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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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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법, 김진태 도지사의 힘이 걱정스럽다

“국토 파괴의 시작” 경고에도 통과된 강원특별법… 환경영향평가 등 도지사 권한 강화로 개발사업 날개 달아줘
등록 2023-06-24 12:45 수정 2023-06-28 00:24
2023년 6월12일 강원 춘천시 강원특별자치도청에서 김진태 지사와 간부들이 도청·도의회의 새 현판을 다는 기념식을 열었다. `강원특별자치도’로 6월11일 출범했다. 연합뉴스.

2023년 6월12일 강원 춘천시 강원특별자치도청에서 김진태 지사와 간부들이 도청·도의회의 새 현판을 다는 기념식을 열었다. `강원특별자치도’로 6월11일 출범했다. 연합뉴스.

2023년 5월25일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및 미래산업글로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강원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했다. 찬성 171명, 반대 25명, 기권 42명이었다. 5월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와 본위원회를 통과한 지 불과 하루 만이었다. 애초 이 법은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이었으나, 행안위 심의 과정에서 이름이 바뀌었다.

이틀 만에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통과

전부 개정된 강원특별법은 6월7일 공포됐고, 1년 뒤인 2024년 6월8일 시행될 예정이다. 2023년 2월6일 더불어민주당 허영 등 여야 의원 86명이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때부터는 넉 달 만이지만, 5월10일 공청회가 열린 때부터는 한 달 만이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법안이 상임위와 법사위, 본회의를 이틀 만에 통과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6월11일엔 개정 전의 특별법이 시행돼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강원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날, 47개 환경단체가 참여한 연대단체인 ‘한국환경회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국토의 허파 역할을 하는 강원도를 막개발로 몰아넣을 수 있는 법안이 단 이틀 만에 통과했다. 강원도의 장점을 살린 지속가능한 공생을 위한 공론화를 국회에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법안의 가결은 새로운 국토 파괴의 시작으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환경단체들이 지적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제64~68조 특례조항의 환경영향평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자연경관영향협의, 기후변화영향평가 , 건강영향평가의 주체를 환경부 장관이나 지방환경관서의 장에서 강원특별자치도 지사로 바꾼 것이다 . 앞으로 강원도에서 개발사업을 할 때 환경 , 경관 , 기후변화 , 건강 등의 영향평가를 사실상 도지사가 주도한다 . 선거 등의 목적으로 더 많은 개발사업을 추진하려는 지방정부의 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

임명희 정의당 강원도당 위원장은 “전국의 환경과 산림을 보존해야 하는 권한을 환경부 장관과 산림청장에서 강원도지사에게 넘겼다. 민간에서 개발사업을 하는 경우 도지사가 영향평가 없이도 인허가를 내줄 수 있게 만들었다. 강원도의 생태환경이 큰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도 이런 우려를 의식했는지 이런 특례의 존속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붙여놓았다. 환경부 장관이 3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 특례의 연장이나 폐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최승희 생명의숲 사무처장은 “영향평가의 존속 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지만, 과연 환경부 장관이 어떻게 평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당장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것으로 얼마든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특별법은 제35~44조에서 기존에 산림청장의 권한이던 산림의 경제적 이용에 관한 권한도 강원도지사에게 줬다. 도지사가 산림이용 개발계획을 세우고 진흥지구를 지정해 민간사업자의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 사업에는 도시개발, 택지개발, 산업단지 지정, 관광단지 지정, 공유수면 매립 등 대부분의 개발이 포함된다. 전체 78개 조항 가운데 30개 조항이 개발 내용이고, 30개 조항이 특례 조항이다. 개발과 특례가 특별법의 핵심이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산림보호구역의 행위 허가나 지정 해제까지 가능해졌고, 거의 모든 종류의 개발사업을 허용하고 있다. 강원도 산림이 이렇게 개발된다면 생태축이 연결된 다른 지역의 산지에도 악영향을 준다. 또 산림 환경이 좋은 강원도에서 이런 난개발이 허용된다면 다른 지역의 산지에서도 개발 요구를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경과 건강 영향평가를 도지사에게 넘겨

다른 광역시도와 달리 행정·재정상의 특별지원이나 우선지원을 할 수 있게 한 제8조나 균형발전 특별회계에 별도 계정을 설치해 지원할 수 있게 한 제19조도 논란거리다. 재정상 특혜는 제로섬인 예산 배정에서 다른 광역시도에 불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특별시도인 제주와 세종, 통합시인 창원과 청주에서 보통교부세나 균형발전 특별회계상의 특혜를 받고 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원래 분권에선 재정 분권이 핵심인데, 현재 중앙정부가 예산 여력이 없다보니 환경권을 풀어서 개발을 쉽게 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방분권을 하더라도 환경과 안전에 대한 규제는 중앙정부가 권한을 갖고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원특별법은 전체 면적의 79%가 산림인 강원도의 건강한 자연을 훼손할 것으로 우려된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의 모습. 김명진 기자.

강원특별법은 전체 면적의 79%가 산림인 강원도의 건강한 자연을 훼손할 것으로 우려된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의 모습. 김명진 기자.

이런 개발 특례 위주의 특별법은 천혜의 환경 자원을 가진 강원도의 특성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도는 산림이 79%, 생태자연도 1등급지가 31.5%, 별도 관리지역이 18.5%일 정도로 자연이 풍부하고 건강한 곳이다.

이상철 민주노총 강원본부 정책부장은 “강원도는 오랫동안 녹색과 평화가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특별법 내용은 개발 위주이고 도지사의 권한이 너무 강해져 위험성이 크다. 앞으로 도민들의 공감대를 만들어나가는 토론 자리를 많이 열려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가 전국의 다른 지역보다 낙후했다는 선입견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2021년 강원도의 1인당 개인소득은 2104만원으로 9개 광역도 가운데 4위였다. 1인당 개인소득 2526만원인 서울과 약 400만원 차이 나는 정도였다. 박항주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대응센터장은 “강원도의 소득은 낮은 편이 아니다. 문제는 교육, 의료, 문화 등 기반시설이나 다양한 사회적 관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강원도에선 적절한 인구밀도를 가진 도시와 기반시설을 만들어나가는 데 투자해야 한다. 한편으로 대도시와 중소도시, 시골 등 다양한 삶의 공간에 자신감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원 이어 전북, 충북, 부울경, 경기북부 줄줄이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문재인 정부 때의 메가시티처럼 특별자치시도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24년 1월엔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하고, 충북은 ‘중부내륙 지원 특별법’을, 부산·울산·경남은 메가시티에 이어 ‘초광역특별지방자치단체’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 분리되지 않은 경기 북부에서도 2026년 7월을 목표로 특별자치도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김창민 희망제작소 지역혁신센터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메가시티에서도 새로운 중심이 생기고 주변 지역이 쇠퇴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세종시는 주변 지역의 인구와 기능을 매우 빠르게 흡수했다. 특별자치시도를 어느 지역으로 확대할지, 대부분 지역을 특별자치시도로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특별자치시도 정책이 지역 간 균형발전이나 분권 정책의 실패에서 나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뒤 다음 정부인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는 이렇다 할 후속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따라서 불균형 발전은 더 심각해졌고, 중앙집권 체제도 큰 변화가 없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수도권 인구와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은 전국의 50%를 돌파했다. ‘연방제 수준’으로 하겠다던 분권도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별자치시도 정책이 균형발전과 분권의 대안이 될지에는 의견이 갈린다. 먼저 특별자치시도 정책을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성과가 나타나면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자치분권위원장을 지낸 김순은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7개 시도에서 함께 시행하는 대등분권 정책과 함께 특별자치시도와 같은 차등분권 정책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성공하면 다른 시도에 모델이 될 수 있다. 2006년부터 특별자치도를 운영해온 제주의 경험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광역시도에 행정·재정상 특혜를 주는 특별자치시도 정책은 더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연구원장을 지낸 안성호 대전대 명예교수는 “특별자치시도 가운데 세종은 행정, 제주는 시범사업이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도시에도 제대로 자치권을 주지 않았다. 이제 강원으로 확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특별자치시도는 한시적으로 시범 운영해보고 평가해서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정상이다. 더 이상 이런 특혜를 확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개헌 통해 보편적 분권 정책 시행이 바람직

문제는 현행 헌법 체제로는 획기적인 분권 정책을 시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헌법은 국회입법주의, 조세법률주의, 죄형법정주의 등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정부들은 스스로 법을 만들거나 세금정책을 결정하거나 형벌을 결정하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이민원 광주대 교수는 “우리 헌법은 법률과 조세와 형벌을 모두 중앙의 국회에서 정하도록 하고, 지방정부들은 서울의 국회와 행정부가 정해주는 대로 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선 지방분권도 연방제도 불가능하다. 지방분권을 위해선 개헌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2017년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에서 제안한 헌법 개정안이나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은 제1조에 대한민국을 ‘지방분권국가’로 명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지방분권 헌법 개정 운동은 국민의힘 쪽의 반대와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실제 개헌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두영 균형발전국민포럼 공동대표는 “중앙정부나 국회가 지방정부들에 온전한 자치권을 주지 않으려다보니 개헌을 하지 않고 특별자치시도와 같은 편법을 쓰는 것이다. 개헌을 통해 전국 지방정부에 과감하게 보편적 자치권을 주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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