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향수 남은 부산대 앞의 대표적 주점… ‘욕쟁이’교수님의 강의도 즐거워라
부산대학교에는 밤이 되어야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이 있다. 수백개 강의실이 있지만 유독 밤에 학생들이 몰린다. 거의 매일 강의가 열리는 ‘108강의실’이 그곳이다. 강의실은 학교 울타리 밖에 있다. 108강의실은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앞에서 80년대의 향수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주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야, 이리 나와서, 느그 묵을 숟가락이랑 젓가락 세 가라.”
강의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이건 직장인이건 ‘교수님’ 격인 이 집 주인 김옥자(63) 할머니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안주 접시를 나르는 것도 학생들 몫이다. “계란말이 다 됐다. 이리 와서 가꼬 가라.”
할머니와 학생들간의 독특한 유대감

108강의실에는 부산대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시간강사로 여러 학교를 전전하는 인문학 전공 박사들이 많이 드나든다. 요즘 대학교수 되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특히 인문학 전공 박사들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한곳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보따리 장사로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시간강사들을 볼 때도, 할머니는 대뜸 욕부터 한다.
“야 이노무 자슥아, 니는 아직도 느그 마누라 등골 빼먹고 사나? 처자식도 제대로 건사 못하는기, 박사면 뭐하고, 선생질만 잘하면 뭐하노?”
할머니의 과격한 ‘강의’를 들어도 ‘학생’들은 그저 “어무이, 어무이” 하면서 웃는다. 할머니 교수님은 소주 한잔 먹고 가는 아들 아닌 아들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하단다. 교수님은 강의를 듣는 ‘단골’ 학생들의 학번은 물론이고 출신학과까지 아직 기억한다. “가게에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요즘 사는 모양이 어떤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108강의실에는 재학생과 졸업생이 들끓는다. 술과 밥을 파는 집치고는 그 어느 곳보다 넉넉하고 푸짐한 인심이 한몫했다. 예나 지금이나 30평이 넘는 강의실은 할머니의 독무대다. 신입생 환영회나 큰 행사가 있을 때는 100명 정도가 오지만 그래도 혼자 다 해결한다. 할머니와 학생들간의 독특한 유대감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08강의실에서 만난 김유겸(부산대 98학번)씨는 “학교 다닐 때도 동문회나 동아리의 명소였지만 뭔지 모를 그 분위기에 자꾸 오게 된다”면서 “요즘 새내기 학번들은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데 유독 108만은 예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18년 전인 1986년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 조그만 식당 비슷한 포장마차를 부산대 앞 국밥집 골목 한 귀퉁이에 개업했다. 그래도 명색이 가게인데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단박에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당시 할머니의 둘째딸이 부산대 법대 86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첫 강의를 들었던 곳이 108강의실이었고, 그것을 그냥 주점 이름으로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주점을 열 때 새내기였던 둘째는 이미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강의실을 지키고 있다.
처음 가게를 열 때는 무허가였다. 그런 상태로 몇년 동안 장사를 했는데 그 시절이 할머니에게는 남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게를 열고 얼마 뒤부터 하루하루 살얼음 걷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108강의실’이라는 이름을 가능케 한 둘째딸이 학생운동을 하면서부터 어려움이 시작된 것이다. 정보과 형사의 전화 한통에 언제라도 108강의실이 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허가라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당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 딸이 학생운동 하니까, 형사한테 잘못 보이면, 무허가 포장마차가 다 헐린다 아이가. 그래가꼬 내가 몽둥이 들고 아가 있는 그 ‘소리터’(동아리) 올라가서, 다 쎄리 뿌싸뿐다고 안 그랬나. 가들이 학생운동 한다카미 저그 부모들 속 씨기고 저그들도 형무소 갔다오미 고생은 했어도 정신 하나는 지대로 박힌 건 사실 아이가.”

안주 2천원… 밤 11시엔 꼭 마감
무허가 포장마차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0년 전. 시작할 때는 1층의 허름한 판잣집이었지만 이젠 2층으로 옮겨 약 30평에 테이블도 20개가 넘는다. 108강의실은 메뉴에도 큰 변화가 없다. 처음 문을 열 때는 포장마차와 분식점 중간 정도 분위기였다. 그래서 막걸리와 소주와 함께 김치찌개, 라면, 파전, 오뎅탕, 두부김치, 계란말이, 파전, 도토리묵, 고갈비가 주메뉴였다. 아직도 3천원짜리 고갈비를 빼고 안주는 모두 2천원이다. 지난해 500원씩 올리면서 맘이 쓰렸다는 김씨 할머니는 그래서 계란 한알이라도 더 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인심 좋고 안주맛도 좋지만 108강의실은 밤 11시면 예외 없이 하루를 마감한다. 김씨 할머니가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이다. 단돈 5천원에 막걸리나 소주 한병에 계란말이 하나 먹으면 적당하다는 지론이다.
지난해에는 내부 분위기를 확 바꾸는 수리를 했다. 처음 강의실을 열 때만 해도 아주머니였던 ‘교수님’은 이제 환갑을 넘겼다. 세월의 나이테는 울타리 안의 강의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108강의실만의 향수였다.
부산=글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사진 김경화 |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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