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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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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아름다운 문화”

등록 2000-10-11 00:00 수정 2020-05-02 04:21

황홀했던 첫 달리기의 경험… 허리병을 이기고 무쇠다리와 생활의 환희를 얻다

나는 학창 시절에 잘 달리진 못했지만 운동하는 것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키가 좀 크다는 이유만으로 축구부에 들어가 기를 쓰고 운동을 한 적도 있다. 당연히 운동을 하면 지기 싫어했고 이기지 못하면 며칠씩이나 그 분을 삭이지 못하고 식식거리곤 했던 기억이 있다.

군복무 시절에 유도를 하다가 삐끗했던 허리가 복학 뒤에 다시 재발해 10년 이상 허리병으로 고생을 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나로선 항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몸과 40인치 가까이 늘어난 허리를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갖은 운동을 시도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재발되는 허리병으로 의지를 꺾어야 했다.

꼬집어도 감각이 없던 엉덩이

왼쪽 종아리는 운동 부족으로 정구공보다 더 말랑말랑해져 최악의 상태였는데 조금만 걸어도 밤에는 경련으로 몇번씩 일어나 다리를 주무르다 새벽을 맞곤 했다. 신혼 초에는 조그마한 단독주택에서 셋방을 얻어 살았는데 화장실은 대문 옆에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통에서 물을 내리는 수세식이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갔는데 허리와 다리가 너무 당기고 아파 앉을 수 없었다. 너무 급한 나머지 물이 내려오는 파이프를 잡고 그냥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았는데 나중에는 초죽음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의사로부터 왼쪽 허벅지에서 엉덩이 사이에 있는 신경이 손상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수많은 재활 치료를 받았으나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엉덩이는 꼬집어도 전혀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91년 여름 여러 가지 이유로 첫 직장을 떠나 지금의 직장인 여수의 금호피앤비화학으로 옮겼다. 본래 석유화학단지는 공해가 심하다는 인식이 있어 다소 걱정을 했지만 시민들이 거주하는 공단 외 지역은 오히려 한적한 시골만큼이나 공기가 맑고 쾌적한 살기 좋은 아담한 도시였다. 푸른 잔디와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사택 뒤로 나지막한 고락산 정상으로 등산로가 나 있고 그 사이로 포근히 안긴 아름다운 여천경기장이 있다.

하루는 퇴근 뒤 여천경기장을 찾았다. 아이 몇명이 공놀이를 하고 가족 단위로 나온 어른들은 그냥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유독 내 눈에 확대돼 들어온 것은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한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 몇 바퀴를 돌더니 내려가시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허리가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나이가 드신 분이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자극을 받아 가슴속 깊이 잠자고 있던 운동에 대한 일렁임이 생겨났다. 나도 저렇게 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하자 나의 대뇌에서 바로 지령이 내려왔다. 그래, 너도 뛸 수 있어! 뛰어봐! 나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놓고 가까스로 두 바퀴를 뛰었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데 차가운 물줄기가 아직 거칠고 뜨거운 숨이 터져나오는 심장을 식히며 흘러내릴 때는 얼마나 시원하고 황홀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부터 신발장에서 긴 잠을 자고 있던 운동화를 꺼내 신고 달리기 시작했다. 밤에는 다리 경련 때문에 수시로 잠을 설쳐야 했지만 달렸다는 성취감으로 내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키 169cm에 80kg까지 육박하던 몸무게가 74kg 정도를 유지하게 되었고 생활에 조금씩 활력이 생기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혹시 사내 체육 행사라도 있을 때면 나도 한 자리 낄 만한 종목이 없나하고 기웃거리다가 잠시 대체 선수로 뛰기도 했다. 물론 한두번의 허리병 재발 징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달리기를 며칠 멈추거나 운동량을 줄여 회복이 되면 다시 달리곤 했다. 이렇게 달리기는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운동장 한복판에서의 키스!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당시에는 400m 트랙을 10∼15바퀴 정도 달리는 수준이었는데 서서히 달리는 양을 늘려 90바퀴까지 달리기도 했다. 마라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훈련을 하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영화 속의 포레스트검프가 달리듯 정신없이 열심히 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뛰었는데 발톱이 몇개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별 부상이 없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98년 경주마라톤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고 하루 전날 아내와 코스도 돌아보는 등 전의를 가다듬었다.

회사에서는 많은 격려와 함께 회사 마크가 인쇄된 유니폼에다 여비까지 지원을 해주어 고맙기도 하였지만 풀코스 완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열심히 뛰었다.

언덕 훈련이나 근력 훈련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트랙에서만 연습한 결과로 25km 이후부터는 거의 사투에 가까운 레이스를 펼치면서 다시는 이런 바보같은 달리기를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몇번이나 한 뒤에 4시간17분의 기록으로 완주를 했다. 너무 기뻐 그때의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진맥진하여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지만 마음만은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이미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되어 운동장 한복판에서 아내를 안고 키스를 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고서야 머쓱한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뛰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지금까지 나는 풀코스만 8번을 뛰어 모두 완주했다. 기록도 향상되어 3시간29분까지 단축시켰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참가해보고 싶어하는 보스턴대회 제한 기록(3시간20분 이내)을 통과하기 위해 매일 퇴근 뒤에는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여천경기장을 향했다.

마라톤을 하고 난 뒤 생활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우선 체중이 60kg에 허리는 30인치 바지가 헐렁할 정도로 줄었고 허리병으로 허약했던 하체가 무쇠다리로 바뀌었고 삶의 모든 곳에 자연스런 절제와 금욕이 찾아왔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아내가 적극적으로 환영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족간의 대화가 늘어나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져 신뢰가 깊어졌고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가족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자주 느끼게 된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도 우리 아빠가 최고라며 자기반 아이들에게 자랑이 대단하다. 첫 번째 완주 뒤에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JHL회(Jogging Club for Healthy Life)라는 달리기 동호회를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평소에 여천경기장에서 자주 만나 같이 달리던 사람들과 어울려 여수마라톤클럽을 조직했다. 휴일이면 최근 부쩍 많아진 마라톤대회를 찾아 전국을 여행하면서 달리기도 즐기고 평소에 인터넷 마라톤 사이트에서 글로 서로 인사와 격려도 하고 자기의 경험과 정보를 주고받던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 친구로 사귀게 되어 또 하나의 큰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의 뉴욕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 TV 뉴스시간에 잠시 본, 알베르토 살라자르 선수가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맨해튼대로의 마천루를 돌아 뽀얀 입김을 내뿜으며 후미 주자들을 꼬리처럼 달고 당당히 달리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한번 달려봤으면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20년이 지난 세월을 뛰어넘어 이룬 것이다.

달리기는 하나의 언어다

음악이나 미술도 그 자체로 충분한 언어이듯이 마라톤도 달리기 자체가 언어이며 단지 달린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전세계 누구와도 쉽게 친밀할 수 있음을 느꼈다. 결국 세계인이란 그리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달렸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건강만을 위해 달린다는 표현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길진 않지만 몇년간의 달리기를 통해 마라톤은 운동이라기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마라톤을 즐기지 않는 일반인들도 극기라는 마라톤의 숭고한 정신은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마라톤대회 개최자들은 이러한 마라톤 정신을 통해 다양한 사회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요즘 봇물처럼 터지는 국토사랑, 환경보호, 자기 고장 알리기에 마라톤이 들어 있고 장애인 마라톤, 로큰롤 마라톤, 마라톤 수기전, 마라톤 사진전 등과 같은 갖가지 주변 문화 장르와 연계한 대회들도 있고 마라톤을 뛰어넘어 철인경기나 100200km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대회는 물론이고 수천km를 몇 개월 동안 달리는 슈퍼 울트라마라톤까지 다양하다.

이렇듯 오늘날 마라톤은 과거와는 많은 변화가 있다. 과거의 마라톤은 마치 극도의 달리기 모험주의자들만의 전유물로 극도의 인내력을 통한 지구력을 강조해왔고 또 그렇게 인식되어져 왔지만 이제는 스피드마라톤을 추구하면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효과적인 훈련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자기의 의지와 운동화만 준비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가 된 것이다.

김종생/ 여수마라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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