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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출신한테 찍히면 무섭다?

등록 2001-05-02 00:00 수정 2020-05-02 04:21

‘총동문회 성명서’ 둘러싼 여진 계속… ‘그들만의 뭉치기’에 대한 경찰 내부의 경계와 의심들

연판장이 돌았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만 돌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말고는 연판장을 돌릴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지난달 19일 ‘대우자동차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했다.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에 대한 질타와 염려를 겸허히 받아들여 반성하겠다.” 상부의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국민에게 사과할 수 있는 경찰 내 집단도 그들뿐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전반의 ‘경찰 흔들기’는 일선 근무자들의 사기를 극도로 저하시켜 국가와 국민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성하면서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군 복무 대신 ‘시위진압 부대’근무

그들의 이름은 바로 ‘경찰대학 총동문회’다.

경찰대 동문회의 성명서 파동은 이제 거의 잦아들었다. 하지만 사태가 몇몇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경찰 내부의 문제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왜 하필 경찰대 동문회인가. 그리고 그들은 경찰 조직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 이처럼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 이번 사태의 한가운데 그들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분명 가치있는 분석대상이다.

그들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들 사이에 동일성과, 이에 따른 연대감이 매우 강하다는 걸 뜻한다. 경찰의 인력채용 경로를 살펴보면 경찰대 출신들의 동일성과 연대감이 얼마나 강한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정부 조직 가운데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인력을 채용하는 게 경찰이다. 보편적인 방법은 공채시험을 거쳐 들어가는 것이다. 순경으로 들어가 가장 아래 직급에서 출발하거나 간부후보생으로 들어가 경위부터 시작하는 경우다. 공채는 이 두 가지 방법이 전부다. 또다른 방법은 특채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고시특채로 경정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있다. 또 법학, 외국어 등 대학 전공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경장 또는 경사 특채가 이뤄진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특채도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렇다면 경찰대 출신들은 어떻게 채용되는 걸까.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특채다. 경찰이 되는 데 공개경쟁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대 졸업장이 이를 대신한다. 졸업식과 함께 자동으로 경찰 조직의 중간간부인 경위가 된다. 경찰에 들어와서도 2년 동안은 군복무를 대신해 모두 시위진압 부대에서 근무한다. 채용방법은 가장 독특하지만, 채용되는 숫자로 따지면 순경 공채 다음으로 많은 연 120명이다. 해마다 50명 안팎으로 배출되는 간부후보생보다는 2.4배가 많다. 1985년 첫 졸업생을 시작으로, 현재 1840명이 경찰 조직 안에 포진해 있다.

다른 방식으로 경찰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이들은 만 19∼20살 때부터 시작해 4년 동안 똑같이 교육받고 생활하고 합숙한다. 설령 순경 출신이나 간부후보생 출신들이 기수별로 모이거나 출신학교별로 모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느슨한 임의 조직일 뿐이다. 그러나 경찰대 동문회는 경기도 용인의 경찰대 교정 안에 경위 한 사람이 여직원과 함께 상근하는 별도 사무실을 두고 있다. 다른 출신들이 경찰대 출신들만큼 강한 연대를 형성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비경찰대 출신들의 ‘위화감’

공조직 안에 동일한 배경을 가진 별도의 이너서클이 존재할 때, 그 조직은 반드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세력이 크고 막강하다면 때론 공조직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경찰대 출신들에 대해 비경찰대 출신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감정이 ‘위화감’과 ‘피해의식’인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우아무개(34) 경장은 한 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체질에 맞지 않아” 5년 전 순경으로 입문했다. 그는 경찰에 늦게 들어온 걸 만회하기 위해 승진에 꽤나 열을 올리고 있다. 2년 만에 시험을 치러 경장으로 승진했고 내년에는 경사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 되지 않겠나.” 그러나 그가 최종목표로 삼는 계급은 일선서 과장급인 경정이다.

오늘날 응시자의 98% 가까운 4년제 대졸자들이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순경이 되지만, 우 경장의 목표마저도 그들 사이에선 ‘이루기 힘든 꿈’이다. “순경 출신 치안본부장까지 배출한 조직이지만 이젠 순경 출신 경무관이나 치안감은 물론 총경도 나올 수 없다. 더는 우리에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스로 포기하는 건 출발지점이 달라서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아무개(36) 경위는 본청에서 근무한다. 20대 후반에 간부후보생으로 들어와서 아직 그대로다. “순경 출신들보다 사정이 낫지만 우리도 경찰대 출신과 출발지점도 다르고 기회도 다르다.” 간부후보생들은 평균 나이가 28∼29살이다. 대학 졸업하고 군대 다녀와서 시험준비 하다보면 어느새 그 나이가 되고 만다. 23∼24살에 경위로 임관하는 경찰대 출신보다 5살쯤 많은 나이다.

경찰대 출신들은 병역을 대신해 2년 동안 기동대 소대장으로 일하면서 이 기간을 경찰경력으로 인정받는다. “기동대에 근무하면 대부분 표창을 받는다. 승진시험에서 근무성적과 교육훈련성적이 40%나 되기 때문에 경찰대 출신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승진이야 좀더 일찍 할 수도 있고 늦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늦게라도 올라갈 자리가 남아 있지 않다면 사정은 심각해진다. 김 경위는 “눈에 보이는 조건의 차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의 차이가 훨씬 크다”라고 했다.

우 경장이나 김 경위의 말이 흰소리가 아니라는 건 승진자 수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서울경찰청의 경감 승진시험의 경우 대개 응시자의 30% 정도가 경찰대 출신이지만, 합격자 가운데는 70% 이상이 그곳 출신이다. 나머지 20%를 간부후보생 출신, 10%를 일반 출신 등이 각각 차지한다. 머지않아 경찰대 출신들이 경무관급 이상 고위계급에 올라갈 때가 오면, 고위계급의 편중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귀한 자리일수록 남을 배려할 여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급자여도 눈치가 보인다”

경찰 조직 안에서 최고 엘리트를 ‘자임’해온 고시 출신들조차 경찰대 출신들은 경계의 대상이다. “경찰청 안의 계장 자리는 사실상 경찰대 출신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곧 과장도 되고 국장도 될 것이다. 우리도 그들과 부딪치는 게 싫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경찰대 출신이 하급자여도 눈치가 보인다. 그들 한 사람한테 찍히면 경찰대 동문들 전체에게 씹히는 거다.” 한 고시 출신 경찰청 간부는 “기수별 대표들이 결정하면 전체 의견이 되는 그 메커니즘이 무섭다”고 말했다.

어차피 한 조직 안에서 부대껴야 하는 처지에서 다른 구성원들이 느끼는 위화감과 피해의식, 경계심이 경찰대 출신들에게도 맘편할 리는 없다. “우리도 처신하기가 어렵다. 처음 부임하고 나면 나이든 하급직원에게 지시 하나 내리는 것도 마음 고생이다. 더구나 그들은 우리가 그곳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곱지 않게 대한다.” 한 경찰대 출신 간부는 “경찰대 출신 대 비경찰대 출신으로 나누면 우리가 오히려 소수파”라며 “우리가 뭉치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달걀과 닭의 순서를 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하나의 조직이 특정한 배경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건 조직발전에 걸림돌이다. 그러나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이 강하고 업무능력도 탁월해, 결과적으로 경찰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경찰대는 그나마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셈이다.

이무영 경찰청장은 역대 어느 청장보다 경찰대 출신을 중용해왔다. 고시 출신 고위간부들을 앞에 두고도 “경찰대 출신들이 훨씬 일을 잘한다”며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경찰대 출신들에 대한 이 청장의 평가가 경찰 안팎에서 전폭적인 동의를 받는 것은 아니다. “같은 경찰대 출신이더라도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일을 시켜보면 정말 맘에 들게 일처리를 하는 부하가 있는가 하면 매번 불러다 호통을 쳐야 하는 부하도 있다.” 한 고시 출신 간부는 “경찰대 출신이 일을 잘한다는 건 그저 신화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 발전을 위해 가시적인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없지는 않다. 지난 1991년 경찰청 발족을 앞두고 내무부가 경찰청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지려 하자 경찰대 출신들이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집단성명을 발표했고, 1999년에는 집단적으로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려다 경찰 수뇌부의 지시로 막판에 중단되기도 했다. 한 경찰대 출신 간부는 “고시 출신이든 간부후보 출신이든 자신의 출세에만 신경쓰느라 권력에 아부만 했지 누구 하나 경찰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느냐”고 비경찰대 출신들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경찰대 동문회의 이런 집단 의사표시가 진정으로 경찰 조직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난달 19일의 성명 발표는 경찰대 동문들 사이에서도 큰 반발을 샀다. 한 경찰대 출신 본청 간부는 “예전의 경찰 중립 요구와는 분명히 성격이 다르다. 전체 동문들의 뜻을 묻지 않고 그런 내용을 발표한 의도를 나부터도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현대판 골품제도, 경찰대 출신은 화랑?

런던정치경제대(LSE) 객원연구원인 문성호 박사(정치학)는 경찰대 출신들의 집단성명은 자가발전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경찰대 출신들은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라도 경찰대 출신의 우수한 인력이 대거 경찰에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수사를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비간부 경찰이다.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려면 비간부들의 수준을 높이는 게 옳은 순서다.” 그가 볼 때 경찰의 인사제도는 “비간부들의 승진통로가 사실상 봉쇄된 ‘현대판 골품제도’다. 그리고 이런 제도의 자양분을 먹고 성장하는 경찰대생들은 “현대판 화랑인 셈”이다.

“몇몇이 충성경쟁하다 사고친 거다. 제 일이나 열심히 하지, 출세에 눈들이 멀어서….” 그러나 지난달 19일 성명 발표에 대한 한 지방경찰청의 경찰대 출신 김아무개(38) 경감의 독설은 내부 파열음으로도 들린다. 한없이 공고해보이는 경찰대 동문회 안에서도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경찰대 동문회는 겉보기와 달리 안에서는 치열한 내부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경감급 승진시험의 자체 경쟁률만 5 대 1이다. 경찰대 출신들이 고위간부 자리를 다 차지한다고 해도 어차피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탈락해야 한다. 최근의 움직임도 동문회 전체가 아니라 잘 나가는 동문이 전체 동문 이름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도 결국 하나가 아니다.” 스스로 경찰대 출신들한테 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고시 출신 중간간부의 ‘관전평’이다. 화랑 안에서도 ‘진골’과 ‘성골’은 나뉘는 법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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