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법원은 2022년 9월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행사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업무방해로 보고 사건 당사자 8명에게 벌금 1700만원을 부과했다. 법원의 약식명령서에 적힌 범죄 사실은 이러하다.
“14시31분부터 14시42분까지 피고인 ○○○은 K808 장갑차 위로 올라가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피고인 □□□은 위 장갑차 옆에 전시된 K2전차 위로 올라가 ‘방위산업체의 이윤=누군가의 죽음, STOP THE ARMS FAIR, 전쟁 장사를 멈춰라'라는 문구가 기재된 현수막을 펼쳐 든 채 큰 목소리로 ‘전쟁 장사 중단하라’라고 외치자 (중략)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위력으로써 피해자 ‘대한민국 방위산업전 2022 조직위원회'의 전시 업무를 방해하였다.”
피고인인 오리(최정민), 뭉치(김한민영), 쭈야(김은미)에게 그날 일에 대해 들었다.
“저는 펭귄이라는 기타 연주자와 올라가기로 했는데 긴장되더라고요. 올라가다가 넘어지거나 헤매면 안 되잖아요. 저희는 악기도 있었기 때문에. 저길 밟고 올라가야겠다. 진짜 공연할 때보다 심장이 더 뛴 거 같아요. 그때 잠깐 눈을 감고 ‘내가 왜 저기 올라가야 하지?’ 이 생각을 했어요. 나는 지금 혼자 올라가는 게 아니다. 전쟁으로 삶이 파괴된 많은 사람의 공분을 가지고 올라가는 거다. 그 마음을 가지고 성큼 올라가자 했거든요.”
쭈야. K808 장갑차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업무방해 및 건조물침입 명목으로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반응은, 쟤네 또 왔다 하는 사람도 있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희가 공연 마치고 내려오는데, 진짜 몇몇이 호응해줬어요. 반가웠죠. 사실 우리 메시지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검정 정장에 바이올린까지 등장하자 박람회 관계자들도 ‘이거 우리가 준비한 공연 아니냐’며 혼란스러워했다. 쭈야가 떨리는 손으로 바이올린을 켤 때 뭉치가 느낀 것은 해방감이었다.
“해방감 같은 게 있었죠. 무기가 주는 위압감이 있거든요. 굉장히 커다랗고. 판매하려고 전시하는 거니까 위용을 뽐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무기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신념으로 유지되는 자리인데, 그곳에 올라가 이거 팔지 말라고 소리쳤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 있었어요.”
뭉치, 평화운동단체 피스모모 활동가.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그날 일을 촬영 기록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이도 있었다. 오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배후세력이라 해서 300만원이 선고됐다.
“저희가 무기박람회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무기 거래 반대 액션을 했어요. 그날의 일로 벌금을 받긴 했지만, 저희에게는 수많은 별과 같은 액션 중 하나인 액션이어서.”
세계 각국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무기를 전시하는 곳에 가서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한다. 세계 곳곳에서 무기박람회가 열린다는 이야기.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2023년 초, 아랍에미리트가 개최한 방위산업박람회 IDEX는 전쟁 발발국인 러시아도 참석한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한국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박람회가 실제 무기를 사고파는 공간이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 티셔츠에다 ‘이 무기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나요?’라는 문장을 영어로 써서 입고 전차를 둘러싸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 자리에 무기 거래상들이 있잖아요. 그중 한 사람이 우리 옷을 보더니 막 웃으며 ‘So many people’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왜 올라갔나?
“퍼블릭 데이라고 해서 일반인에게 무기박람회를 오픈해서 홍보하고 무기를 만져보게 하는 데가 국제적으로 별로 없거든요. 한국만 그래요.”
가족 단위로 사람들이 와서 미사일 인형과 사진을 찍고 사격 조준 체험을 한다. 오리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여기 있는 건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 가서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 그리고 국제무기상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오지 말라. 아무도 너희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는 세상에선 살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전쟁하는 나라들에는 전쟁할 무기가 없어요. 외부에서 구매하고 조력받아 전쟁을 유지하거든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기를 팔아 이윤을 얻는 무기상이 있고, 신무기가 개발되면 실험해볼 새로운 전쟁터가 필요한 거고. 그렇게 봤을 때 전쟁이 시작되는 곳은 무기박람회인 거예요.”
방위산업박람회가 열리면 주요 고객으로 내전과 분쟁 개입 국가의 국방부 관계자가 초청된다. 뭉치가 한국의 무기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된 것은 2018년.
“제주에 예멘 난민이 출도 제한이 되면서 난민 혐오가 엄청나게 일었던 적이 있잖아요. 제가 앰네스티에서 대응 캠페인을 할 때였어요. 국제인권법상 난민 수용 의무가 있다, 정부가 무얼 해야 한다, 이렇게만 접근했는데 예멘 내전에서 한국산 무기가 쓰인다는 걸 알게 됐죠. 난민의 삶이 파괴된 데 내가 연결돼 있음을 처음 알게 됐어요. 전쟁은 계속 만들어지지만, 내가 그 가해자 자리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거 자체가 좀 힘이 되지 않을까.”
한국산 무기가 어느 분쟁지에 있건, 그곳은 군 관료와 방위산업체 관계자들이 점잖게 악수하는 최고급 연회장이 아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땅이다.
러시아 침공이 일어난 2022년, 세계 군사비 지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방산기업 매출도 사상 최대를 찍었다. K2전차 수출로 실적이 8800%에 이른다는 현대로템을 비롯해 방산기업들이 역대 최고 1분기 영업이익을 공개하던 2023년 4월, 유엔은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이라고 추정했다. 군 전사자는 10배를 넘어선다. 2022년 7월27일 한국 정부는 폴란드와 20조원 방산 수출계약을 맺으며, ‘K-방산’이라 이름 붙이길 망설이지 않았다.
누가 전쟁으로 최대 혜택을 얻는가. 답은 명확하다. 8명의 피고인은 ‘전쟁 장사를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쭈야가 반려묘를 입양한 것은 장갑차에 오르기 직전, 그때는 아기 고양이였다.
“아직 어려서 4시간마다 우유를 먹이던 때였는데, 재난이나 전쟁이 닥치면 내가 얘를 데리고 떠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에서 반려동물을 안고 피란을 떠나는 사람들의 영상을 봤다. 폐허에 남겨진 동물은 더 많았다.
“전쟁은 내 삶의 모든 가치를 다 잃어버리는 일이라 생각해요. 제가 낸 세금이 이 전쟁을 일으키는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걸 알게 된 이상, 저는 거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아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 권리니까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파괴하고 싶지 않은 권리.”
삶을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쪽은 전쟁무기 박람회라 부르고, 저쪽은 방위산업 박람회라 부른다. 적에게서 우리를 방어한다는 의미의 방위. 그래서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순진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것은 무엇인가요? 70년 동안 분단되고, 점점 더 많은 돈과 자원을 군사활동과 무기 생산에 써야 하고. 그런데 이쪽이 무장할수록 상대도 더 무장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이제 북한도 무기박람회(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를 연다. 전쟁은, 지키는 것인가 죽이는 것인가. 하지만 질문은 다른 곳에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키려는 삶은 무엇인가.
“전쟁을 겪은 어떤 분이 그랬는데 좌파니 우파니, 적이니 아군이니 이런 문제는 전쟁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고. 전쟁이 일어나면 적군과 아군은 수시로 바뀌고, 신념과 가치도 무엇도 남지 않고 다 파괴돼버린다고. 그 전쟁을 실제 겪은 세대가 지나고, 국방과 방위산업을 말하는 것은 그 자녀 세대 같아요. 우리 부모 세대이기도 하고.”
쭈야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예술로 기억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때 들은 이야기이다. 지금의 국방과 안보는 그 세대가 선택한 가치관이자 사회적 합의선일 것이다. 그로부터 얻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한시적인 안도감. 그런데 그 안에는 합의되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라는 것은 누구이며, 우리가 지키려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며,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뭉치는 무기박람회에서 양복 정장을 입은 남성들과 그들에게 무기를 소개하는 치마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을 보았다. 강인한 남성으로 상징되는 무기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있어야 돋보인다. 그 대가로 ‘보호’받는다. 뭉치에겐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것, 말할 자격을 되찾는 것, 저항의 주체가 되는 것”이 지키고 싶은 삶이다. 그런 삶은 남성의 얼굴을 한 국가 안보가 지켜줄 수 없다. 그래서 전쟁을 반대한다.
쭈야는 소수자 친구들을 지키고 싶다. 전쟁에 동원할 수 없는 존재. 장애인 질환자, 사회적 소수자, 비인간 동물. 이들을 국가가 전시 상황에서 지키리라는 믿음이 없다.
오리는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사는 터, 그 모든 것. “기후정의 행진, 방산기업인 한화 본사에 애드벌룬을 띄웠어요. 군사 부문을 빼고 기후위기를 생각할 순 없거든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추정치는 약 1억tCO₂e(우크라이나 환경부). 3만여 개의 포탄으로 오염된 대지는 독성을 하천으로 흘려보낸다. 국내 군사훈련 등으로 나오는 탄소 배출량은 집계조차 되고 있지 않다.
전쟁 안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쭈야의 말을 가져온다.
“저는 모든 사람이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예술가로서,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내 삶이 조금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적 예산과 자원이 쓰이도록 요구하는 것도 전쟁에 반대하는 일이 아닐까요?”
나는 덧붙인다. 이들이 벌금 1700만원에 굴하지 않고 평화 행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희정 기록노동자, <일할 자격> 저자*전쟁없는세상 후원 누리집 https://s.withoutwar.org/hh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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