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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논의는 어떻게 흘렀나

등록 2002-08-01 00:00 수정 2020-05-02 04:22

조선시대 청계천의 이름은 개천(開川)이다. 개천은 자연 그대로의 하천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변형된 하천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장마철 물난리를 막기 위해 1411년 태종이 치수사업을 시작하면서 그 이름이 붙었다.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일제치하로 접어든 1910년께였다.
청계천은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발원해 서울의 중심부를 지나 중랑천과 합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복개가 본격화한 60년대 이전까지 서울 아낙네들의 빨래터 노릇을 하기도 했다. 복개가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 때였다. 37년 전염병을 막는다는 이유로 상류인 광화문 사거리에서 광교까지가 시멘트 구조물로 뒤덮였다. 광교가 이때 도로 아래로 묻혔다. 이후 58년 본격적인 복개공사가 시작됐고, 65년 12월 박정희 정권 들어 7.8km 전 구간의 복개가 완료됐다. 또 66년 ‘불도저 시장’으로 불린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지휘 아래 5.65km 길이의 청계고가가 건설됐다.
거대한 하수구로 변한 청계천을 다시 옛날과 같은 맑은 개울로 돌리자는 구상은 90년대 들어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청계천살리기연구회에서 처음 제기했다. 의 작가 박경리씨의 참여로 힘을 얻은 청계천 복원 논의는 올해 초 가 집중기획을 통해 공론화하면서 본격화했다. 이어 지난 달 서울시장 선거에서 ‘임기 중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업추진을 눈앞에 두게 됐다. 서울시는 최근 청계천 복원 관련 최고 의결기구인 ‘청계천복원사업시민위원회’와 실무기구인 ‘청계천복원추진본부’, 연구기구인 시정개발연구원의 ‘청계천복원지원연구단’을 구성해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시민위원회는 상인과 주민 대표 등 청계천복원사업의 이해당사자를 위원으로 참여시켜 적절한 복원방식을 도출하게 된다. 2003년 1월까지 복원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04년 초 청계천 복원공사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명박 시장은 “구간을 나눠 한꺼번에 공사하는 방식으로 착공에서 완공까지 약 2년10개월쯤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 시장 쪽이 선거기간에 예상한 복구비용은 3600억원이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6000억원 이상을 예상한다. 공사기간 교통혼잡 비용만 2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시장은 “청계고가도로 복구비 1천억원과 서울시청 이전 준비금 1400억원에 2년간 서울시 예산절감분 1천억원을 투입하면 비용은 해결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청계천복원추진본부는 8월13일부터 10월29일까지 매주 한 차례 시민 대상의 청계천 현장 시민참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 2∼4시 광교에서 청계3가 사이 1.3km 구간을 시민들이 시청 공무원의 안내를 받아 직접 답사한다. 참가자는 매주 100명 안팎이며, 인터넷 등으로 공개접수할 예정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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