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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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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우리술의 젊은 흐름과 어른의 힘

코로나19 이후 기지개 켠 전통주 시장, 탁주·청주·소주 전통적 방식에 새로운 재료·디자인·마케팅 결합해 다채로운 변화 일궈
등록 2023-09-22 09:39 수정 2023-09-24 04:48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전통주갤러리’에 전시된 다양한 우리술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전통주갤러리’에 전시된 다양한 우리술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3년 9월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전통주바. 저녁 6시, 가게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젊은 사람들이 동시에 우르르 입장했다. 다양한 칵테일과 위스키, 전통주, 맥주를 파는 가게에서 손님 상당수가 전통주 칵테일을 주문했다. 이 집의 가장 유명한 전통주 시그니처 칵테일을 시키자 사람들의 눈길이 한데 쏠렸다. 바텐더가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연기를 내뿜는 쇼를 보여준 뒤 도자기잔에 담긴 술을 내밀었다.

“조선 3대 명주인 죽력고를 베이스로 해서 오미자, 꿀, 크림 등을 이용해 과일막걸리 같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대표 칵테일입니다.”

한 잔에 2만8천원이라니 결코 가볍지 않은 가격이다. 먹자마자 혀끝에서 크리미한 맛과 달콤한 맛이 동시에 올라왔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여러 자리에서 전통주 이야기가 오갔다. 옆에서 전통주 칵테일을 마시던 한 여성이 바텐더에게 말했다.

“홍범도 흉상 이슈 아시죠? 홍범도를 주제로 한 전통주 칵테일을 만든다면?”

바텐더가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 홍범도라… 고민해보겠습니다.”

명동이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이 전통주바에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 손님도 상당수 드나든다. 우리술에 관심을 보이면 인근에 있는 ‘전통주갤러리’로 연결해 손님을 보내주기도 한단다. 바텐더는 “위스키는 향과 맛의 기본 틀이 있지만, 우리술은 맛이 어려워서 칵테일을 만들 때 (맛을) 끼워 만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통주바는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인천, 대전, 대구, 부산, 춘천, 광주, 제주 등 전국에서 성업 중이다.

국내 농산물 와인은 전통주 ○, 대부분 막걸리는 전통주 ×

2021년 전체 주류시장 규모는 출고금액 기준 약 8조8300억원인데 이 중 희석식 소주와 맥주가 약 81.2%를 차지했다. 전체 주류 시장에서 전통주 비중은 출고금액 대비 1.1%에 불과하다.(농림축산식품부, 2022년도 주류시장 트렌드 보고서) 통계로만 본다면 전통주는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거의 음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1%가 엄청난 성장이라 보는 전문가도 있다. 그 전엔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을 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소주나 막걸리는 전통주가 아닌가. 전통주는 크게 지역특산주와 민속주로 나뉜다. 주세법상 법적으로 인정된 농업경영체와 생산자단체가 직접 생산하거나 제조장 소재지, 그 인접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이 지역특산주다. 100% 우리 농산물이 아니더라도 국가무형문화재, 시도무형문화재 보유자, 대한민국식품명인(주류 분야)이 만든 민속주도 전통주에 해당한다. 법적 규정 때문에 국내산 농산물로 생산하는 와인이나 진은 한국의 전통 방식이 아니더라도 전통주 자격을 얻고, 막걸리나 약주는 오히려 전통주에서 제외돼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음식점이나 슈퍼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막걸리는 대부분 수입쌀이 주원료에 섞여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전통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고구마나 타피오카 등을 발효해 증류한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첨가한 희석식 소주도 전통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박재범 소주’로 큰 인기를 끈 농업법인 원스피리츠의 원소주는 100% 원주쌀로 만들어 전통주 자격을 얻었다.

전통주로 인정받으면 온라인 통신판매를 할 수 있고 주세도 50% 감면된다. 1998년 처음 우체국에서 전통주 통신판매를 허용한 뒤 2017년부터 전통주 보호를 위해 일반 인터넷 쇼핑몰에서 전통주 판매가 허용됐다. 하지만 전통주 매출 규모는 2015년 409억원에서 2017년 4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전통주 산업이 급성장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때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 531억원, 2021년 941억원, 2022년 1629억원으로 전통주 매출은 껑충 뛰었다. ‘혼술’ ‘홈술’ 문화가 확산했고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전통주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법적 전통주 범주에서 벗어났지만 소비자가 전통주로 받아들이는 술을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등록된 주류제조면허를 보면, 2005년 1422개에 머물렀던 면허가 2022년 2885개로 늘었다. 하지만 이는 발급한 면허 수일 뿐, 전국 양조장이 총 몇 개이고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술이 총 몇 종인지 어렴풋한 정부 통계조차 없다. 전문가들도 최소 2천~3천 가지의 한국술이 있으리라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주류면허 전문 큰나무행정사사무소의 김우영 행정사는 “코로나 시국 때 술 수입이 힘들었고, 젊은이들이 전통주 생산을 위한 주류면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소규모 양조장이 많이 탄생했다. 주류법이 엄격해 직접 담근 과실주라도 주류면허가 없다면 판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사실 등록되지 않은 한국술은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동시대적인 술 빚기를 지향하는 양조장 ‘이쁜꽃’ 양유미 대표가 탁주 ‘사랑과 용기’를 손에 들고 있다. 오른쪽 양조 탱크 위에 놓인 것은 약주 ‘황새’.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가장 동시대적인 술 빚기를 지향하는 양조장 ‘이쁜꽃’ 양유미 대표가 탁주 ‘사랑과 용기’를 손에 들고 있다. 오른쪽 양조 탱크 위에 놓인 것은 약주 ‘황새’.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예측 불가능성, 장점이자 단점

2022년 12월 기준 소규모주류면허를 가진 매장은 전국 359곳 중 서울이 93곳(25%)으로 가장 많다. 서울 강서구 일대의 쌀인 ‘경복궁쌀’로 막걸리를 빚는 한강주조 등 ‘힙’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성수동 등지에서 술을 빚는 젊은이도 많이 생겼다. 2023년 9월18일, 서울 양조장 중에서도 엠제트(MZ) 소비자에게 관심받는 ‘이쁜꽃’을 찾았다. 이 업체는 서울 충무로에 연구실을, 마포에 양조장을 뒀다. 국내 유수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에서 협업 제안을 받았고 소량 생산하는 탓에 많은 주류업장이 줄을 서서 이곳의 술을 받아 간다.

이쁜꽃의 슬로건은 ‘가장 동시대적인 술을 만드는 주류회사’다. 1987년생인 양유미 대표는 젊은 세대 양조사다. 그는 현대적인 라벨에 만화로 양조 과정과 경험을 보여주는 마케팅을 처음 시도했다. 자칭 “스트리트 출신”으로 정통으로 술빚기를 배운 적이 없다. 양조장 ‘곰세마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빚은 술(‘어린 꿀술’)을 마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한민국 술의 미래”라고 이 술을 극찬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양 대표는 이후 구름아양조장을 거쳐 2021년 이쁜꽃을 창립했다.

양 대표는 꿀·건포도·레몬 같은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 탁주, 청주, 소주 등 전통 방식으로 빚는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2023년 여름 서울 용산구의 핫한 식료품점 ‘먼데이모닝마켓’과 협업한 ‘햇살주 AM11:30’은 쌀과 패션프루트로 만든 퓌레, 꿀을 담고 감칠맛을 살렸다. 충남 서천 양조장 옥순가와 협업한 1.8ℓ짜리 됫병 약주인 ‘황새’, 황새를 증류해 만든 불소곡주 ‘뱁새’를 만들기도 했다. 황새는 내추럴와인 같은 인상이고, 뱁새는 마지막에 생강향이 치고 올라온다. 2023년 봄 출시돼 여름이 끝날 무렵 완판한 탁주 ‘사랑과 용기’는 꿀, 복숭아, 건포도, 레몬, 생강, 후추를 넣어 단맛이나 신맛이 강하지 않고 가볍고도 풍부한 맛이다. 새로운 재료로 다양하게 시도하지만, 전통주의 빠른 변화 속도가 가끔은 어지럽다고 양 대표는 말했다.

“한국술의 안타까운 점은 규격화, 표준화가 어렵다는 점이에요. 글로벌 마켓에서 어필하기엔 아직 각개전투를 하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술은 다양하지만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소비자가 이용하기 힘든 측면도 있어요. 우리는 정말 작은 회사이지만 어떻게 하면 같이 한국술의 합의점을 찾을지 고민합니다. 이젠 무언가 통합된 것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주연구소 한켜에 자리잡은 술들. 박록담 소장이 재현한 우리술들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주연구소 한켜에 자리잡은 술들. 박록담 소장이 재현한 우리술들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주식인 곡식으로 아로마향을 내는 술

전통주의 뿌리는 집마다 빚는 가양주다. 한국술 르네상스의 토대를 만든 서울 종로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은 ‘21세기 한국전통주 대부’로 불린다. 1987년부터 133명의 우리나라 밀주(가양주) 제조자들을 만나며 술빚기를 배웠고 마치 수도자 같은 자세로 우리술 재현에 몰입해 절치부심 연구하며 제자들을 길렀다. 직계 제자만 해도 3만 명에 이른다. 술깨나 빚는다는 전통주업계 양조인 대다수가 그에게서 술을 익힌 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소장이 집요하게 수집한 주방문(레시피)만 1037개고, 재현한 우리술만 해도 850개에 이른다. 박 소장의 술은 21세기 한국술의 중요한 기둥이 됐고 그에게 술맛을 인정받으면 라벨에 ‘박록담류’라는 마크를 새길 수 있다. 박 소장이 보증하는 술이라는 상징인 셈이다. 각종 품평회에서 상 받는 술들도 그의 제자가 빚는 술이 적지 않다.

박 소장은 우리술의 가장 큰 특징을 “주식으로 빚는 것”이라고 말했다. “빵 먹는 사람들이 포도로 술을 빚지만 우리는 평생 먹는 주식인 곡식으로 술을 빚기 때문에 몸에 더 좋고 차별성이 있다”고 했다. “와인은 애초 맛있는 포도로 빚어 향과 맛이 뛰어나지만, 우리술은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쌀·누룩·물만으로 빚는데도 아로마향이 나니 놀라운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오크통에 숙성해서 향을 넣거나 기타 첨가물을 블렌딩해서 맛이나 향이 좋아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우리술은 그 자체로 향과 맛을 내야 경쟁력이 있죠. 누룩향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곰팡이 문화가 아닌 곳에서는 그런 향을 부패취로 봐요. 쌀에서 일정한 과실향, 꽃향이 나게 하려면 엄청난 숙련도와 기술이 필요합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이 숙성실에서 제자가 빚은 술을 확인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이 숙성실에서 제자가 빚은 술을 확인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1999년 10월 문을 연 한국전통주연구소는 2014년 종로에 자리잡았다. 이전하자마자 세월호 참사, 촛불시위가 이어졌고 곧이어 메르스와 코로나19가 닥쳐와 연구소 운영이 힘들 정도였지만 코로나19로 전통주 바람이 불어 반전을 맞았다. 최근 박 소장은 길거리의 외국인 관광객도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2022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진(김석진)이 우리술에 관심을 보이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우리나라 최고 명인을 소개해주겠다며 박 소장을 만나게 해준 것이 계기였다. 진은 이때 맺은 인연으로 2022년 한국전통주연구소가 주최하는 제13회 대한민국 명주대상 특별심사위원으로도 참석했다. 2023년 제14회 대한민국 명주대상은 10월13일부터 15일까지 충남 예산시장에서 열린다.

“석진씨 같은 아티스트의 활동으로 외국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전통주 통신판매가 가능해져 우리술이 활기를 띠었는데, 그조차 대기업이 장악한다면 미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시기를 잘 살리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거예요. 법적으로도 개선점이 많죠. 우리 전통의 맑은 술을 ‘청주’라 이르지 못하고 ‘약주’라 불러야 하는 현행법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법적으로 청주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주세법에 따라 쌀만 이용한 일본 사케 중심의 제조법을 따른 것만 가리키고, 전통 방식을 따르는 청주는 법적으로 ‘약주’라고 해야 맞는다. 박 소장은 이제 우리 전통의 맑은 술을 청주로 부르도록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차례상에 가장 어울리는 술로도 그는 맑은 술인 청주를 권했다.

“추석엔 원래 햅쌀로 빚은 술을 올리는 거예요. 페어링도 추석 무렵 나오는 것으로 만든 음식이 가장 어울리죠. 그게 세상 돌아가는 순리라고 생각해요. 전통주연구소 설립 25년이 되는 내후년에는 양조 기술을 인큐베이팅하고 멋있게 마시는 술자리, 술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계절에 맞는 음식을 함께 먹고, 음악 한 가락 있고 서예도 하는 그런 문화 말이죠.” 추석에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한인 1.5세, 2세, 3세 200명을 대상으로 시서화를 나누고 술과 음식을 함께하는 행사를 할 예정이다.

‘박록담류’ 전통주들. 각종 품평회에서 상을 받은 술이 적지 않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박록담류’ 전통주들. 각종 품평회에서 상을 받은 술이 적지 않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전통주갤러리를 찾은 외국인들이 전통주를 시음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전통주갤러리를 찾은 외국인들이 전통주를 시음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변화를 담아 표준화 과정 거친다면 금상첨화

2023년 9월19일 오후 전통주갤러리에는 외국인 예닐곱 명이 바에 서서 한국 전통주를 시음하고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설립한 이곳엔 하루 500~600명이 방문한다. 외국인 시음회는 하루 두 번 영어로 진행한다.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은 “한국술의 특징은 우리 농산물로, 가장 친근한 재료를 사용한 것”이라며 “요즘은 재료가 트렌디하게 바뀌어 주정은 쌀·보리지만 바질 같은 허브를 부재료로 사용해 다양성이 더해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저게 술인가 싶을 정도로 디자인도 참신하고 병의 재질도 특이한 것을 쓰는 등 모든 게 젊어졌어요. 이제 술을 빚는 사람들은 자신의 술에 대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새로운 재료에 대한 설명, 디자인, 먹는 방법도 새롭게 제안합니다. 인터넷과 인스타그램 등으로 어떻게 잘 알릴지 함께 고민하고요.”

남 관장은 최근 전통주 점유율이 1%를 넘은 것이 어마어마한 변화이고 술의 종류가 다양해진 것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평가했다. “당장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에서 맥주 주조와 비율을 명시해놓은 법령인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처럼 술의 레시피를 법제화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점차 표준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담은 다양한 술을 음식문화와 함께 소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했다.

“최근의 변화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 과실주들은 오미자, 단감, 떫은 감, 홍시, 다래 등으로 여러 술을 빚을 수도 있고 다양한 양조기법에 따라 정말 술이 무궁무진하죠. 묵직하고 변함없이 꾸준한 술도 있지만 중간중간 반짝반짝하는 술도 있어야죠. 시대적 흐름과 전통적인 어른의 힘이 뒷받침된 술들이 공존해야 우리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주갤러리 소장 남선희.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전통주갤러리 소장 남선희.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우리술 품평회 눈여겨보세요…한가위에 무엇 마실까

한국 전통주는 형태에 따라 탁주, 청주, 소주(증류주)로 나뉜다. 대부분 곡주이자 발효주로, 술을 거르는 방법에 따라 청주와 탁주로 나뉘는데 이것을 다시 증류기를 이용해서 순수한 알코올만 추출하면 소주가 된다. 우리나라 술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술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탁주이고 그 대표 격이 막걸리다. 흐린 탁주는 감칠맛과 청량미가 뛰어나다.
청주는 탁주와 반대쪽의 주류로서 우리 전통주의 근간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삼해주, 호산춘, 하향주, 석탄주, 방문주, 동정춘, 백화주 등 수많은 청주가 자웅을 겨뤘다. 법적으로는 ‘약주’라 일컫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술만을 청주로 분류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는 삼국시대 이래 면면히 내려오던 술빚기가 최고 전성기를 이뤘다. 집집이 향기로운 가양주를 빚었다. 하지만 양곡을 수탈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주세령을 내려 가양주는 불법이 됐다. ‘청주’라는 이름조차 빼앗겼다.
2000년대 초반 한류 드라마의 영향으로 일본에 막걸리 열풍이 일었다. 2010년대 초반엔 이명박 정부가 막걸리 세계화 사업을 본격 추진했지만 2015년께 막걸리 열풍이 꺾이면서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원소주가 출시된 뒤 지금까지 소주가 우리술 업계의 화두가 됐다.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은 “막걸리 열풍에서 청주를 건너뛰고 소주로 유행이 넘어간 것은 못내 아쉽다. 청주의 맛과 향이 좀더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소득자원연구소에서 전통주를 연구하는 이대형 박사는 “전통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선 우리술 품평회에서 입상한 제품들부터 살펴보는 게 좋다”고 했다. 우리술 품평회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우수 제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국가 공인 주류 품평회다. 2023년 대통령상을 받은 제품은 수도산와이너리의 ‘트라테 미디엄 드라이’. 경북 김천시의 해발 1317m에서 유기농 방식으로 직접 산머루를 재배해 발효시켜 만든 과실주로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했다. 이런 와인류가 ‘우리술’로 인정받는 것이 최근 가장 큰 변화라면 변화다. 이 박사는 우리술의 장점을 다양성에 있다고 꼽았다.
“최근 우리 전통주는 바질, 호박, 샤인머스캣 등 생각지도 못했던 부원료들을 넣어 만들면서 맛의 다양성이 확장됐다. 이에 따라 기존 획일화된 맛보다 다양성을 즐기려는 젊은층에 어필하면서 전통주 소비가 증가하는 듯하다. 아직 시장이 약하다보니 양조장이 너무 많으면 과열경쟁이 걱정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만들고 소비하는 것이 확대된다면 미래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많이 소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대형 박사가 추석에 마시기 권하는 술은 가와지 1호 쌀로 만든 ‘가와지 막걸리’, 쌀을 이용해 만들어 황금 들판이 생각나는 내올담 양조장의 담 시리즈 중 ‘담 골드’, 과실주로는 제철 과일 사과로 만든 ‘추사애플와인’ 등이다. 증류주로는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소주 ‘필40’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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