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코 퍼킥
60년대 작품은 모조리 압수당해 소각…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한 게 하나 남아 있을지도
삼장법사 같은 엉뚱한 편안함과 호치민을 연상케 하는 강한 기를 함께 뿜어내는 조코는 종소리가 좋다며 별채에 걸어놓은 중세 가톨릭식 쇠종과 무슬림식 대고에다 불교식 대형 목탁까지 두루 두들기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때때로 사람도 없는 밤에 악기가 혼자 소리를 낸다”는 공연실(동네 행사용)에는 100년이 넘었다는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 수십쌍을 늘어놓았고, 마당 한가운데는 “하도 식구가 많아서 아예 승용차 대신 구입했다”는 관광버스가 옆구리에 큼지막한 멧돼지 그림을 붙인 채 도사리고 앉아 있다. 조코와 조코의 집은 전통적으로 지녀온 예술가에 대한 선입견들이 별로 통하지 않고, 그저 보이는 게 모두 의문투성이일 뿐이다.
- 무슬림이 강력한 이 지역에서 가톨릭이나 불교 상징들을 함께 늘어놓아도 괜찮은가.
=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내 가족들은 가톨릭이라고들 하는데, 난 도통 관심이 없어. 소리를 내는 저 종들이 저 악기들이 모두 내 종교야. 듣고 마음 편해지면, 그게 종교 아냐?
- 아직도 공산주의자인가.
= (순간적으로 어색해하며) 내 인생에서, 또 그림에서 가난한 이들을 주제로 삼았을 뿐이야. 그걸 어떻게 부르든 난 상관 안 해.
- 그래도 정치적 소신 같은 게 있지 않겠나.
= (30년 넘게 ‘공산주의자’라는 말에 치여온 탓인지 조코는 본능적으로 책잡힐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빛이 역력하다) 공산주의자라 불러도 좋고, 뭐래도 좋아. 내가 나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나는 그만한 의식도 없고 그만한 인물도 아냐.
-그런데 왜 레크라(인도네시아 공산당 산하 인민예술가동맹)에 참여했나.
= 레크라가 공산당 문화조직이었던 건 사실인데, 당시 나처럼 젊은 예술가들 가운데는 당원이 아닌 이들이 많았어. 굳이 당원, 비당원 가릴 것도 없었지. 뜻 맞는 이들이 참여했으니.
- 공산주의자란 딱지 달고 7년 동안 감옥살이하고 나와서는 어떻게 살았나.
= 1972년 석방된 뒤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동장 집에 가서 정신교육 받았고 한달에 한번 군부대에 가서 청소도 하고 정신검열도 받고 하는 통에…. 재단사 노릇하며 입에 풀칠했는데, 일주일에 2~3일은 굶었지. 그러다가 1984년에 가게를 차리고부터는 형편이 좀 나아졌어.
-그 재단사 직업이 여기 공산주의자들 사이에는 유행이었던 모양이네. 1950년대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단 몇년 만에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조직으로 키워낸 아이딧 서기장도 먹을거리가 없어 재단사를 했다던데.
= 혼 빠진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고, 혼 있는 그림이라면 살 사람도 없었으니. 재단도 이골이 나니 예술이 되는 거야. 사실은 1987년에 루릭(전통의상) 전시회를 했어. 그림보다 먼저.(폭소)
- 그러면 화가 조코로 다시 세상에 나온 건 언제부터라고 할 만한가.
= 1988년에 족자카르타 예술가들 전시회와 1989년 민족예술가 6명 중 한명으로 자카르타 비엔날레에 초대받기도 했지. 굳이 따지자면 1996년 부터….
- 1965년 감옥에 가기 이전 작품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일부는 소장하고 있는지.
= 전혀. 모조리 압수해가서 불태워버렸으니 남은 게 전혀 없어. 꼭 하나 살아 있을 가능성을 꼽으라면, 1964년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내 그림 가운데 (땅주인)라는 작품을 당시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던 김일성 주석에게 선물한 게 있긴 한데….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겠어?
-조코 기념관 같은 걸 염두에 두고 있나.
= (펄쩍 뛰며) 그런 쓸데없는 소릴! 내가 왜 나를 기념해. 내 생전에 그런 일은 없어. 내가 죽고 난 뒤에 누가 만든다면 말릴 방법이야 없지만. 난 그런 거 안 해.
- 그럼 보관하고 있는 30여점은 어떤 의미인가.
= 가족들에게 한점씩 준 거야. 나중에 자식들이 그걸 팔아먹을지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 말이 난 김에, 얼마 전부터 조코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 (극도로 긴장하며) 팔고자 그리면 그게 상업적이야. 그려놓은 걸 누가 사면 그건 상업적이라고 할 수 없지. 그 차이가 태산만 해. 팔고자 그리는 건 혼이 없다는 뜻이야. 혼이 없는 걸 상업적이라 해. 난 아직 내 그림을 팔겠다고 그래서 잘 팔리는 쪽으로 그려본 적이 없어.
- 인도네시아 최고기록을 세웠는데. 이 10억루피(약 1억3천만원)에 팔리면서. 그러고 나서 인생이 달라지기라도 했는지.
= 아무것도. 은행으로 들어온 그 돈을 한푼도 만져보지 못했으니 실감이 안 나. 그 돈으로 그동안 죽어라 고생해온 가족들에게 모두 집 한채씩 사줬으니, 이제 내 인생이 홀가분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그 돈 가운데 내가 일부 만진 건, 담배 넉넉히 사 피운 것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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