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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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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이 600만원? 지자체 설레발에 서민 부담 ‘껑충’

서울시 설익은 정책 발표해 시장가격 상승…신생아 특례대출 24조원 투입해 집값 상승 자극 우려
등록 2024-10-04 21:37 수정 2024-10-09 07:43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전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송파구청 제공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전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송파구청 제공


2025년 1월 출산을 앞둔 산모 김아무개(38·서울 강서구)씨는 최근 집 근처 산후조리원을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가격이 600만원(2주일 기준)으로 2년 전 첫째를 낳았을 때(400만원)보다 1.5배나 비싸져서다. 마사지 등 부가서비스 비용을 포함하면 700만~800만원을 요구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김씨는 “첫째 때 비용을 생각하고 조리원을 알아보다가 (부가서비스를 포함하면) 비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비싸져서 놀랐다”며 “조리원 기간을 10일로 줄이거나, 아예 가지 않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산후조리원 가격 5년 새 최대 64.4%↑

산후조리원 가격이 비싸진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산후조리원 2주 평균 이용 요금은 2024년 8월 기준(일반실) 465만원에 이른다. 1년 전인 2023년 8월 조사와 견주면 10.3%(43만원)나 올랐다. 전국적인 추세도 다르지 않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2024년 9월25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에 운영 중인 456곳 산후조리원의 2주일 이용 요금은 최근 5년 사이 적게는 5.2%(세종)에서 많게는 64.4%(광주)까지 비싸진 것으로 분석됐다.

산후조리원 가격이 오른 것은 정부가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재정 지원을 늘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함에 따라 유인 수요도 증가해 시장가격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2022년부터 자녀를 낳는 가구에 200만원을 ‘첫만남이용권’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해왔다. 이어 서울시도 2023년 4월 출산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산후조리원 비용도 치를 수 있는 산후조리경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정부와 서울시 발표 직후부터 서울 시내 많은 산후조리원이 요금을 인상했다는 점이다. 당시 오기형 민주당 의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3년 2월과 10월 사이 서울 시내 산후조리원 114곳 가운데 37곳이 가격을 올렸고, 가격 인상폭은 3%에서 46%까지 다양했다.

정작 서울시의 산후조리경비 도입은 정부가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협의에서 ‘시장가격 인상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면서 반려됐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변경할 때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협의를 요청해야 한다. 정부의 반려 이후 서울시는 해당 비용을 바우처 형태로 바꿔 지원했다. 서울시는 정부와 협의 절차도 끝내지 않고 지원책을 발표했다가 지원은 못하고 시장가격만 미리 올려버린 셈이 됐다.

게다가 서울시가 지원하는 산후조리경비 100만원 바우처는 출산 산모가 한약조제, 건강식품 구매, 요가, 필라테스, 마사지 등에 사용할 수 있지만 산후조리원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번 인상된 산후조리원 비용은 낮아지지 않았다. 산후조리경비를 마사지와 산후 관리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산후조리원 비용에서 마사지 요금을 분리해 부과하는 곳까지 생겼다. 출산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재정 지원 정책을 도입하자 관련 업계가 시장가격을 높이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4년 10월 초 아내의 출산을 앞둔 류아무개(32·서울 강서구)씨는 “2024년 3월 산후조리원을 알아보는데 강서구 안에서 예산(300만원)으로 등록할 수 있는 곳은 아예 없었고, 남편이 함께 있을 수 있는 방(400만원)에 마사지(200만원)를 추가해 600만원으로 등록했다”며 “출산 관련 정부 지원이 매년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시장가격이 높아져서 지원 효과를 느끼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다시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부동산 관련 정책도 집값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3년 10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4년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안 분석 자료’를 보면, 국토교통부는 2024년 주택구입자금 대출 예상액 34조9천억원 가운데 신생아 특례대출 자금 26조6천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2024년 전체 주택구입대출 수요 가운데 76%를 신생아 특례대출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2023년 1월 이후 출산한 무주택 가구가 9억원 이하 집을 살 때 최저 1%대 금리로 5억원까지 대출할 수 있는 제도다. 부부 합산 소득이 2억원을 넘으면 받을 수 없다. 해당 자료가 공개된 뒤 참여연대는 입장문을 내어 “또다시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내놨다. 재차 집값을 올려 무주택 서민들의 장기적인 주택 마련 계획을 어렵게 하고 집값 인상에 이은 임대료 인상으로 서민 주거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정부는 특례대출 기준을 재차 완화하고 나섰다. 2024년 6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개최 이후 정부는 자료를 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을 2025년부터 2억5천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시장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부 정책에 수요자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도 매년 확대하고 있는데, 의료기관의 난임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비급여(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서비스가 추가되면서 예비 산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1년 반 동안 난임 진료를 받아온 40대 초반 ㄱ씨는 신선배아이식과 동결배아이식을 합쳐서 여섯 차례 시술을 받았다. 진료받으면서 정부 지원금을 600만원 받았지만, ㄱ씨가 부담한 금액도 3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착상 전 유전자검사(PGT)와 남편 진단검사, 비급여 주사 등 진료를 한 번 받을 때마다 비용이 추가30만~50만원 정도를 매번 자부담으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

ㄱ씨는 “의료진에 비해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급여 검사를 추천하면 일단 받을 수밖에 없는데, 비급여 진료가 계속 추가되다보면 되레 정부 지원금이 남는 경우도 많았다”며 “난임 병원이 서울·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는데, 지역에 거주하는 난임 환자들에게는 교통비와 숙박비 부담도 크다”고 했다. 202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난임 시술 비용은 1회당 평균 184만4354원(남성 21만3812원, 여성 321만4829원)이었다. 2019년 1회당 평균 비용이 127만3668원이었던 것에 견주면 44.8%(연평균 9.7%) 증가했다.

“공공서비스 공급 늘려야 실질적 지원”

이렇게 저출생 관련 대책들이 시장가격을 높이거나 떠받치게 되면 저소득층은 정부 정책의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궁극적으로는 공공임대 주택을 늘려서 집값을 안정화하고 공공서비스를 늘려야 시장가격이 높아지지 않게 할 수 있는데 정부 입장에선 재정 부담이 커 상대적으로 돈이 적게 드는 정책을 선호하고 있다”며 “이런 정책들이 민간 수요를 자극해 가격이 높아지면 저소득층은 경제적 부담 등으로 출산을 결심하기 더욱 어려우므로 저소득 지원을 더 강화하고 공공서비스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난임주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난임주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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