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 지역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김서진(9)은 2023년 6월께 받은 학생 구강검진에서 다발성 치아우식증(충치) 진단을 받았다. 어린이 치아(유치) 개수는 위아래로 총 20개다.(아래 그림 참조) 서진에게는 유치 10개에 우식증이 있었다. 10개 중 2개는 일부를 긁어내고 치과용 재료로 메우는 충전치료로 끝낼 수 있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돼서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주로 음식을 씹을 때 쓰는 어금니(유구치) 8개는 신경치료와 치아를 많이 깎아내고 ‘크라운’을 씌우는 보철치료가 필요했다. 이 치료는 치아 한 개당 10만원 넘는 비용이 들었다.
서진과 달리 광주광역시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조유연(8)에게는 현재 충치가 없다. 유연과 동생은 생후 18~21개월 무렵부터 3개월 간격으로 치과를 찾는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치료받는다. 2021년부터는 어금니 8개의 홈을 메우는 시술을 받았다. 어금니의 씹는 면에 깊고 좁은 홈이 있는데, 이곳에 음식물이 잘 끼고 칫솔질로도 잘 닦이지 않아 충치를 유발하기 쉽다. 이때 미세한 홈을 치과용 재료(실란트)로 메우면 음식물이나 세균이 끼지 못하고, 칫솔질이 쉬워져 충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1년마다 학교에서 구강검진을 받는 서진한테 1년 만에 충치 10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서진은 지난해 검진에서도 충치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돈이 문제였다. 한 달 소득 200여만원으로는 차상위계층, 다자녀 가구의 기본 의식주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쉽사리 치료를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 세균은 아이의 치아 속을 점점 깊이 파고들었다. 식사할 때 통증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잦아졌다. 서진의 엄마는 지역 사회복지사의 안내로 아동복지 전문기관에서 진행하는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신청했다. 서진은 지난 10월 어금니 8개의 치료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유연에게 충치가 없는 것은 어머니 이아무개(38)씨의 철저한 관리 덕분이다.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은 3만원인데 나중에는 300만원이 된다’고.” 이씨는 치아를 관리하면서 많이 고생했는데, 성인이 된 뒤 한참 지나서야 ‘선천성 치아 결손’임을 알았다. 자녀를 낳은 뒤 이씨는 “지금 번거롭더라도 내 자식은 엄마 같은 고생을 안 하게 해야겠다”는 마음먹었다. 서진이네처럼 외벌이 가구지만 소득수준이 중산층인 유연이네는 부모가 모두 육아 정보에 관심이 많다.
남매는 보건소에서 불소를 치아에 도포받고 이곳에서 나눠준 불소 구강청결제를 사용한다. 불소는 치아의 가장 바깥 부분인 법랑질을 단단하게 하고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양치질도 꼼꼼히 한다. 때로는 이씨가 치실을 써서 이와 이 사이를 관리해주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장소였기에 아이들은 치과를 가는 일에 거부감도 없다.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도 치과를 무서워해서 ‘웃음가스’(의료용 아산화질소)·수면치료 등 진정요법을 쓰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흔치 않은 일이다. 심지어 유연은 치과 진료대 위에서 편안히 잠들기도 한다.
인간의 치아는 두 번 난다. 태어나 6개월 무렵 나기 시작한 유치는 10살 전후로 빠진다. 전문가들은 어차피 빠질 이라고 유치 관리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유치는 새로 나서 죽기 전까지 써야 하는 영구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식증이 있는 유치를 방치할 경우, 자라나는 영구치에도 충치를 유발할 수 있다. 유치와 영구치가 나는 아동·청소년기에 치아우식증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 노년까지 건강한 치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서진과 유연이 같은 어린이의 치아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경제적 소득 수준’이었다. ‘건강형평성확보를 위한 치아건강시민연대’는 2023년 9월 기자회견을 열어 “12살 아동의 치아건강 수준은 대부분의 지표에서 소득수준에 따라 그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의 6월 ‘2021~2022년 아동 구강건강 실태조사’ 원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치아건강시민연대의 분석 결과를 보면, 영구치에 충치를 경험한 적 있는 비율은 소득수준이 ‘상’이라고 응답한 아동집단에서 58%였다. ‘하’ 집단에선 60%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개 이상 치료되지 않은 충치를 가진 아동 비율’(영구치우식유병률)은 달랐다. 이 비율은 소득수준 상 집단이 5.6%, 하 집단이 12.4%로 2.21배 차이가 났다. 충치뿐 아니라 잇몸출혈 등 잇몸에 이상을 경험한 비율도 소득수준 하 집단은 10명 중 4명꼴(44.3%)이었지만, 상 집단은 10명 중 3명(33%)이었다.
자료를 분석한 이흥수 치아건강시민연대 집행위원장(원광대 치과대학 교수)은 “구강건강 분야를 오랫동안 추적해왔지만 깜짝 놀랄 정도”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소득 양극화에 따른 구강건강 불평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이 치료가 필요한 아동을 방치하는 현실이 반영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치과 치료가 필요한데도 치료받지 못한 아동의 비율도 소득 상 집단(15.3%)보다 하 집단(29.3%)이 1.9배 더 많았다. 특히 ‘경제적 원인’으로 치료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소득수준 하 집단이 9.1%였다. 소득수준 상 집단은 0.9%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10.11배 더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는 중학교 1학년인 만 12살이 자신의 가구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소득에 따라 구강건강 편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고작 ‘이 하나’라며 중요성을 간과하기엔 구강건강은 생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음식물을 씹는 저작 기능이 약해지면 성장기 아동·청소년은 영양 불균형과 소화장애 등의 문제로 성장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정신적·사회적 안녕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구강에 문제가 있을 때 나는 입냄새는 교우관계 등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이가 약해지는 노년기의 행복에는 이가 언제까지 건강하냐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씹는 행위는 치매에 걸릴 확률을 낮춘다. 또 제대로 씹지 못해 소화가 잘 안되면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전신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살려주세요.”
2023년 10월30일 오후 4시께, 강릉원주대 치과병원 2층 진료대에 누운 박우정(8)은 이승현 전임의(예방치과)에게 말했다. 우정은 긴장한 듯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몸통이 들썩거렸다. 의사는 “살려달라고? 이건(치아홈 메우기) 아플 수가 없어”라고 우정에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정이 어른어금니(영구치)가 많이 났는데, 어금니의 구불구불한 곳 틈으로 충치벌레가 들어가. 충치벌레가 들어가면 싫지? 충치벌레를 무섭게 해서 도망가게 할게. 우정이에게 무서운 건 아니야. 왼쪽부터 볼게. 크게 ‘아’ 해봐.”
“말랑말랑 솜이야. 이렇게만 잡고 있을게. 여기다가 바람을 불게. 아주 잘하고 있어. 충치벌레 살충제(치과용 재료)를 바르는 거니까 하나도 안 아파. 선생님은 거짓말하지 않아. 잘 바르고 있는데, 이제 선생님이 잠자는 충치벌레를 이렇게 청소기로 가져갈 거야.”
시술 과정 하나하나를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조곤조곤 설명하는 의사의 목소리에 우정은 긴장이 풀렸는지 손에 힘을 풀고 편안하게 진료대 아래쪽으로 늘어뜨렸다. 눈에 띄게 들썩이던 몸통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옆 진료대에 누운 이지현(8)도 순조롭게 치아홈 메우기 시술을 받았다. 이날 병원 인근 지역아동센터에서 함께 온 초등학생 네 명은 한 명도 울지 않고, 각각 어금니 네 개의 홈을 메운 뒤 센터로 돌아갔다.
이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얌전히 진료받았던 것은 아니다. 예전 기록을 살펴보면 아이들의 몸을 묶고 치료하거나 웃음가스 등 진정요법을 이용해 겨우 치료했다는 내용이 있다. 의사는 “다행히도 시간이 좀 지났고 치과에 익숙해져서인지 아이들이 잘 협조해줬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한 개씩 나눠서 (치료)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치과 공포가 심하면 오늘처럼 한 번에 여러 치아의 홈을 메우지 못하고 네 번에 걸쳐 병원에 올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강릉원주대 치과병원은 2008년부터 사회취약계층 아동·청소년의 구강건강 증진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저소득층에 예방 중심 치과 서비스를 해서 미충족 필수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참여 대상은 강릉 내 20개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거나 드림스타트(취약계층아동 통합서비스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아동·청소년이다. 병원은 지역아동센터협의회, 강릉시와 협력해 해마다 500여 명을 진료했다. 아동·청소년 4~10명이 지역아동센터 담당자와 함께 승합차를 타고 병원을 찾는다.
연초부터 중순까지는 예방치과에서 검진과 기본 예방관리를 받고, 검진 결과 충치 치료나 치아홈 메우기, 교정이 필요하면 다시 진료일을 잡는다. 치료해야 하는 상태가 되기 전에 예방하고, 문제가 있으면 초기에 치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날 병원을 찾은 초등학생들도 상반기 검진에서 치아홈 메우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아이들이었다.
레지던트 3년, 전임의 1년 등 4년 넘게 공공진료를 하면서 이승현씨는 미성년자가 유치가 아닌 영구치를 상실한 극단적인 사례도 적잖이 봤다. 충치가 심해져 치아가 뿌리까지 손상된 경우다. “올해 기억나는 것만 해도 대구치(뒤어금니)를 상실한 아이를 다섯 명쯤 봤어요.”
강릉원주대 치과병원 검진에서 이상이 있음을 발견해 소아치과 등으로 연계하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해 더 악화하는 일도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정기검진 일정이 아닌 이상 추가 치료가 필요한 아이만을 데리고 병원까지 오는 게 쉽지 않다. 또 치료하려면 보호자의 진료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병원에 함께 와야 한다. 하지만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 등 취약계층은 보호자가 생업을 제치고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오기 어렵다. 감기처럼 열이 나거나 피가 나는 외상이 아니기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도 한다.
“치료가 필요해서 다른 과로 보냈는데, 기록을 보면 치료를 안 받아놓고 다음해 검진 때 병원에 와요. 그동안 옆의 다른 치아에도 문제가 생기기 쉬워요. 결국 인접한 큰어금니도 망가지고, 20살쯤 이 서비스가 종료될 때는 작은어금니(소구치)밖에 안 남는 경우도 있어요. 큰어금니는 아예 없어져버리거나 전혀 기능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요.”
정세환 강릉원주대 치과병원 교수가 제안해 16년째 진행 중인 강릉 사례는 2010년대 초중반 여러 지방자치단체로 확산한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의 모태가 됐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중앙정부 사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2021년부터 광주·세종시에서 초등학교 한 학년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하고, 2024년에는 전국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의 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은 사회취약계층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과 재산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6개월마다 한 번씩 주치의를 찾을 수 있다. 주치의는 구강건강을 확인한 뒤 예방진료와 구강관리 교육을 한다. 차이는 또 있다. 지자체 사업일 땐 지자체가 아동의 진료비를 부담했지만, 중앙정부 사업은 본인부담금 10%가 있다.
이런 ‘보편적 의료 보장’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저소득층의 참여율은 고소득층보다 낮았다. 소득수준이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참여율은 41.2%(광주), 59.2%(세종)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하위 20% 가구의 참여율은 각각 9.1%(광주), 5.5%(세종)로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정세환 교수는 “이 가치(구강관리)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이 이용한 것”이라며 “구강건강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고, 유·무형의 자원이 있는 부모가 적극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 가치를 이해하게 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현씨도 “치과에 아이를 데려갈 만한 어른이 없다면, 오히려 이런 서비스가 격차를 더 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바닥에 있는 층은 적어질 수 있지만, 하위층의 건강 수준은 밑으로 더 떨어지고 상위층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정 교수는 저소득층이 더 쉽게 의료서비스에 접근하게 하려면 이들이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겠다는 정부의 명목에, 정 교수는 “성인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어린이나 장애가 있는 고령 노인 등은 필수적인 치과의료를 받을 때 문턱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독일과 네덜란드 등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18살 미만 아동·청소년의 본인부담금을 면제한다.
강릉(강원)=서혜미 기자 h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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