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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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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공생, 해묵은 고름

등록 2001-07-18 00:00 수정 2020-05-02 04:21

방송사·제작사 갈등 법정 해결책 모색… 대중음악 개혁 맞물려 타협 반대 목소리

골깊어진 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 회장 엄용섭)와 문화방송의 갈등은 루비콘강을 건널 것인가. 지난 6월17일 문화방송이 <시사매거진2580>에서 연예인과 매니저간의 불공정 계약문제를 다루면서 불거진 양쪽의 대립이 좀처럼 화해 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수들에게 불리한 계약기간과 수익 배분 문제에 대한 보도가 나간 다음 연제협은 비상임시총회를 열어 뉴스데스크 머릿기사로 연제협에 사과방송을 내보낼 것, 제작자들과의 협의 하에 후속보도 제작할 것 등을 문화방송에 요구했다.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연제협은 7월7일부터 회원사 소속 연예인들의 문화방송 출연 거부로 맞대응을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서로 공생관계라 할 수 있는 양측의 대립이 장기화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7월10일 연제협 소속 연예인 115명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방송사의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양측의 공방은 제2라운드를 맞게 됐다. 기자회견에서 매니저들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문화방송 기자들을 밖으로 내쫓는 일이 발생하자 <…2580>의 후속보도가 제작되는 등 문화방송의 반격이 시작됐다.

“불공정 계약 있어도 노예는 아니다”

7월15일 방영된 연예인 계약문제의 후속보도를 기획한 <…2580>의 정관웅 부장은 “첫 보도가 편파적이거나 왜곡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능국 방송 제작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원만한 해결을 기다려왔다”고 후속보도 제작에 부담이 있었음을 비쳤다. 그러나 “일부 신문의 왜곡보도와 연제협의 광고 등을 보면서 방송의 정당성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할 필요를 느껴 후속보도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연예인들의 기자회견에서 담당기자들이 쫓겨나는 모습을 보면서 더이상 참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덧붙여 11일 기자회견이 후속보도의 결정적 이유가 됐음을 밝혔다.

15일 <…2580>은 세 가지로 주제로 나누어 보도하던 평상시와 달리 두 꼭지 분량의 시간을 털어 이번 문제를 보도했다. <…2580>은 지난번 보도를 간략하게 요약한 뒤 젝스키스 등 계약 피해의 새로운 사례를 제시하면서 첫 보도의 정당성을 알렸다. 또한 연제협쪽에서 제기한 문화방송 예능국 피디 금품수수설에 대해 반박했다. 반면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폐해를 지적하는 시청자들의 코멘트를 통해 방송사 역시 문제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중음악산업이 한 단계 발전했으면 한다”고 마무리해 연제협과의 갈등이 더이상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입장을 암시하기도 했다. 후속보도가 나가기 하루 전 방영된 <미디어 비평>에서는 ‘이익집단에 유린되는 언론자유’라는 제목으로 할렐루야 기도회 신도들의 서울방송 앞 점거시위, 베트남전 고엽제 전우회의 한겨레신문사 난입 사건 등과 연제협문제를 비교해 이번 문제가 문화방송의 전사적 문제가 됐음을 보여주었다.

방송사와 연예인들은 오랫동안 ‘이와 잇몸’ 같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민영방송인 서울방송의 등장 이후 예능국 피디의 능력은 곧 ‘섭외력’이라고 할 정도로 방송사의 스타모시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두 오누이는 왜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게 됐을까. 첫 보도에서 사례로 제시한 한스밴드와 H.O.T 멤버들의 폭로가 이미 오래 전에 보도됐던 내용임을 감안하면 정색을 한 연제협의 출연거부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연제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서희덕 대변인은 “곪았던 상처가 한꺼번에 터진 것일 뿐”이라며 오랫동안 문화방송에 쌓였던 제작자들의 불만을 토로했다. “평소에도 젊은 제작자들이 문화방송 피디들이 너무 고압적인 자세라고 말했는데 보도에서 금품수수까지 거론하며 모든 문제를 제작자 책임으로 돌리는 데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의 출연거부로 문화방송 예능국은 “보도국에서 뺨맞고 예능국에 화풀이한다”는 난처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 예능국에 대한 불만이 보도에 대한 대응으로 불붙은 셈이다. 연제협에서 언론중재위 등 법적 해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출연거부로 대응했다는 사실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왜곡된 대중음악산업이 갈등의 불씨

<…2580>의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체로 <…2580>의 보도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중음악 관련 시민단체나 평론가들은 결국 모두가 가해자인 싸움 가운데 피해자는 시청자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씨는 “가수들의 방송출연이 유일한 음반 마케팅이 된 현실에서 방송사는 대중음악산업을 왜곡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비판하면서 “음악과는 무관한 오락 프로그램에 가수들을 수시로 등장시키면서 필요 이상으로 스타에 의존해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강씨는 제작자들의 집단행동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들도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막무가내식 출연거부를 할 것이 아니라 금품수수 의혹 등 방송과 유착관계에서 빚어질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난 12일 연예인들의 출연거부 사태에 대해 성명을 낸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위원장 도정일)와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이하 대개련, 위원장 이동연)역시 “이번 사태는 그동안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포함한 각종 쇼·오락프로그램의 무분별한 확대와, 단순 흥미유발성 프로그램의 경쟁적 신설에서 오는 문화적 콘텐츠의 부족, 대안적 문화프로그램 개발의 부재에서 비롯된 자승자박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제작사와 연예인간의 불공정 계약이 지적될 만한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대중음악시장이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간과하고 잘잘못을 가르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말싸움과 비슷하다. 대중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대개련쪽은 방송 3사 가요순위 프로그램과 쇼·오락 프로그램 분석 보고서에서 “방송사가 제작의 편의를 위해서 립싱크를 강요해 비디오형 붕어가수들을 양산해왔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음악보다는 볼거리 중심으로 음악 프로그램이 구성되기 때문에, 제작사들은 가수 하나를 띄우는데 정작 음악 자체보다는 부대비용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음반기획사 스타뮤직의 권승식 대표는 “IMF 이후 댄서들의 출연료 지급까지 없어진 상태에서 가수 한팀이 방송에 한번 출연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0만원이 넘는 데 비해 출연료는 20만원이 채 안 된다”면서 “방송 때문에 천정부지로 올라간 제작, 홍보비용을 염두하지 않고 단순한 음반 수익 배분율만으로 제작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 프로그램의 가수 출연율이 47%(대개련 보고서)로 배우나 코미디언을 앞지른다는 것도 주목할 사실이다. 음반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인가수의 경우 방송출연 횟수가 음반판매와 직결되는 상황에서 가수들은 음악적으로 기량을 닦을 이유가 없어진다. 자연히 자생력이 없어지고, 방송출연이나 화려한 뮤직비디오 제작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패할 경우를 포함한 수억대의 모든 비용은 제작사가 감수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스타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지난해 20억원 가까운 소득신고를 한 조성모와 그를 키운 김광수씨는 불과 2∼3년 만에 수십억대의 돈방석에 올랐다. 바늘귀를 뚫는 낙타를 꿈꾸는 스타지망생들은 기꺼이 불합리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다.

타협하지 말고 등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7월14일 언론중재위원회에 문제의 보도 내용을 제소한 연제협은, 16일 오후 <…2580>의 후속보도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긴급하게 비대위 모임을 가졌다. 세시간 여의 난상토론이 이뤄졌지만 이 날 뾰족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한 회원사 대표가 “소강국면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빠른 시간 안에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쪽의 갈등양상이 여전히 혼미한 가운데 “타협점을 찾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 어느 평론가의 지적은 자못 흥미롭다. “문화방송은 순위 프로그램을 비롯한 상업적 오락 프로그램을 포기하면서 말로만 떠들던 공영방송으로의 길을 찾을 수 있고, 방송의 힘을 등에 엎기 힘들어진 기획사들은 가수들의 음악실력을 키우는 데 아무래도 더 신경쓰지 않겠나”라는 그의 예측은 대중음악판의 개혁을 요구해온 이들이 주장해왔던 내용과 유사하다. 타협점을 찾더라도 연예인 매니저와 문화방송이 호형호제하는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2580> 후속보도의 결론처럼 이번 사태가 대중문화산업의 성장통이 되려면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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