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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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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해쳤던 무기 앞에서 각 잡고 ‘인증샷’

볼거리로 포장된 대기업 ‘죽음의 장터’… 입구엔 ‘반전단체 출입금지’ 팻말
등록 2024-10-12 22:43 수정 2024-10-17 07:44
2024년 10월3일 오후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무기박람회 카덱스(KADEX)의 야외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무기를 구경하고 있다. 계룡/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4년 10월3일 오후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무기박람회 카덱스(KADEX)의 야외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무기를 구경하고 있다. 계룡/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그 비밀 투어엔 몇 가지 행동수칙이 있다. 참가자들끼리 눈을 마주치지 말 것. 이어폰을 착용할 것. 흩어져 걸을 것. 경호원이 붙어도 당황하지 말 것.

전시관을 구경하다 ‘친환경’ 전차 앞에 서봤다. 이어폰에서 실시간 오디오 가이드가 흘러나왔다. “친환경 무기라는 건 전쟁으로 파괴된 대지를 복원하는 데 드는 탄소배출량을 생각하면 사실 어불성설입니다.”

경호원들이 나타나 가이드를 제지한다. “퇴거하시기 바랍니다. 퇴거하십시오.” 실랑이가 벌어져도 다른 가이드가 설명을 이어간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무기는 현재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실시간 사용되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6일 충남 계룡대에서 진행된 전쟁무기 ‘다크투어’(인류사의 비극적 면모를 탐색하는 여행)의 한 장면이다. 전쟁과 무기 수출에 반대하는 단체 연합인 ‘무기박람회저항행동’이 기획했다. 방산기업의 무기 홍보 장터인 무기박람회 카덱스(KADEX)에서 해당 무기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관람객들에게 알려주는 일종의 비밀 투어였다. 그 투어에 한겨레21도 참여했다.

‘입틀막’ 다름없는 경호원들의 밀착 감시

무기산업은 분쟁을 먹고 자란다. 그 일사불란한 ‘분쟁 장사’의 민낯이 무기 전시회다. 방산기업은 물론 소비재 기업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까지 한몸이 돼 전쟁을 시장 기회로 삼고 각종 무기 구매를 제안한다. 그러니 반전단체 회원들은 처음부터 불청객이다.

주최를 맡은 대한민국 육군협회는 전시장 입구에 ‘반전단체 출입금지’라고 크게 써 붙였다. 경호원들은 반전단체 회원들 인상착의를 미리 파악해뒀다가 출입을 막아섰다. ‘똑같이 입장표를 샀는데 왜 못 들어가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람만 하겠다’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크고 작은 갈등은 있었어도 아예 입장 자체를 막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좀 당황스럽죠.” 전쟁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가 말했다.

미처 ‘거르지 못한’ 반전단체 회원들은 경호원들이 일일이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기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관람 중 문득 뒤를 돌아보면 무장한 경찰과 경호원들이 우르르 서 있었다. 어딜 가서 무얼 하든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박람회 쪽은 “기업고객 우려가 커서 그랬다. 양해해달라”고 했다.

2024년 10월6일 충남 계룡대 카덱스에서 반전단체 활동가들이 오디오 가이드 및 영상 녹화를 위해 2인1조로 행사장을 다니자 양 옆에 경호원이 따라붙었다. 신다은 기자

2024년 10월6일 충남 계룡대 카덱스에서 반전단체 활동가들이 오디오 가이드 및 영상 녹화를 위해 2인1조로 행사장을 다니자 양 옆에 경호원이 따라붙었다. 신다은 기자


이어폰을 꽂고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전과 고기 굽는 기름 냄새가 전시공간을 가득 채웠다. 풀무원과 동원에프앤비(F&B) 등 군 급식을 맡은 업체다.

“이런 걸 ‘전투 지원 체계’라고 하는데요. 군인과 무기체계가 지속적인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장비 물자입 니다. 식량, 군복, 의료·교육 장비 등이 다 포함되고요. 이런 것들이 무기박람회에 있다는 건 현대 전쟁이 단지 군인과 무기산업뿐만 아니라 전 사회와 연관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전시회엔 지자체 몫의 부스도 있다. 이른바 ‘방산혁신 클러스터’로 지정된 대전과 경남 창원, 경북 구미의 것이다. 각 지자체는 5년간 500억원 상당의 국비와 지방비를 지원받으며 무기산업을 육성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Korean Air’(코리안에어·대한항공)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크고 작은 드론도 전시돼 있었다.

“대한항공이 민항사로만 알려져 있는데요. 1970년대부터 군용기 정비를 했고 2000년부턴 무인기 사업을 시작해 정찰·수송·공격 등 다양한 용도로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특히 자폭형 무인기의 경우 표적 주위를 배회하다 ‘고가치’ 표적이 나타나면 바꿀 수도 있다고 해요.”

현대·기아차 부스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현대로템의 ‘K2 전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군비 증강에 나선 폴란드가 대거 수입한 무기다. 기아차는 군용 전술 트럭을 생산한다. 이날 기아차가 전시한 수소 전술 차량엔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대표적인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사례입니다. 요즘 저탄소 무기 체계가 많이 개발된다지만 무기 개발·생산 과정은 물론 무기 사용으로 파괴된 대지와 인프라를 재건할 때 드는 탄소 배출을 생각하면 (무기산업에) 저탄소라는 말은 상당히 어불성설입니다.” 가이드가 설명했다.

이스라엘 전쟁범죄의 공범들

전시회 한복판에 영어로 된 간판이 눈에 띈다. 세계 1위 무기 회사 ‘록히드마틴’이다. 중동 전역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는 이스라엘에 F35 등 전투기를 공급한다. 이날 부스에도 이스라엘이 수입한 ‘CH-53K 데몬스트레이터’가 전시돼 있었다. 이스라엘에 무기 부품을 대는 또 다른 기업 ‘사프란’도 버젓이 부스를 차렸다. 2024년 3월 프랑스 반전 활동가들은 사프란의 이스라엘 무기 공급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공범이 두 회사뿐일까. 한화시스템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은 이스라엘 대표 무기 기업 엘빗시스템스와 특수작전용 다목적 헬기 개발을 협업한다는 양해각서(MOU)를 2024년 10월4일 체결했다. 카이는 2021년 아덱스(ADEX)에서도 엘빗시스템스와 무인항공기 사업 협력 MOU를 맺었다.

2024년 10월6일 충남 계룡대 무기전시회 카덱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관 내부를 구경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전쟁 무기를 공급하는 프랑스 기업 ‘사프란’ 부스가 멀리 보인다. 신다은 기자

2024년 10월6일 충남 계룡대 무기전시회 카덱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관 내부를 구경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전쟁 무기를 공급하는 프랑스 기업 ‘사프란’ 부스가 멀리 보인다. 신다은 기자


분쟁국 무력 충돌에 쓰인 한국산 무기는 더 있다. 이날 전시된 카이의 전투기 FA50은 2017년 필리핀 정부군이 민다나오섬을 폭격할 때 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는 2019년 튀르키예가 기술을 빌려 자체 생산한 뒤 시리아 포격에 사용했다. 2023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연장로켓 ‘천무’를 예멘 내전에 투입했다. 한화의 바라쿠다 장갑차는 인도네시아 웨스트파푸아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폭력 진압하는 데 쓰였다는 폭로가 2023년 현지 활동가를 통해 나왔다. 풍산의 155㎜ 포탄은 가장 유력한 우크라이나 직접 지원 무기로 꼽힌다.

엘아이지(LIG)넥스원이 만드는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현궁’은 어떨까.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연합군이 예멘 내전에 개입해 후티 반군을 진압하는 데 쓰였다. 비밀리에 수출했으나 사우디 병사 등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샷’으로 무기 공급 사실이 드러났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도 이 무기가 쓰였다는 보도가 미국 국제전략전문연구소 ‘제임스타운재단’발로 나왔다.

2024년 10월6일 서울 관람객들이 전쟁 총기를 들어보고 만져보는 모습. 신다은 기자

2024년 10월6일 서울 관람객들이 전쟁 총기를 들어보고 만져보는 모습. 신다은 기자


LIG넥스원은 이날 야외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현궁을 직접 발사해보는 체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총기 생산 업체 에스엔티(SNT)모티브와 ‘다산기공’은 자사의 소총과 기관총 여러 자루를 전시했다. 어린아이가 총을 겨눠보며 포즈를 취하니 부모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산 무기로 희생된 목숨에 대해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비인도무기다. ‘코리아 디펜스 인더스트리’(KDI)는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공중에서 소폭탄 수백 개를 무차별 살포하는 확산탄(집속탄)과 사람을 겨냥한 지뢰를 탑재한 ‘대인 살포탄’ 등을 만든다. 본래 한화 소속이었으나 한화가 비인도무기 생산으로 유럽 시장 태양광 투자에 제약을 받자 분리 매각했다. 그러나 현재도 천무 체계에서 발사되는 확산탄을 생산하는 등 한화와 밀접한 사업관계다.

국제사회는 확산탄과 대인지뢰를 비인도무기로 분류하고 협약을 맺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민간인까지 무차별 공격하는데다 불발탄 피해도 크기 때문이다. 프랑스 등은 확산탄 금지 협약에 가입돼 있어 비인도무기 판매·유통을 하지 않는다. 한때 무기박람회에서 이를 전시했다가 관련 부스를 폐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 가입을 계속 미루고 있고 무기박람회에 이를 버젓이 전시한다.

그 무기, 실제로 사람 죽입니다

전시회를 빠져나온 활동가들은 관람객들을 향해 손팻말을 펼쳤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런 행사는 안보라는 이름 아래 전쟁과 폭력의 지속을 정당화하는 도구입니다. 한국 정부는 무기 수출로 이윤을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력으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까지 퍼뜨리고 있습니다. 케이(K)-방산에 대한 선망, 힘에 의한 평화라는 거짓 신화를 깨지 않고서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전쟁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들이 손에 든 손팻말 문구는 이렇다.

‘여기 전시된 무기는 실제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입니다.’

계룡(충남)=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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