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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천일염이 미국에서 수입금지 된 이유는?

인권침해·노동착취로 쌓은 성장의 위험성 …지속 가능한 경제 위해 기업인권환경실사법 도입돼야
등록 2025-07-04 12:26 수정 2025-07-09 15:48
2025년 4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국내 염전에서 강제노동 등 각종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되자 한국산 천일염 일부에 수입금지 조처를 내렸다. 사진은 2023년 6월 전남 신안의 한 염전에서 노동자가 방금 수확한 천일염을 두 손 가득 쥐고 있는 모습.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25년 4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국내 염전에서 강제노동 등 각종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되자 한국산 천일염 일부에 수입금지 조처를 내렸다. 사진은 2023년 6월 전남 신안의 한 염전에서 노동자가 방금 수확한 천일염을 두 손 가득 쥐고 있는 모습. 한겨레 박종식 기자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정 비전 중 하나로 ‘진짜 성장’을 내세웠다. ‘진짜 성장’은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개념이라는 것이 국정기획위원회의 설명이다. 그런데 정부가 ‘성장’이란 열쇳말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안, ‘인권’ 같은 가치는 규제완화 담론에 밀려 후순위로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표방할수록 인권에 대한 원칙은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진짜 성장’이라는 비전은 결국 그간의 성장 담론과 다를 바 없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인권 침해 논란 속에 성장한 기업들

2024년 화제가 됐던 세계적 브랜드 크리스찬디올의 공급망 노동착취 논란을 돌이켜보자. 크리스찬디올 이탈리아 지사의 가방 제조업체가, 소비자에게 수백만원에 판매하는 가방을 하청업체에서 납품받으면서 하청업체의 노동착취를 방치해 비용 절감의 이득을 누려온 사례다.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크리스찬디올 가방을 만드는 하청업체는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해 생산라인을 24시간 가동하면서 밤샘노동과 휴일노동 등 장시간 노동을 하도록 했고,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기계에서 안전장치까지 제거했다고 한다. 하청업체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53유로(약 8만원)에 가방을 납품하면 이 가방은 매장에서 2600유로(약 400만원)에 판매됐다고 하니, 이윤 창출 관점으로만 보면 브랜드가 공급망에서의 노동착취를 방치할 유인이 충분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찬디올그룹은 2023년 862억유로의 매출을 기록했고, 이는 2022년 대비 13% 성장한 수치였다. 이를 두고 해당 기업이 지속 가능한 ‘진짜 성장’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들도 공급망에서의 인권침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전자의 베트남 휴대전화 부품 공급 업체에서 발생한 메탄올 중독 사고 사례를 살펴보자. 2023년 초, 금속 부품 가공 과정에서 사용된 냉각용 알코올에 고농도의 메탄올이 포함되면서 노동자 37명이 중독 판정을 받았고, 이 중 1명은 사망했으며, 여러 명이 실명하거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부상자에는 10대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었다.

메탄올은 잘 알려진 신경독성 물질로, 2015~2016년 국내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품 가공 하청업체에서도 실명 사고가 일어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현재 삼성전자 사업장에서는 세정·냉각 용도의 메탄올 사용이 금지됐다. 삼성전자는 201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자사 사업장뿐 아니라 협력회사에서도 메탄올 사용을 금지해 안전보건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에서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메탄올에 노출되고 있었다.

삼성전자 같은 다국적기업이 생산 공급망을 베트남 등 신흥국으로 이전하는 것은 생산비용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로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 중 하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실한 산업안전 관리의 위험까지도 공급망의 취약한 곳으로 ‘수출’되는 실정이다.

 

인권침해 방지책 없는 성장은 곧 불평등 심화

이런 사례들은 모두 한 가지 사실을 환기한다. 기업이 공급망에서 인권침해를 예방할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성장과 이윤은 보이지 않는 착취 위에서 쌓이기 쉽다는 점이다.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고리는 항상 가장 큰 인권침해 위험에 노출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닌, 불평등과 갈등의 심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국제사회는 이미 이런 문제를 제도적으로 다뤄왔다. 이에 공급망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한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평판 리스크뿐 아니라 규제 리스크까지 마주하게 되는 추세다. 2025년 4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 기업인 태평염전에 수입금지 조처를 내렸다. 천일염 공급망이 위치한 염전 지역에서는 2020년께부터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노동과 폭행 등 심각한 인권침해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됐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조사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침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기업 차원의 실질적 대응은 미흡했는데, 결국 미국 당국의 규제에 직면한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도 2025년 6월13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기업인권환경실사법)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인권침해 위험을 평가하도록 의무화하고, 위험 요인이 발견될 경우 이를 시정하거나 구제 방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즉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는 기업이 자유롭게 이윤과 성장을 추구하되, 그 과정에서 적어도 인권침해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할 책임을 진다는 보편적 원칙을 법제화한다.

 

인권실사는 규제 아닌 성장의 디딤돌

일각에서는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을 또 하나의 규제로 인식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인권실사는 기업 입장에서 공급망 리스크를 사전에 식별하고 관리하도록 돕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예컨대 앞서 살펴본 크리스찬디올 사례에서는 밀라노 법원의 판결 이후 해당 브랜드를 소유한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가 투자자들로부터 즉각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루이뷔통모에에네시의 주요 투자자들은 공급업체에 대한 정기 감사 실시, 구매 관행의 투명성 확대, 공급망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구체적 증빙자료 공개 등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가 인식하는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와 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점도 분명히 드러났다.

더불어, 2024년 11월 유럽연합(EU)은 강제노동과 결부된 상품의 유통을 전면 금지하는 새로운 규정을 최종 채택했다. 이 규정은 유럽연합 시장에 진입하는 상품이 공급망상의 강제노동과 연관됐을 경우 해당 상품의 판매와 유통을 차단하도록 한다. 만약 해당 사례와 같은 공급망의 노동착취가 이 규정 시행 이후에도 계속 방치됐다면, 해당 제품은 유럽 시장에서 판매 자체가 금지되는 중대한 제재를 당했을 수도 있다. 만일 인권실사를 통해 공급망의 위험 신호를 조기에 감지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갖췄다면 이와 같은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인권실사를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로 단정하기보다는, 기업과 이해관계자 모두의 입장에서 리스크를 줄여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시각이다.

새 정부의 ‘진짜 성장’이라는 비전이 실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이윤 추구 이면에서 타인의 권리를 짓눌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최소한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인권실사의 법제화는 이런 최소한의 기준이 국내에서도 정립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유정 기업과인권네트워크·사단법인 기후솔루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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