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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원가 열면 악취가 나리라

등록 2004-02-18 00:00 수정 2020-05-02 04:23

다 아는 비밀이 돼온 건설업체 비자금, 원가 공개로 꼬리잡힐까 필사적 저항

오랫동안 비자금 조성의 요람이 돼온 건축업계.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엄청난 비자금의 꼬리가 잡힐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건축노조 죽이기’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결국 비자금 때문이라는데….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자못 흥미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는 지난해부터 소비자·시민단체와 주택업계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붙었고, 일부 국회의원도 원가 공개 의무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원가 공개가 맞냐 틀리냐, 실효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벌어진 논리싸움은 평행선만 달리다 양쪽 모두 지친 상태가 됐고 원가 공개법안 제정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이렇듯 한동안 잠잠해졌던 분양원가 공개 논란은 지난 2월5일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상암지구에 짓고 있는 아파트 분양원가 내역 공개로 또다시 세간의 뜨거운 관심사로 돌아왔다.

탈세도 드러날 가능성 높아

사상 첫 분양원가 공개로 주택공사가 분양가의 40%나 ‘폭리’를 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입주 예정자들의 분양원가 공개 요구가 곳곳에서 빗발치고 있고, 주택공사 홈페이지에는 분양가 폭리에 항의하는 ‘사이버 민란’이 불붙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의 불씨가 되살아나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2일 모든 주공아파트 분양원가 및 공공택지비 공개를 요구했다. ‘40% 폭리’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 정서가 갈수록 퍼지자 정부도 즉각 불끄기에 나섰다. 건설교통부가 공공택지 공급가 공개를 의무화하고 주공아파트 건축비 공개도 검토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공공택지 공급가에 이어 건축비까지 공개될 경우 주공아파트 분양원가는 사실상 거의 그대로 노출된다. 이제 관심사는 민간 건설업체가 짓는 아파트로 불길이 번지느냐 여부다. 일단 정부는 “민영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어렵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민간 건설업체들의 분양원가 공개 반대 논리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한국주택협회는 “원가 공개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자유시장 경제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분양가 인하의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건설원가에는 택지비·자재비·인건비·금융비용 외에 기술개발 투자비·브랜드가치·위험회피비용 등 유무형 가치와 비용이 복합적으로 내재돼 있어 원가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논리 뒤편에는 또 다른 속사정이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로 건설업체의 ‘비자금’이다.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원가를 검증하는 절차가 뒤따르게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공사비 자료가 제출되고 ‘뜻하지 않게’ 비자금 조성 흔적이 여기저기서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필사적으로 원가 공개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막대한 분양가 시세차익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면 이것이 법인세 탈루 등 탈세 논란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국세청 세무조사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사실 건설업체가 기업의 비자금 조성 통로로 이용돼왔다는 건 ‘다 아는 비밀’이다. 기업의 정치권 불법자금 제공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형 건설업체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고, 어느 대기업 할 것 없이 건설업체를 하나씩 꿰차고 있는 건 비자금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까지 나온다. 건설업의 특성상 다른 업종에 비해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 때문이다. 일반 제조업은 원가경쟁력이 생명이라 단돈 10원이라도 장부에 기재하는 등 회계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 비자금 조성이 쉽지 않다. 하지만 건설업체는 전국에 수십, 수백개의 공사현장이 있고 개별 공사마다 수십개의 하도급 업체가 생겨나는데다 각 공사마다 자재나 설비의 조달원가가 제각각 달라서 원가가 투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 그런데 분양원가가 공개되고 검증절차에 들어가면 군데군데에서 비자금의 꼬리가 잡히는 등 예기치 못한 사태에 휘말릴 수 있다.

한 민간 건설업체 관계자는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비자금이 드러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분양원가 공개 요구를 하고 있지만 일단 원가를 공개하라고 할 뿐 원가에 대한 기준이 되는 잣대도 없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인하라는 애초 의도를 넘어 검증 과정에서 비자금이 들통나거나 구린 돈을 파헤치는 ‘엉뚱한’ 쪽으로 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셈이다.

인건비가 비자금의 원천이었으나…

분양원가 공개가 탈세 수사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가 검증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자재비와 노임 등 돈이 드나든 수십여개 계좌를 다 들춰봐야 할 것이고, 이 때 수상한 돈의 흐름이 포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칠 파장은 불을 보듯 뻔하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민간 건설업체의 경우 대체로 분양 가격의 10%를 분양 수익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각 사업연도의 소득에 부과되는 법인세의 경우 건설업체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쓰는 방법은 두 단계로 나뉜다. 우선 매출액을 실제보다 적게 분식회계한다. 이때 이용되는 게 공사 진행률이다. 아파트 건설공사는 1년 만에 끝나는 공사가 거의 없고 대개 여러 해에 걸쳐 이뤄지는데, 예컨대 올해 공사가 실제로 30% 진척됐다면 20%만 진행된 것으로 바꿔서 매출액을 줄이는 것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여러 개의 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공사 진행률을 조정해 매출액을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매출액 중에서 비용을 조정한다. 공사원가를 조정해 실제 매출총이익을 과소계상하는 방식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업체들이 분양원가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올리고 내렸는지는 공사현장의 모든 장부를 샅샅이 들춰보기 전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게 건설업체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원가를 조절하는 원천으로 사용되는 것이 주로 인건비다. 원-하청간의 계약과정에서 금액을 부풀린 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을 원청으로 다시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건비가 동원되는 것인데, 양쪽 거래장부를 꿰맞추기 위해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수와 지불임금을 부풀리곤 한다. “큰 건설공사 현장 하나를 털면 도장이 가마니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를 뜻한다. 그러나 이것도 이젠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올 1월1일부터 1개월 미만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도 고용보험이 확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모든 일용직 노동자들이 피보험자로 관리되면 투입인원과 지불임금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모든 임금 정보가 드러나면 옛날처럼 인건비로 매출액을 조작하기 어렵게 된다”며 “인건비가 훤하게 드러나 비자금 조성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보험 확대 적용은 건설업체의 비자금 조성 관행에 직격탄이나 마찬가지다. 민영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압력이 거세지고 건설현장에 고용보험까지 적용되면서 건설업체의 비자금 조성이 사면초가에 빠지고 있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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