화학제품 설비, 첨단 산업설비와 소재 등은 반출이 어려운 설비와 부품으로 분류된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지역으로 장비를 반출해서 공장을 운영할 때 전략물자 반출 문제와 관련해서 국제적인 협조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통일부는 문제점이 예상되기 때문에 미리 챙기고 입주 희망 기업들에게 이런 것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해서 기업들이 사정을 감안한 투자를 하도록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초기 시범공단에는 이런 전략물자 설비와 부품이 필요하지 않은 섬유나 신발업체들이 우선 입주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부 전략물자에 걸리는 품목이라도 사실상 개성공단에 반출하지만 최종 사용자가 북한이 아니라 개성공단 내 한국 기업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정면 돌파한다는 구상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전력은 한국에서 공급하기로

당장은 정부와 개발업자들이 시범공단 내 전력지원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와 개발업자인 토공과 현대아산은 최근 한국전력을 공단 전력공급 업자로 선정해, 남쪽에서 생산한 전력 1만5천kW를 개성공단에 직접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입주가 시작될 시범단지에는 전신주를 세워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방식이 사용된다. 이 역시 미국을 의식해서 나온 절충안이다. 북쪽은 개성지역에 발전소를 세우는 방식을 줄곧 요구해왔다. 하지만 전력의 전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부시 행정부의 불편한 시각을 감안해 일단 남쪽에서 중앙 통제가 가능한 송전방식을 택한 것이다. 정부는 공단 입주기업이 늘어나고 전력사용량이 증가할 때는 개성지역에 변전소를 세워 남쪽 변전소와 송전탑을 연결해 전기를 공급하는 송금방식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핵문제가 여전한 상태에서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개성공단의 앞날은 핵 먹구름을 없애지 않고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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