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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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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반환채권 매입, 피해자 먼저 고통에서 꺼내는 대책”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이강훈 센터장 인터뷰
“채권 매입해도 투자 회수 가능해 세금 낭비 아냐… 정부가 잘못 짠 정책 탓에 피해자 생겨”
등록 2023-04-28 21:19 수정 2023-05-02 16:59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을 하는 단체 ‘세입자114’의 센터장 이강훈 변호사가 2023년 4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겨레21>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을 하는 단체 ‘세입자114’의 센터장 이강훈 변호사가 2023년 4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겨레21>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집값 하락으로 깡통전세·전세사기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전세보증금을 잃은 세입자들이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이어지자 정부·여당이 뒤늦게 피해 지원 대책을 내놨다. 2023년 4월27일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에게 해당 주택을 우선 매수할 권리를 주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가 해당 주택을 사들여 피해자에게 싼값에 임대해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전세사기 특별법’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단체와 야당이 요구하는 ‘보증금반환채권 매입’ 방안은 받아들이지 않아 반발을 사고 있다. 지원 대상을 누구까지 할지도 추후 법안 심사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을 하는 단체인 ‘세입자114’의 센터장이자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이강훈 변호사를 4월26일 국회에서 만나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책의 주요 쟁점에 관해 자세히 들어봤다.

우선매수권으론 보증금 손해 보전 못해

―특별법에 포함되는 세입자 우선매수권과 엘에이치의 공공임대주택 제공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세입자 우선매수권은 해당 주택이 경매에서 제3자에게 낙찰되면, 세입자가 그 낙찰가로 낙찰자보다 우선해 집을 살 수 있는 권리다.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고 엘에이치 같은 공공기관에 해당 주택을 매입해달라 요청할 수도 있는데, 이때 세입자가 가진 우선매수권이 엘에이치에 양도된다. 엘에이치는 주택을 매수해 피해자에게 우선 입주할 권리를 준다. 우선매수권이나 우선매수권 양도 관련 법리는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서 사용된 전례가 있어 실행에 문제없는 사안이다.”

―인천 미추홀구의 피해주택 대부분은 임대인 남아무개씨(이른바 ‘건축왕’) 일당의 금융기관 대출담보로 잡혀 있다. 예를 들어 집값 2억원에 금융기관 근저당(1순위)이 1억2천만원이고 세입자의 전세보증금(2순위)이 8천만원이라면, 현재 인천 지역 매각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60% 수준임을 고려할 때 낙찰가는 1억2천만원이 되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한 푼도 못 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려면 추가로 빚내어 1억2천만원을 조달해야 하고, 엘에이치가 우선매수할 경우 세입자는 시세보다는 낮지만 추가로 월세를 내며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매수권이 임차인의 보증금 손해를 보전하는 방안은 아니다. 단지 주택에서 계속 거주할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이익을 준다. 주거 불안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훨씬 개선된 방안이다. 다만 우선매수권이 피해자들한테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보증금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대출받아 파산까지 몰린 분들이다. 결국 그들을 위한 대책이 안 된다.”

―피해자단체와 야당은 세입자가 가진 전세보증금반환채권을 정부가 매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조치가 필요한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전세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이 경매나 공매를 거쳐도 보증금을 아예 못 받아가는 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분들한테 효용이 있냐면, 임차인이 1·2순위 정도 되면서 권리관계가 복잡하게 물려 배당받을 금액은 있지만 경매가 굉장히 오래 걸릴 사안이나, 이른바 ‘빌라왕’ 김아무개씨 사기 피해자들처럼 임대인이 거액의 선순위 국세체납액이 있어 경매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다.”

(숨진 ‘빌라왕’ 김씨는 집 1139채를 소유하며 종합부동산세 62억5천만원을 체납한 상태다. 현재 제도로는 김씨 집이 경매에서 순서대로 낙찰될 때마다 국세청이 해당 집에서 체납액 전체를 징수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집이 2억원에 낙찰되면 국세청이 2억원을 징수하고, 두 번째 집이 2억원에 낙찰되면 또 국세청이 2억원을 가져간다. 이렇게 국세청이 62억5천만원을 다 징수한 뒤 진행되는 경매부터 채권자들이 배당받을 수 있다. 국세를 다 회수할 때까지 채권자에게 돌아갈 배당금이 없으므로, 이 경우 법원이 경매를 취소한다. 피해주택을 경매로 넘겨 전세보증금을 배당받으려는 1순위 세입자는 경매 신청도 못하는 상황이다.)

경매로 해결하려다 몇 년씩 걸린다

―정부·여당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사기 임대인의 체납 세금을 보유주택들에 나눠 징수해(조세채권 안분) 경매를 신청한 세입자가 낙찰금을 가져갈 수 있도록 특별법에 넣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정부가 세입자의 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할 필요가 없지 않나.

“꼭 그렇지는 않다. 한 주택에 여러 채권이 걸리고 서로 가압류가 되고 얽혀 있는데 그걸 풀려면 몇 년 걸린다. 그래서 먼저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게끔 해주는 게 피해자에게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에 정부가 세입자의 보증금반환채권을 전세보증금의 최소 50% 이상 가격에서 매입하도록 했는데, 매입가는 어느 수준이 적절한가.

“매입가는 사례에 따라 다르다. 0%부터 100%까지 가능하다. 엄밀히 말하면 채권 평가액이 0원일 수도 있다. 그러면 정부도 못 사준다. 세입자가 보증금반환채권 매입 방안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기대 섞인 부분이 조금 있을 것이다. 지금은 보증금을 아예 못 건질 상황이니까, 정부가 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하면 (채권 평가 과정에서) 얼마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다. 피해자도 보증금 전액을 보전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고 개개인이 대응하기에 오래 걸리고 힘들어서 집단으로 권리구제가 필요한 사안에서 정부의 보증금반환채권 일괄 매입이 효용성 있다.”

2023년 4월27일 이른바 ‘건축왕’ 남아무개씨가 지은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주상복합건물 인근 주택 담장이 ‘피해보상’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2023년 4월27일 이른바 ‘건축왕’ 남아무개씨가 지은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주상복합건물 인근 주택 담장이 ‘피해보상’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을 반대하면서 “사기당한 피해액을 국가가 먼저 대납해 돌려주고, 그게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으라고 하면 결국 사기 피해를 국가가 메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장관은 보증금을 한 푼도 못 받는 사례를 자꾸 얘기하는데, 그것과는 다르다.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은 세금을 쓰는 게 아니다. 어차피 회수를 못하는 채권은 정부가 못 산다. 지금은 주택 가격이 떨어져 있다. 만약 집 매각 대금이 1억2천만원인데 실제 보증금반환채권 평가액이 5천만원이면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보증금반환채권을 사고 추가로 7천만원을 투입해 집을 매입한다. 캠코가 집을 보유하다가 가격이 오를 때 다시 팔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그래서 손실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시간이 걸린다는 거지 세금이 왜 들어가나. 그렇지만 오래 버텨야 하는 세입자에게는 이 방법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

보증금반환채권 공정 평가하고 사각지대도 지원해야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은 기존 캠코의 기능과 다르나.

“아니다. 지금 캠코가 부실채권 매입할 때 해오는 방식을 여기다 적용하는 것이다. 이에 과도한 오해가 있으면 안 된다. 결국 보증금반환채권을 공정하게 평가하면 된다. 그래서 채권 매입 방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 보증금을 거의 회수 못하는 분들에게 정부가 어떻게 할지 그 부분은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국가 세금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보증금을 하나도 못 받는 분들에게 지원금을 줄 때의 얘기다.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복지 차원에서 지원금을 줄 수 있고 그때는 정말 예산이 들어간다. 이것과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별법 적용 대상은 어디로 하는 게 바람직한가.

“원래 일반적인 입법으로 하는 게 바람직한데 이번에 특별법으로 도입하면 적용 범위가 상당히 좁아질 것이다. 그런데 우선매수권은 범위를 좁힐 필요가 전혀 없다. 임차인은 분양받는 등 훨씬 유리한 경우가 많은데 그걸 포기하고 기존 전세로 살던 집을 사야 한다면 처지가 안 좋은 상황이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집을 매입하는 경우이기에 민사집행법에 포함해 일반화해도 좋을 내용이라고 본다. 꼭 이런 전세사기 사안에 국한할 이유가 없다.”

―‘사기’ 범죄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가격 하락으로 나타나는 깡통전세에도 우선매수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전세사기를 실제 법에 규정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그러면 범위가 엄청 좁아진다. 전세사기로 인정받느냐 못 받느냐로 법 적용이 달라져 피해자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인천 미추홀구 사태도 피해자가 수천 명인데 실제 남아무개씨 일당이 기소된 전세사기 건은 160여 채밖에 안 됐다. 수사 과정에서 얼마큼 입증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고, 또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어떻게 전세사기임이 확정되겠나. 그런 측면에서 ‘사기’라는 용어를 써서 그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갭투기로 수백 채 사도 제재 없어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택 가격 하락으로 깡통전세 문제가 생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피해자가 대규모로 생겼다.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보면 일단 임대인 한 사람이 주택 수십~수백 채를 매입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지원이 전세대출이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세대출을 이용해 갭투기를 할 수 있었다. 인천 미추홀구 피해처럼 선순위 근저당도 있고 집 평가액을 조작하고 공인중개사까지 달라붙은 악질적인 사례도 있는데 기존 시스템으로 이걸 못 막아냈다.”

―전세대출뿐만 아니라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도 사기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전세대출을 더 키운 것이 보증보험이다. 집값의 100%까지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해주니 완전히 무위험 대출이 됐다. 은행은 정부가 보증해주니 대출금을 떼일 위험이 없고 그러다보니 대출심사를 제대로 안 한다. 이런 방식으로 대출이 뻥튀기되고 전세금이 치솟는다. (정부는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2023년 5월1일부터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90% 이하인 주택만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2013년 전세대출이 생겨났지만 그때도 위험해서 대출을 잘 안 했다. 그런데 정부가 여러 제도를 정비해주고 보증을 세게 해주면서 전세대출 선호도가 높아지고 전셋값이 부풀어 오르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정부가 만들어놓은 주요 제도, 전세대출과 보증보험, 임대사업자 관리 부실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전세대출과 보증보험, 임대사업자 관리 부실의 삼박자

―세입자 사정은 딱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계약한 책임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 사태에서 임차인의 과실은 비교적 경미하다. 바지 임대인을 내세우거나 감정평가사가 주택 평가액을 띄우는 등 임차인의 과실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안 된다. 이 사기 수법은 전국에 퍼져 있고 오래됐는데, 주택 가격이 오를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다가 가격이 떨어지면 그제야 사기라는 게 드러난다.”

―전세사기가 일반 사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단 정부가 피해를 키운 정책적 과오가 있고, 정부의 과실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게 했다. 그래서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정책을 잘못 만들어서 생긴 피해를 나 몰라라 하는 건 상당히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는 거다. 지금 사회가 20·30대 젊은이에게 뭘 가르치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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