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판매의 경계 허물고 초고속 성장… 변칙영업도 많아 피해사례 속출
가뭄에 불볕 더위가 한창이던 6월12일 저녁 8시. 서울 한강로3가 ㅅ사 연수원 1층 대강당은 늦은 시각임에도 500석이 넘는 의자가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이 통로와 강단 앞 빈 공간까지 가득 메워 발디딜 틈도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신사, 분홍빛 티셔츠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자,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싶은 청년, 중년 부인….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고소득 전문직들도 설명회장 찾아
휘황한 조명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강단의 주인공은 감색 양복을 맵시있게 차려입은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그는 다단계판매(네트워크마케팅)회사의 대표격인 한국암웨이(대표 데이비드 어써리) 소속 독립사업자(IBO)인 임아무개씨. 임씨의 직함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날 행사는 다단계판매 사업설명회 자리였다. 임씨는 암웨이회사, 네트워크마케팅의 특징, 취급제품, 성공사례 등에 대한 설명을 유창한 말솜씨로 거침없이 이어갔다.
1차 설명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청중이 각양각색인 만큼 반응도 갖가지였다. 앞에서 둘쨋줄 가운데쯤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앞의 젊은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이 따위 것을 들으러오라고 해?”라며 벌컥 화를 내며 휑하니 자리를 떴다.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 쫓아가봤으나 거칠게 팔을 뿌리쳐 더이상 말을 붙이기 어려웠다. 반면 한 무리의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슬쩍 얘기를 엿들어보니 “잘 보라고∼이건, 분명 되는 장사야”라며 기대와 흥분에 설렌 목소리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불법 피라미드판매와 뒤엉켜 여전히 어두운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다단계판매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몸집이 2년마다 두배씩 쑥쑥 불어나는 양적인 성장에, 질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몸뻬 아줌마’와 실직자의 터전 정도로 알려져 있던 이 바닥에 고소득 전문직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데서도 질적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다단계판매 시장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이들에게는 의사, 변호사가 다단계판매업을 하고 있다는 일은 더이상 ‘뉴스’가 되지 못한다. 내놓고 하지 않아 가려져 있을 뿐 번듯한 직장을 가진 이들이 다단계판매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대기업 간부인 김아무개(39)씨도 지난해 초까지는 암웨이를 비롯한 다단계판매회사에 대해 여느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극도로 나쁜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암웨이 회원으로 가입한 아내의 권유로 몇 차례 설명회에 나가고 이모저모 뜯어본 뒤에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됐다.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고 조금만 노력하면 노후가 보장될 것이란 ‘확신’이 들어 지난해 10월 암웨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설명회에 몇번 가보고 직접 제품을 써봤더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지금까지는 직장생활에 찌들어 살았는데, 이젠 꿈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직간접적인 통로를 통해 200명가량을 암웨이 회원으로 가입시켰고… 이들의 암웨이 제품 소비량에 따라 보상을 받는데, 한달에 200만원 이상 됩니다. 3년 뒤면 유학갈 꿈을 이룰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그룹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병원의 내과 과장도 끼어 있습니다.”
시장규모 2조원대에 회원 수 400만명
장준기(36)씨는 8년 동안 다니던 항공사(정비업)를 그만두고 다단계판매업에 뛰어든 지 4년째를 맞고 있다. 장씨를 통해 회원으로 가입한 이들은 모두 1천명을 웃돌며 이 가운데 100명가량은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서고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 그는 회원가입 1년6개월 만에 월 20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됐으며 지난해 연봉은 5400만원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직장일을 병행하며 한달에 200만원을 넘게 벌고, 시작한 지 4년도 안 돼 연봉 5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린다면 누구나 귀가 솔깃해지게 마련일 것이다. 더구나 자본이 별도로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기막힌 돈벌이가 된다는 주장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또 누구나 이 사업에 나서기만 하면 그 정도 수입을 거둘 수 있을까.
다단계시장의 팽창속도를 보면, 놀라움을 넘어 두려울 정도로 빠르게 몸집이 불어나고 있다. 서울시에 등록돼 있는 다단계판매업체만 하더라도 4월 말 현재 315개에 이른다. 지난해 말 265개에 비해 50개나 늘어난 수준이다. 다단계판매시장 규모는 신고금액 기준으로 지난해 말 현재 1조8515억원이다. 전국적으로 2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98년 시장규모가 4천억원대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최근 2년 사이 해마다 두배씩 몸집을 부풀려온 셈이다. 서울시 및 업계 추정에 따르면, 올해는 시장규모가 3조원대로 뛰어오를 것으로 보인다. 다단계판매회사에 등록된 회원 수도 무려 400만명(중복가입 포함)선을 웃돌고 있다. 이 가운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경우는 40만∼50만명으로 추산된다.
다단계판매시장이 이처럼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배경으로 어려운 경제환경만을 꼽기는 어려워보인다. 실직을 당했거나, 그럴 위험에 처해 형편이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다단계판매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다는 통념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부분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이가 하루아침에 진로를 바꾸고, 심지어 고소득 전문직이 다단계사업에 서슴없이 발을 담그고 있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이와 관련해 변명식 장안대 교수(유통경영과)는 “다단계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가 곧 판매원이 된다는 점이고, 따라서 광고가 필요없고 제품을 써보고 믿게 된 사람이 권하면서 판로가 확대되는 경로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변 교수는 “다단계판매는 대량고객에 대한 일방적인 마케팅 활동 대신 특정고객 개개인을 겨냥한 마케팅을 수행하기 때문에 유통속도가 빨라 신생회사의 시장개척에 적합한 판매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호구지책으로 다단계판매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중간유통단계를 줄임으로써 최종 소비자에 득이 돌아가도록 한다는)다단계판매회사의 사업방식에 ‘공감을 느껴’ 이 사업에 나서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다단계판매방식은 유통과정을 일대 혁신하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기본원리는 혁신적 유통방식이라지만…
일반적으로 제품이 생산자에서 소비자의 손에 직접 전달되기까지는 총판, 도매상, 소매상을 거친다. 이런 복잡한 과정에서 인건비, 홍보활동(광고), 임대료, 관리비, 운송비, 유지비 등이 든다. 소비자는 생산자가 만든 제품의 원가에 이러한 비용까지 추가해 상품을 구입하는 셈이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유통비용은 대략 제품가격의 50%를 웃돈다는 게 마케팅의 상식이다.
반면 다단계판매에선 총판이나 다른 어떤 유통경로도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유통단계를 대폭 줄였다는 점에서 할인점과 비슷하지만 구매자가 상품을 쓰는 실소비자인 동시에 그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별도 광고없이 판매가 이뤄진다는 점도 특징이다. 쉽게 말해 유통단계를 줄이고 광고도 하지 않고 팔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원가에 가깝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혁신적인 유통방식인 셈이다. 여기에 소비자이자, 곧 판매원이기도 한 다단계판매 회원은 무점포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이는 다단계사업 설명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예이기도 하다.
영화 <친구>를 보고 나서 다른 친구들에게 참 재미있더라며 한번 보라고 소개했다고 치자. 그렇지만 어떤 영화사나 극장도 이런 ‘구전광고’(입선전)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왜? 영화사나 극장이 보상을 해주고 싶다 하더라도 구전광고를 했다는 검증을 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다단계판매회사는 이런 구전광고에 대해 보상을 해준다는 것이다. 회원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누구 소개를 받고 다단계회사 회원이 돼 물건을 사 썼다는 검증 및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보상체계는 곧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 결국 애초의 회원은 돈(구전광고에 대한 보상)을 벌고, 소개받은 회원은 좋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회사는 매출을 확대하는 기막힌 ‘윈-윈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단계판매회사에서 공급하는 제품이 질좋고 값싸다는 ‘확신’이 든 사람들로선 여기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굳이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좋은 제품을 사 쓰는 소비자 단계에 머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찮게 사업기회가 생긴다면 일석이조가 되는 것이 아닌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다단계판매망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자체가 하나의 자산으로 평생 유지될 뿐 아니라 자손대대로 상속까지 할 수 있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고 설명한다. 고소득 전문직들이 이 바닥에 뛰어드는 것에는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흔치는 않지만 빠른 시간 안에 억대 연봉을 벌어들이는 성공사례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은 참기 어려운 유혹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다단계판매의 원리일 뿐이다. 일부 긍정적인 싹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불법적인 다단계판매회사가 많아 교과서 논리는 책 속에 머무는 수가 많다. 또 합법적인 등록절차를 거치고 정상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라고 해도 일부 판매원들이 변칙적으로 영업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백아무개씨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지난해 11월 ㅅ텔레콤 다단계판매 회원으로 가입했다. 방범용 전화기와 선불 전화카드를 다단계방식으로 판매하는 회사였다. 백씨는 퇴직 뒤 조그마한 사업을 하다가 이미 2천만원가량 날린 상태였는데, 이곳 다단계판매회사에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난 6∼7개월 동안 백씨가 번 돈은 고작 130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정도나마 벌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단계판매로 납골당 분양도 이루어져
“회사쪽이 사전에 협의도 않고 전화기·카드값을 일방적으로 올려 제대로 사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는)회원 빼돌리기도 버젓이 이뤄졌고요. 그뿐이 아닙니다. 전화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반품 요구가 잇따르고 있어 쥐꼬리만큼 번 돈도 다 토해내야 할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회사쪽은 제때 반품을 해주지 않아 이래저래 죽을 지경입니다.”
백씨는 그나마 큰돈이 물리지는 않은 ‘작은 불행’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거액을 들여 고가품을 샀다가 제때 팔지 못해 낭패를 당하는 수도 많다.
최근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기묘한 형태의 다단계판매업도 나타나고 있다. 다단계방식을 통해 온라인 쇼핑몰을 분양하고, 신용카드 및 주유·선불카드를 팔고 있다. 콘도회원권, 여행권도 다단계판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납골당을 다단계판매방식으로 분양하려다 물의가 빚어지는 웃지 못할 일까지 있었다. 다단계로 팔지 못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대상품목이 급팽창하고 기기묘묘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교통범칙금대납 다단계회사라는 기상천외한 회사도 나타나, 전국에 지사를 둔 대형업체만 5∼6개에 이를 정도로 성업중이다. 이들 회사는 △운전 여건 △차종 △다단계 직급에 따라 10만∼30만원씩 연회비를 받고 범칙금을 몇번 내든, 금액이 얼마이든 일단 모두 대납해준다고 한다. 친척, 친구 등 회원을 모으면 2만원씩 소개비를 주는 다단계방식을 따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속임수 요소가 있다. 주정차 위반, 버스전용차로 위반, 갓길 통행, 불법 유턴 등 자주 일어나고 범칙금이 큰 것은 보상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다단계판매의 대상 및 방식이 다양해지고, 시장이 커지는 추세를 반영하듯 피해사례 또한 날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다단계판매와 관련,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피해상담은 모두 무려 1328건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12건의 3배를 웃돌고, 지난해 전체 1510건에 가까운 수준이다. 지난 99년 1∼5월에는 386건이었다. 알음알음으로 물건을 파는 다단계판매의 특성상 소개해준 사람의 얼굴을 봐서 그냥 넘기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사례는 이보다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합법 공간에서 날개를 펼칠 것인가
현실이 이러함에도 피해구제 장치는 대단히 미약하다. 오히려 법적 규제장치는 풀려가는 추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마련된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다단계판매회사의 자본금(3억원 이상) 및 후원수당(매출액의 35% 이내) 규정을 없애도록 하고 있다. 물론 그 대신 소비자피해보상보험을 의무화시키는 장치를 두도록 했지만 다단계판매회사의 난립 및 이에 따른 소비자피해가 급증할 것이란 걱정을 낳고 있다.
많은 논란을 거친 끝에 다단계판매회사는 합법적인 공간 안에 들어와 영업하고 있다. 또 그동안 성장을 거듭해 올해 매출이 3조원대에 이를 정도로 커져 있다. 유통단계를 줄이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업체까지 마녀사냥식으로 몰 수는 없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다단계판매업계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변칙적인 행태가 적지 않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어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어두운 이미지를 떨치기 어려워 보인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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