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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이름 지어주는 호적 공무원

등록 2002-08-08 00:00 수정 2020-05-02 04:22

“좋아하는 아기 이름도 세월에 따라 늘 바뀝니다. 한때 순 한글로 이름을 짓는 열풍이 불었지만 달라졌어요. 요즘은 영어로 표기했을 때 부르기 쉬운 이름을 지어달라는 요구가 많아요.”

서울 서초구청 민원여권과 호적팀장 이동우(51·행정 6급)씨가 지난 4년 동안 무료로 이름을 지어준 신생아는 2천여명. ‘좋은이름대회’에서 상까지 받은 ‘아롱’, ‘다롱’, ‘슬기’, ‘보람’, ‘이슬’ 같은 순 한글 이름은 예쁘긴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다시 고쳐달라는 부모가 많다. “‘이슬’이란 이름만 보면 부르기 쉽고 단순하고, 풀잎에 맺힌 이슬이라 예쁘기도 하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름이 ‘너무 가볍다’고 불평하는 겁니다.” 대신 최근에는 ‘예라’, ‘지나’, ‘매리’ 같은 이름이 뜬다고 한다. 영어로 썼을 때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이 눈에 띄게 는 것이다.

그가 주민들의 아기 이름을 지어주기 시작한 건 지난 98년부터. 그러나 그의 손에서 이름을 얻은 사람 중 서른살이 다 된 사람도 있다. 어릴 적 서당 훈장한테 이름 풀이를 공부하면서 작명에 푹 빠진 뒤, 지난 74년 한국역술인협회에 가입하면서 아기 이름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무원 생활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역학’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그의 작명 철학은 단순하다. 듣기 좋고 부르기 좋고 꿈과 희망이 담긴 이름이 좋은 이름이다. 하지만 부모라면 다 겪어봤을 테지만, 아기 이름이 뚝딱 지어지는 건 아니다. 부모와 아기의 사주팔자를 수학 방정식 풀듯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오행(화·수·목·금·토)을 맞추는 데서 더 나아가 작명의 인접학문까지 동원해 이름의 ‘조화’를 꾀한다. “남의 이름을 부를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름을 갖고 놀리면 제풀에 ‘이름이 나빠서 일이 안 풀린다’고 선입관을 갖는 사람이 많거든요.”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아기 이름을 지어달라는 이메일과 팩스, 편지가 쏟아진다. 작명 부탁이 밀려들지만 장애인과 불우이웃의 아기 이름부터 지어준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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