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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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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배치도는 진화한다

등록 2004-04-15 00:00 수정 2020-05-03 04:23

동유럽 · 중앙아시아 거점으로 해외 주둔군 재배치… 러시아 · 중국 견제 위해 군사전략적 띠 강화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크라스노즈나멘스크는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 인구 2만5천명의 이 도시에는 러시아의 모든 위성을 관리하는 우주군사센터가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월3일 러시아를 방문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크라스노즈나멘스크로 안내했다. 왜 러시아는 비밀 군사기지에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했을까. 러시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북태평양조약기구(NATO)의 동진(東進)에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와 손잡고 미국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러시아 턱밑까지 NATO 밀어넣다

3월29일 옛 소련 땅의 일부이던 발트해 3국인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와 동유럽권인 불가리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 등 7개 나라가 NATO의 공식 회원국이 됐다. 이로써 NATO 회원국 수는 26개국으로 늘어났다. NATO가 러시아의 턱밑까지 다가왔다.

미국은 세계전략 띠를 NATO 확대와 대테러전쟁 수행이란 두 가지 계기를 통해 만들고 있다. NATO 회원국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띠는 독일에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등으로 이어진다. 이 띠는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를 지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로 이어지면서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쪽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9·11 테러 이후 신설된 중앙아시아에 미국의 군사기지와 주일미군, 주한미군 등을 포함하면 미국의 군사전략적 띠는 유라시아를 관통하거나 둘러싸게 된다. 이 띠는 러시아와 중국이 유라시아와 발칸으로 진출하는 길목을 차단하는 전략적 거점이 된다.

NATO의 동진은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과도 맞물려 있다. 미군은 21세기 들어 새로운 안보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서유럽과 동북 아시아에 집중 배치된 미군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등으로 돌리고 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어느 곳에서 테러와 분쟁이 벌어지더라도 빠르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동서 냉전 시절 미국은 옛 소련과 그 동맹국의 서유럽과 일본·한국에 대한 공격에 대비해 서유럽과 동북아에 야포와 탱크 등으로 중무장한 대규모 병력을 붙박이로 주둔시켰다. 이 영향으로 아직도 유럽주둔 미군 11만6천명 가운데 7만여명이 독일에, 일본과 한국에 8만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기존의 대규모 주둔군 개념을 냉전시대의 낡은 개념으로 본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중무장 붙박이 미군을 대 테러전이나 소규모 국지전에 대비해 신속 배치를 할 수 있는 군대로 바꿀 계획이다. 예를 들어 미 육군은 중화기로 무장한 기계화 보병사단에서 스트라이커 여단과 같은 가볍고 기동성 있는 부대로 바꿀 참이다.

미국은 독일 주둔 미군 7만명 가운데 상당수를 동유럽쪽으로 옮길 계획이다. 미 국방부는 분쟁이 발생한 곳에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경무장의 소규모 정예부대를 루마니아에 두고 군 훈련시설을 폴란드에 세울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미군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기지를 두게 되면 흑해를 통해 중동 지역에 지금보다 휠씬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주둔군=기동성 부대’로 개념 바뀌어

미 국방부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건설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주둔기지를 훈련기지와 긴급작전을 위한 집결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러시아가 미군의 중앙아시아 장기 주둔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 2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미국은 중앙아시아에 위기가 발생할 때 원정기지로 사용할 작전지역들이 필요하지만, 항구적인 기지를 건설할 계획은 없다”며 무마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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