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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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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병역거부자들을 위하여…

등록 2004-04-22 00:00 수정 2020-05-03 04:23

유엔 인권위 한켠서 ‘대체복무제 개선’ NGO 간담회… “실태조사 뒤 구체적 가이드라인 마련”촉구

제네바= 글 · 사진 정용욱/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jyuk@mail.skhu.ac.kr

유엔 인권위원회의 의제별 논의가 한창이던 4월5일,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장 한쪽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인권연맹(FIDH), 팍스 로마나(Pax Romana),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 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관련 국제 민간단체 참가자들의 공개 간담회가 열렸다.

‘최다 수감자 보유국’ 한국에 관심

이번 간담회는 그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해왔던 국제 인권 비정부기구(NGO)들이 한자리에 모여 병역거부자들의 인권 현황, 유엔기구의 역할 등을 논의하고 향후 민간단체들의 활동 방향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정부 관계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참가자들도 이날 간담회에 패널로 참석하여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2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역거부 수감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국제적인 관심 대상으로 부각된 한국 상황은 이번 간담회에서도 역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 참가단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과 공동으로 작성한 한국 상황 보고서를 통해 해마다 7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이 처벌받고 있으며 최근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이 증가하는 상황 등 국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을 설명하고, 유엔 인권조약 가입국인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어 이스라엘의 병역거부 상황을 조사한 국제인권연맹의 스테파니 데이비드씨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병역을 거부하는 ‘선택적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을 보고하고 이들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자의적 구금 실태와 형식적으로는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허점 등을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관련하여 각국의 모범사례(best practice) 보고서를 작성한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데이비드 마셜씨도 참석했다. 그는 2002년 채택된 결의안에 따라 지난 2년 동안 병역거부권 인정 및 대체복무제와 관련한 모범사례를 제출해줄 것을 각국 정부에 요청했으나 그 응답이 매우 적어 보고서 작성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찾기 힘든 ‘모범사례’수집은 그만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이 모범사례만을 수집할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권과 관련한 각국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집, 분석하여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국제회의에도 참석한 바 있는 인권학 교수 레이첼 브레드씨는 “병역거부권이 각국에서 실제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유엔인권위원회가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몇년째 ‘모범사례 찾기’에만 머물고 있다”면서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각국 정부의 의지 결여,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역할의 한계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와 함께 현재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엔 인권위원회 차원의 논의를 넘어 국제 인권 NGO 차원의 더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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