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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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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과 관객이 웃음을 만든다

등록 2003-02-13 00:00 수정 2020-05-02 04:23

무대에 홀로 서서 관객을 웃기는 일이 개그맨의 본분 같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 일을 너끈히 해내는 개그맨은 많지 않다. 여러 명이 나와 함께 스토리를 엮어가는 개그에 익숙한 탓이다.
본격 스탠드업 코미디를 내건 도 내로라 하는 개그맨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무대다. 700여명의 관객 앞에서 실력과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탓이다. 웃음이 터지지 않으면 분위기를 만회해야 하고 끝내 만회하지 못하면 쓸쓸하게 돌아서야 한다. 오히려 아마추어들이 용감무쌍하다. 성공의 단맛이 없으니 실패의 쓴맛도 두렵지 않다.
안방무대에 로 빗장을 연 공연식 개그가 들어온 것은 4년 남짓이다. 그즈음 기량 있는 신인 개그맨들은 냉정한 방송가 대신 대학로의 공연장을 활용하고 있었다. 컬트 트리플 등 라이브형 개그맨들이 탄생했고, 백재현·송은이·이휘재·유재석씨 등은 ‘더 게임’, ‘해피 콘서트’라는 이름의 개그 무대를 마련했다. 대학로 무대에 선 개그는 음악과 춤 등 다른 장르와도 활발하게 결합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뜬’ 이가 갈갈이 박준형이다. 박씨는 아예 대학로에 코미디 전용극장 ‘갈갈이 소극장’을 차려 운영한다. 방송사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와 기량이 꽃피었고, 이런 분위기는 거꾸로 방송가를 자극했다. 학원 과학강사인 장하나씨, 레크리에이션 도우미 김제동씨 등 본업을 가진 신인들이 속속 등장해 브라운관을 누비고,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개그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는 즐거워졌다.
코미디 피디계의 맏형격인 한국방송 김웅래 피디가 위성채널에서 기획한 은 아예 매주 월요일 오후 6시 대학로 창조 콘서트홀에서 공개 녹화를 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한국방송 본관 희극인실에서 오디션을 거친 이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 호흡하면,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펀 스테이지’라는 코너 이름으로 전파한다. 서수민 피디는 “기존의 개그는 연기에 많이 의존해왔다. 이제 사람들은 뻔한 스토리보다는 뒤통수를 치듯 직격탁을 날리는 개그에 열광한다. 방송가에서 공연 개그는 대세다. 관객을 웃기지 못하면 시청자도 웃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객 앞에서는 금방금방 실력이 검증되므로 출연자와 연출진 모두 긴장하고, 그만큼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한국의 개그는 개그맨들만 이끌어가는 게 아니다. ‘웃기로 작정한 20대 커플’ ‘웃을 준비를 만반에 갖춘 아저씨·아줌마’들이 코미디 프로그램 녹화날 방송사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은 인터넷으로 방청 응모를 받아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한국방송 별관 공개홀에서 녹화한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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