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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에 출근하다 죽었다 그게 사립유치원의 일상

대체인력 없고 병가는 그림의 떡…교실을 시장에 맡긴 바우처제도의 대가
등록 2026-04-30 21:06 수정 2026-05-02 14:00
2026년 4월3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사십구재 추모집회’ 모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2026년 4월3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사십구재 추모집회’ 모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경기도 한 사립유치원 교사로 3년간 일한 ㅎ씨는 최근 너무 힘이 들어 일을 그만뒀다.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였지만, 서류와 현실은 달랐다. 일찍 등원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침 8시30분에 출근하고, 운동회, 학부모 참관수업, 발표회, 경연대회 등이 있을 땐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간외수당이나 야근수당은 없었다. 심한 장염에 걸렸을 때도 ‘어제 뭘 먹었길래 아프냐’는 원장의 핀잔을 들으며 병원에서 링거를 맞은 뒤 일해야 했다. 아이가 20여 명인 반에 교사가 한 명뿐인 상황에서 ‘병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아이들이 하원해도 학부모에게 보여줄 ‘키즈 노트’를 만드느라 일은 끝나지 않았다. ‘왜 우리 아이는 참관수업 때 뒷줄에 앉혔느냐’ ‘왜 다른 애들과 우리 애 사진 개수가 다르냐’는 등 끊이지 않는 학부모 민원은 덤이었다. 하루 14시간 노동을 해도 ㅎ씨가 손에 쥔 월급은 250만원 남짓. ㅎ씨는 “남들은 (코미디언) 이수지가 찍은 ‘유치원 교사 이민지씨의 끝나지 않는 24시간’ (유튜브) 패러디 영상을 보며 웃지만, 교사들은 피티에스디(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올 것 같아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73.6%, 독감에도 출근했다

 

2026년 2월 경기도 부천의 사립유치원 교사가 독감에 걸렸음에도 병가를 쓰지 못하고 출근했다가 사망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뒤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현실과 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과 원장들의 비인간적 처우를 비판하지만, 전문가들은 영유아 교육 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4월15일 ‘영유아 책임교육 긴급 토론회’를 열어 시스템 개선을 촉구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단체들도 기자회견을 잇따라 열어 정부와 교육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2026년 3월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재해 즉각 인정 및 교원의 감염병 병가 의무 보장 촉구’ 기자회견 모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2026년 3월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재해 즉각 인정 및 교원의 감염병 병가 의무 보장 촉구’ 기자회견 모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사망 사건은 ‘아파도 쉴 수 없었던’ 현실에 기인한다. 법적으로 사립유치원 교사의 처우는 사립학교법 제55조에 따라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을 준용해야 한다.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 제18조에는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60일 범위 안에서 병가를 승인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한겨레21의 취재에 응한 대부분의 사립유치원 교사들은 ‘병가는 그림의 떡’이라고 입을 모았다. 충북에서 일하는 교사 ㅅ씨는 “지난 4년간 병가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수술하느라 쉰 동료가 ‘민폐를 끼쳤다’며 떡과 음료를 돌리는 지경이니 ‘아픈 것=미안한 일’이라는 게 유치원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사립유치원 교원 2324명이 참여한 전교조의 ‘교원 병가 사용 실태’(2026년 3월26일~4월10일) 조사 결과를 보면, ‘독감에 걸렸음에도 출근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73.6%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인력 부족’(71.0%)을 가장 많이 꼽았고, ‘관리자 눈치·압박’(67.6%), ‘동료에 대한 미안함’(58.5%)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98.2%는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사망 사건이 본인 처지와 유사하다’고 했다.

대체인력이 없는 이유는 사립유치원에 1학급 1교사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명하 안산대 교수(유아교육)는 “현행 영유아보육법 제17조 및 유아교육법 시행규칙에 따른 교직원 배치 기준은 학급당 1명의 교사만을 최소 기준으로 두고 있어 교사의 부재가 곧 학급 운영의 중단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결함을 방치하고 있다”며 “대체 업무 수행을 위한 ‘비담임 정교사’ 배치를 법적 인력 기준에 명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사망 사건의 여파가 확산하자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 ‘유아교육법 및 영유아보육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핵심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직원이 연가·병가·보수교육 등으로 업무 수행이 어려운 경우 설치·운영자가 대체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통합 대체인력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재필 사단법인 영유아교사협회 대표이사는 “법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병가 신청·처리 절차를 표준화하고 원장이 이를 임의로 거부하면 행정처분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며 “병가 사용 현황을 교육청이 정기 보고받고 0건이 나오는 기관은 현장 점검을 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가 병가를 신청하면 대체교사를 보내주는 방식 대신 서울시가 2022년부터 시범운영 중인 ‘어린이집 상주형 대체교사 모델’을 전국 사립유치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미령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 대표는 “대체교사가 투입되면 5~6살 아이들은 낯설고 어려워한다. 몇 개 학급 이상이면 상주형 대체교사를 두는 제도를 도입해, 사립유치원 교사의 병·휴가를 보장하는 안정적 인력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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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니까” 원장 말이 곧 법

 

사립유치원의 소유 구조도 교사 처우 개선을 막는 원인 중 하나다. 2025년 기준 국내 유치원은 모두 8140곳인데, 이 가운데 사립이 3066곳으로 38%였다. 특히 사립유치원 중 개인 소유 유치원은 2628곳(85.7%)이나 됐다. 학교법인·사단법인·재단법인·사회복지법인 등 법인이 설립한 유치원은 438곳(14.3%)에 그쳤다. 개인이 소유한 유치원의 경우, 교육 당국의 지도·감독 권한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립유치원 교사들은 ‘원장의 말이 곧 법’으로 통한다고 말한다. 인천에서 일하는 교사 ㅈ씨는 “원장이 출근 10분 늦었다고 원아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보고 기겁했다. 토요일도 학부모 상담 명목으로 출근하라고 요구하면 수당을 못 받아도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일하는 ㅇ씨는 “그만두려 하자 원장이 ‘직전에 근무하던 곳에 평판조회가 오는 거 알고 있느냐’ ‘제대로 처신 안 하고 나가면 다신 일 못한다’는 등 반협박을 했다. 원장 마음에 드는 교사를 구할 때까지 석 달 넘게 더 근무하고서야 그만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또 다른 교사 ㅇ씨는 “내가 일했던 유치원 중 한 곳에선 원장 생일, 스승의 날, 결혼기념일까지 챙긴다고 교사들끼리 돈을 걷었다”며 “원장은 교사를 자기 소유 업체의 직원 정도로 여기는지 입버릇처럼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최근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전국사립교원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설립 신고증을 받으며 법적 지위를 확보했지만, 정작 교사들은 “원장 눈총을 받으며 노조에 가입할 교사가 몇이나 되겠냐”는 회의적 반응이다.

결국 사유재산이지만 공공재 성격을 띠는 사립유치원의 소유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김원배 전교조 정책연구국장은 “교육감은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이 분명히 있음에도 비리가 발생하면 ‘사립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방임이 이어져왔다”며 “국가재정 지원을 늘려야 하지만 그에 앞서 사립유치원의 법인화를 유도하고 개방이사제를 필수로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교육 배불리고 교사 쥐어짜고

 

전문가들은 사립유치원 문제의 근원에 ‘바우처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우처제도는 매년 교육 당국이 표준교육비 등을 기준으로 아이 1명당 지원액을 정한 뒤 부모가 기관(유치원)을 선택해 등록하면 원아 수에 따라 기관에 지원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사립유치원을 제외한 다른 학교는 운영비, 시설비, 인건비 등을 교육청이 직접 지원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런 바우처 지원금은 교사 인건비와 운영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에 사립유치원 운영자가 자의로 인건비와 운영비를 나누게 되고, 이익을 높이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인건비를 줄이게 된다는 지적이다. 송대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자문위원은 “교사 보수를 줄이기 위해 저경력 교사를 채용하거나 적은 수의 교사를 채용하는 방법이 동원된다”며 “공립유치원은 5년 미만 경력자가 30% 미만이지만, 사립은 51%나 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짚었다.

교육 수요자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 학부모에게 직접적인 구매력(바우처)을 주는 방식은 결국 사립유치원을 학부모의 단기적 만족에 매몰되게 해서 영어·수리·코딩 등 사교육 프로그램으로 돈이 흘러드는 구조를 조장하기도 한다. 천은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원(전 사립유치원 교사)은 “우리 단체가 2025년 10월 조사한 영유아 기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 개 이상의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82.9%, 세 개 이상 운영한다고 응답한 기관도 55.5%에 달했다. 일부 대형 사립유치원은 같은 운영자 아래 어학원을 함께 운영하기도 한다”며 “용도가 확실히 규정되지 않은 무상교육비가 지급되는 바우처제도의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금이 사교육 쪽으로 흘러가는 동안 교사들은 제대로 된 수당이나 휴게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년차 교사 ㅂ씨는 “점심시간 1시간은 무급 휴게시간이라는데, 교사는 점심시간에 아이들 챙기느라 더 바쁘다. 휴식은커녕 점심을 10분 컷으로 먹어야 한다”며 “야간이나 주말에 일하는데도 왜 시간외수당이나 휴일수당을 받을 수 없냐”고 토로했다.

 

쉬는 시간도 없는데, 욕은 덤

 

또한 바우처제도는 교사를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노출되게 하는 원인도 된다. 학부모 민원이 많으면 원아 수가 줄어들 수 있어 원장은 교사들에게 무한 인내를 요구한다. 교사 ㅅ씨는 “밥을 먹이며 왜 물 대신 국을 먹였냐, 머리가 헝클어졌는데 왜 다시 땋아주지 않았냐는 등 황당한 민원이 들어와도 원장은 교사한테 무조건 사과하라고 한다. 저출산이 문제라면서 유치원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게 맞냐”고 반문했다. 임미령 대표는 “사립유치원 교사 보수는 공립학교 교사 보수에 준하게 돼 있다. 바우처제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이 인건비만이라도 교사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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