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도 안 되는 화천대유”(2021년 9월 녹취된 김만배씨 발언)가 하나·우리은행 같은 거대 시중은행을 거느리고 수천억원의 개발 이익이 예상됐던 대장동 개발사업을 따냈다. 비결은 뭘까. 2021년 9월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부터 전관 변호사들이 ‘검은손’ 역할을 했으리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의혹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전 <머니투데이> 법조기자)씨가 50억원씩 건네기로 약속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른바 ‘50억클럽’에서 비롯했다. 1년11개월 만인 2023년 8월3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대장동 50억클럽’ 핵심 인물인 박영수 전 특별검사를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로 구속했다. 의혹의 실체가 드러날까. 다른 50억클럽 멤버들(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검사장, 홍성근 <머니투데이> 회장)을 비롯한 화천대유의 고문·자문 등으로 역할을 한 법조인들이 했던 일은 낱낱이 밝혀질까.
박영수 전 특검이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 재직 때(2014년 11월∼2015년 3월) 우리은행이 김만배씨 쪽(성남의뜰 컨소시엄)에 1500억원 대출(여신)의향서를 써주도록 하고 200억원을 받고, 일부(8억원)는 실제 건네받았다는 것이 검찰이 적용한 혐의의 뼈대다. 이와 함께 ‘이름도 없던 신생회사’인 화천대유와 컨소시엄을 유지해준 ‘하나은행의 결정’이 2015년 3월27일 성남의뜰이 대장동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하나은행은 호반건설·부국증권 등 대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으로부터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민정수석을 지냈고 김만배씨와 각별한 관계로 알려진 ‘거물급 전관’ 곽상도 전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한다. 곽 전 의원도 50억클럽 멤버로 의심되는 인물인데 하나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세후 25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는지, 향후 계획이 뭔지는 재판 등을 통해 지켜봐야 한다. 다만 이번 박 전 특검의 구속이 처벌로 이어질지에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그간 검찰의 전관 비리 수사가 솜방망이·용두사미로 그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곽상도 전 의원도 2022년 2월 구속됐지만 8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이듬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사 출신 변호사 ㄱ씨는 “구속 단계에서는 범죄 혐의 ‘소명’만으로도 영장이 나온다. 한 점 의심 없는 ‘입증’과는 달리 전문 증거, 즉 ‘카더라’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그간 검찰의 검찰 선배들 비리 수사를 보면 구속만 되면 끝난다는 식이 많았다. 증거수집 등에 빈틈이 많아서 무죄가 나오면 ‘좋은 변호사를 써서 법원이 봐줬다’고 언론플레이를 해왔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성접대·뇌물로 구속됐다가 무죄가 나왔고, 진경준 전 검사장 ‘공짜 주식’ 사건도 결국 문제가 됐던 120억여원은 무죄로 됐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의 권성동 의원은 총장이 아예 영장도 못 치게 했다”고 꼬집었다.
박 전 특검이 윤석열 대통령과 ‘형님·아우’ 하는 특수관계라는 점도 거론된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ㄴ씨는 “윤 대통령의 재기 발판을 마련해준 게 박 전 특검이 수사팀장으로 발탁한 것 아니겠냐. 그래서 중앙지검장·총장이 된 거고. 2006년 대검 중앙수사부 연구관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대통령 입장에선 안타깝지 않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태도가 수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상도 전 의원의 1심 무죄로 국민적 공분이 일자 등 떠밀리듯 뒤늦게 수사가 시작됐고, 국회가 ‘50억클럽 특검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2023년 4월27일)하자 수사가 본격화했다. 적용된 혐의도 그간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을 정리한 수준에 그쳤다. 검찰이 증거인멸 시간을 벌어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수사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3년 2월 박 전 특검이 휴대전화를 망치로 부수고 각종 전자·종이 자료를 폐기한 단서도 포착됐다고 한다.
현직 검사 ㄷ씨는 “검사들은 특검에서 자기 수사 기록을 본다는 걸 무척 신경 쓴다. 일단 관련자 다 조사하고 진술 마사지(적절하게 조정)해놓는 건 기본이다. 증거인멸로 구속하고 `무죄 나와라'라는 식으로 기소할 수 있다. 통신내역은 1년 지나면 없어지니까 통신내역을 확보 안 한다든지 계좌추적 조회 기간을 짧게 잡는 등 조사를 덜 하거나, 혐의가 여러 개인데 가장 경미한 것만 기소한다든지 할 수 있다. 검찰은 경찰과 달리 최소한만 기소하면서도 재판할 때 최대한 수사한 것처럼 쇼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판결문을 상세히 분석하겠다.”(2월9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입장문 중)
“제기된 의혹에 대해 순차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 대장동 사건 본류(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임 의혹)를 토대로 진행하겠다.”(8월3일 수사팀 관계자 발언)
50억클럽 수사팀 메시지가 건조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검찰 내에서 ‘조직의 배신자’로 찍힌 정진웅 검사가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2심에서 무죄로 선고됐을 때의 격앙된 분위기와 상반된다. 당시 수사팀은 입장문을 내고 “피해자(한동훈 법무부 장관)가 소파 바닥에 쓰러져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 위에서 누르는 상황이 된 후 피고인이 즉시 이와 같은 유형력 행사를 중단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지속한 행위는 폭행의 고의가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라며 판결을 상세하게 반박했다.
ㄱ씨는 “검사 배치를 보면 검찰 지휘부가 어떤 사건을 ‘반드시 유죄가 나와야 하는 사건’으로 보는지, ‘무죄가 나와도 상관없는 사건’으로 보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 수사’는 서울중앙·수원지검과 성남지청에서 5∼6개 수사부가 붙었지만, 50억클럽은 1∼2개 수사부의 일부 검사만 투입돼 있다. 검찰에선 이재명 쪽 수사는 권력형 비리고, 50억클럽은 개인 비리 정도로 구분 짓는 것 같다. 문제는 그 사건의 실제 성격과 상관없이 검찰이 권력형 비리인지를 결정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2월 강원도 춘천지검에서 혼자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안미현 검사는 검찰 지휘부의 의중이 수사팀에 어떻게 전달되는지 폭로했다. 안 검사는 당시 MBC 인터뷰에서 “200명이 넘는 채용비리 사건을 검사 한 명에 수사관 한 명이 담당합니다. 대검에선 ‘권선동 의원 소환조사도 하지 말아라’ ‘증거 목록에서 특정 기록을 삭제하라’고 합니다. 현직 검찰 간부와의 연결고리를 압수수색 하려고 했지만 대검에서 ‘본류가 아니니 하지 말라’고 지시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채용비리 청탁자인 권 의원은 무죄, 청탁을 들어준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은 유죄로, 어색하게 결론 났다.
‘법조 전관 비리’로 의심되는 50억클럽 의혹은 그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까. “(50억클럽 수사가) 김학의 (수사) 때랑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일단은 특수1부가 나서서 구속은 했는데, 수사 방식은 제한적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만, ‘이재명 수사’와 달리 박영수가 변호사 때 수임한 수년간의 기록을 일일이 살펴본다든가 하는 게 없지 않나. 이런 사건은 (지휘부-일선이) 이심전심으로 제대로 안 한다. 검사들 입장에선 선배가 ‘누구 검사 이렇다 저렇다’ 욕하고 다닐 수도 있고 부담스럽다. 꼭 짚어야 할 건 문재인 정부 때 서울중앙지검에서 여건상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다는 점이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검사장 출신 변호사 ㄴ씨)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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