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양숙(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씨와 아들이 박연차(태광실업 회장)씨로부터 수백만불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2017년 9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권 여사는 정보통신법 위반(명예훼손)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정 의원을 곧바로 검찰에 고소했다.
고소한 지 6년이 지났다. 2023년 8월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거짓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37쪽짜리 판결문을 톺아봤다.
먼저 박 판사는 페이스북 글이 허위사실인지 판단하기 위해 사저 근무 경호원의 진술과 경찰 조사 결과 사저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 등을 살펴봤다.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와 권양숙 여사의 진술도 확인했다. 하나같이 정 의원이 언급한 “부부싸움” “가출” “혼자 남아 있다가 자살” 등등이 거짓이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판단하려면 ‘허위사실’인지를 따져야 한다. ‘사실’을 적시해도 처벌하는 일반 명예훼손과는 차이가 있다.
“서거 당일 새벽 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권 여사가 집을 나간 사실이 없다.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듣지 못했다.”(대통령 경호처 소속 경호원)
“서거 전날 18:22부터 서거 당일 05:38까지 권 여사는 집 밖으로 나간 사실이 없다.”(서해 서부경찰서 조사 결과)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심하게 나무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나무라는 일이 없었다.”(권양숙 여사가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할 무렵 권 여사가 가출하거나, 노 전 대통령이 사저에 혼자 남아 있었던 사실도 없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노건호씨 검찰 진술)
정진석 의원이 그렇게 생각할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거짓이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정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진실이라 믿었다며 ①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 ②청와대 전 비서관과의 전화통화 ③문재인 전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
“가출”의 근거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두 차례 대화라고 했다. 2017년 2월16일 정 의원이 이 전 대통령을 만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날 권 여사는 집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또 2017년 11월8일에 페이스북과 관련해 고소당한 일을 이야기하자 이 전 대통령이 ‘왜 겁나냐? 재판이 걸리면 당시 경호원들 증인으로 다 소환하면 될 것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부인했다. “이 같은 내용을 이야기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검찰에 보냈다.
“부부싸움”의 근거는 청와대 비서관 ㄱ씨와의 통화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라고 했다. 정 의원은 페이스북 글 때문에 논란이 생기자 ㄱ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할 무렵 유족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느냐.’ ‘어디선가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비서관은 답했다. 그러나 비서관은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쉽게 말해 ‘카더라’였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09년 6월 노무현 청와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한겨레>와 인터뷰했다. 검찰 소환 조사 뒤 “권 여사님은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 같이 있으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들어오면 다른 자리로 가곤 했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보고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할 무렵 부부 사이에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 판사는 “이 전 대통령이 피고인(정 의원)에게 말해주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가 공적 인물인지, 해당 ‘페이스북 글’이 공적 매체인지도 따졌다. 노 전 대통령 등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은데다 “부부싸움” “가출” “혼자 남아 있다가 목숨을 끊은” 같은 표현은 공공성이나 사회성을 갖춘 사안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양형을 정하면서 △죄질이 좋지 않은 점과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정 의원이 “거칠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 거짓 글을 게재”했으며, “권 여사 등 유족들에게 직접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급기야 정 의원은 2018년 검찰에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극우 성향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을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범행 후 긴 시간이 지났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도 요청했다. 하지만 박 판사는 범행 시점과 판결 선고 시점이 6년 가까운 시간적 간격이 생긴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검찰의 ‘느림보 수사’ 때문이라고 봤다.
실제로 ①2017년 9월 권 여사와 건호씨가 고소한 뒤 검찰은 1년이 지난 ②2018년 8~9월에야 정 의원을 ‘우편조사’했다. 또 1년이 지난 ③2020년 1월 ‘피의자조사’를 했는데 직접조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도 없었다. 다시 1년여 지난 ④2021년 2월과 4월 중요 참고인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시도됐다. 1년6개월이 지난 ④2022년 9월 검찰은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며 5년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봐주기 수사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⑤같은 해 11월 법원은 사건 심리가 더 필요하다며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검찰의 ‘수상한’ 수사 덕에 정 의원은 관련된 다른 형사사건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 기소가 빨리 이뤄졌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박 판사는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매우 단순하고 관련 자료가 충분히 확보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기록상 수사가 매우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합리적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은주 <한겨레>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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