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엑스(X)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얼마 전 달에 보내는 우주선에 ‘절친’ 제프 쿤스의 작품을 싣도록 했습니다. 친구를 잘 둔 덕에 쿤스는 자기 작품을 달에 보낸 최초의 예술가가 되었죠. 과학기술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상업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기술을 장악합니다. 페미니즘은 여기에 적극 개입해야 하고요.”
2024년 5월3일 한국여성학회(회장 이현재)와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소장 박인찬)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아카넷이 후원한 국외 석학 초청 화상 포럼에서 로지 브라이도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 교수는 힘주어 말했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의 저자이며 ‘포스트휴먼’ 논의에서 가장 권위있는 이론가다.
그는 백인 서구 남성 이성애자 중심의 ‘인간’ ‘인류’라는 고전적인 ‘휴먼’ 개념이 여성·소수자·토착민·탈식민지인·비유럽인과 비인간 동식물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휴먼’을 넘어선 ‘포스트휴먼’을 강조해왔다. 포스트휴먼은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탈피한 인간, 휴머니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 개념 또는 인간성을 가리킨다.
미국 우주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가 개발한 달 착륙선 ‘노바-시(C)’, 이른바 ‘오디세우스’를 우주로 쏘아보낸 로켓 발사체는 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 엑스가 맡았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일론 머스크를 “우주를 식민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반페미니스트,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 극우 성향의 민족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이들의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때 ‘우리’는 건강하고 젊은 신체만 포함한다. 다수의 인류는 우주 공간을 청소해야 할 운명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 2024년 2월23일(현지시간) 달에 도착해 인류 최초 민간 달 착륙선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오디세우스’는 곧 쓰레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달 표면의 울퉁불퉁한 지형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면서 착륙했고, 안테나와 태양 전지가 달 표면 쪽으로 향한 채 누워 버려 통신과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관제센터는 곧 우주선을 포기했고 착륙선과 제프 쿤스의 작품은 그 즉시 거대한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이미 달 표면엔 폐기 처분된 일본 달 탐사선 ‘슬림’을 비롯한 여러 우주선 쓰레기들이 존재한다.
“인류는 달에 거주하기 전부터 이미 달에 쓰레기를 쌓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소외된 것들을 적극 고려하는 페미니즘적 개입이 없다면 일론 머스크의 우주 개발이 아무리 은하계적이더라도 우주적 삶 자체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을 구분했다. 그는 기술의 긍정성을 거부하지 않지만 기술의 위험을 더 경고하는 쪽이다. ‘트랜스휴먼’이 기술을 통해 인간 몸의 생물학적 한계와 지구의 자원고갈 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갖는다면 ‘포스트휴먼’은 인간중심적인 ‘휴먼’의 한계를 극복하고 여성·소수자 등 소외된 것을 포함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특히 포스트휴먼의 관점에 페미니즘이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올랭프 드 구주(1748~93) 등 이미 18세기부터 페미니스트들은 ‘휴먼’이란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며 사회 정의와 평등, 민주주의에 개입해온 오랜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후기식민지인·탈식민지인·토착민이 도전했던 것처럼 기존의 ‘인간’의 범주에 도전해온 정말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로봇공학·인공지능·유전학·재생의학 분야의 발전으로 인간이 몸을 통제하게 된 이 시대에 우리가 정말 신중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정치와 법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던 사람들이 가진 비판적 통찰과 상황적 지식을 어떻게 앞으로 활용하는가입니다.”
이날 브라이도티 교수는 기술 사용에 능숙한 ‘데이터 페미니스트’ 또는 ‘디지털 페미니스트’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유럽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상당히 기본적인 페미니즘 의제의 핵심으로 회귀해 폭력 근절, 평등, 동일임금, 안전과 존중, 디지털 가부장제에 깊이 뿌리내린 성폭력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디지털 페미니스트들이) 시급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체성 문제에만 집중하지 마세요.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시대에는 기후변화 위기, 기술 향상, 사회적 불공정, 정치적 포퓰리즘, 우파의 저항이 함께합니다.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의 의제는 세대를 아우르고 횡단해야 하며 사회·환경·기술 문제를 서로 관련지어 바라봐야 합니다. 기후위기·인공지능·이주나 빈곤의 상호 연결성을 의식하며 차이와 범주를 넘어서고 세대간에 횡단하는 사고가 필요합니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오늘날 각광받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시 환기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젊은 세대는 민주주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이고 푸틴이든 시진핑이든 일론 머스크든 시대를 정의하는 일을 자처하는 남자에게 끌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권리를 위해 투쟁할 때 민주주의는 항상 이를 보장해주었는데 그냥 이렇게 손을 떼야 하는 것인가요.”
그는 이런 지적도 이어갔다. “논의, 제발요.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유를 한번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우리가 싸우고 저항하면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는 특히요. 서구 휴머니즘의 장점 중 하나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보를 향한 비전과 해방으로 가는 프로그램을 수반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동일하게 인간답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면서도 휴머니즘의 전통을 간직하면서 ‘포스트휴먼’이라는 지평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오랜 투쟁의 역사와 계보를 갖고 있는 페미니즘은 지금의 기술·환경·문제에 개입하면서 ‘인간’에 포함되지 않는 타자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또 페미니스트 공동체, 성소수자 공동체, 장애인 공동체가 적절한 기술과 인공지능, 인간 몸 향상에 관한 논의에 동참해주길 호소하며 특히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더 넓은 문제를 주시하라”고 조언했다.
“우리는 모두 같지 않지만 큰 변화를 함께 겪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시대에는 기후변화, 기술 향상, 사회적 불공정, 정치적 포퓰리즘, 우파의 저항이 함께합니다. 차이와 범주를 넘어 횡단하는 사고야말로 중요합니다. 인간만 단독자로 보는 칸트의 패러다임 속에서 벗어나 인간에 관한 급진적인 사고를 가져주십시오. 인간-비인간, 자연-문화의 연속체에서 여성은 인간과 비인간의 가교이자 수호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미래를 사색하는 일은 페미니스트들이 항상 해왔던 일 중 하나입니다. 지구를 돌보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육성희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인간’이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용어가 아니었던 것처럼 ‘기술’도 투명하거나 중립적이지 않으며 기존의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에 ‘인간’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하는 만큼 ‘기술’에 대한 비판적 사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브라이도티 교수는 “나는 분명 테크놀로지를 싫어하지 않지만 테크놀로지에 비판적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특히 온라인 포르노그래피에 대해 쿨한 척하는 것을 그만해야 하며 기술이 이윤을 위해 우리의 몸과 성을 약탈해가는 것에 반대해야 하며 이 시대엔 여성 친화적, 엘지비티(LGBT) 친화적, 장애인 친화적 기술과 다른 알고리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여성학회 회장인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가 “생물학적 남녀 이분법을 강조하는 정체성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브라이도티 교수는 “우리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적에 어떻게 대응할지 함께 생각해야 하며 미국의 페미니즘 내 문화전쟁 같은 것은 그냥 미국에 두고 가져오지 않길 바란다”고 답했다.
청중 이아람씨가 포스트휴먼에 대한 의미를 묻자 브라이도티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의학, 정보학, 유전학의 증진에서 경제정의와 민주주의를 고려되지 않는다. 반면 ‘포스트휴머니즘’은 자본과 이윤 창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토론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누가 결정 내릴지를 고민하고 변혁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황주영 서울시립대 강사는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을 자연과 가까운 것으로 보거나 본질화한다고 비판을 받는데 포스트휴먼도 여성을 자연과 가까운 것으로 보는가”라고 질문했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에코페미니즘은 포스트휴먼의 자원이며 에코페미니스트 발 플럼우드가 ‘자연/문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 역시 자연과 문화를 이분화시키는 유럽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자연/문화는 분리될 수 없고 내 책의 300개가 넘는 각주에서도 비서구권, 토착민 페미니즘 저작을 언급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페미니즘 내의 문화전쟁’ 미국에 두고 가져오지 말라”(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16.html)로 이어집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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