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양산업”이라며 청소년 공간 뺏는 동대문구

청소년독서실 5곳 잇따라 폐관 “늘어난 스터디카페가 대체시설”
“표 안 되는 시민 배제, 공적 공간 역할 이해 못한 처사” 비판
등록 2023-03-17 13:37 수정 2023-03-21 05:30
2023년 3월8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용두 청소년독서실 6층 남자열람실. 용두 청소년독서실은 2023년 6월 문을 닫는다.

2023년 3월8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용두 청소년독서실 6층 남자열람실. 용두 청소년독서실은 2023년 6월 문을 닫는다.

“청독(청소년독서실)이 7월에 문을 닫는다고요? 스카(스터디카페)는 비싸서 잘 못 갔는데 걱정이네요.”(고등학교 2학년 박효준 학생)

“스카는 하루 8천원이고, 아파트 독서실이 있긴 한데 거기도 한 달에 5만원이 넘어요. (청소년독서실은) 저렴하고 시설도 좋은데 왜 문을 닫죠?”(중학교 3학년 신혜인 학생)

2023년 3월8일 오후 5시30분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 청소년독서실. 독서실엔 문제집을 푸는 중고등학생부터 토플책을 편 대학생, 자격증시험 강의 동영상을 시청하는 구직자까지 주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은 4층 북카페, 5~6층 열람실 등 총 157석 규모다. 동대문구는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이곳을 6월30일까지만 운영하고 폐관할 예정이다. 하지만 건물 안 어디에도 공지문은 붙어 있지 않았다. 이용료 하루 500원, 한 달 1만원(성인 1만5천원)인 청소년독서실 폐관 소식은 동대문구 주민들에겐 날벼락 같은 일이다.

하루 500원 vs 한 시간 2500원

“스터디카페에 안 가본 게 아니죠. 거긴 한 시간에 못해도 2500원. 시설은 여기가 더 좋아요. 그런데 왜 없앤다는 건가요? 수지가 안 맞아서? 그럼 대체할 만한 곳이라도 있나요? 앞으로 저는 진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용두 청소년독서실에서 자격증시험을 준비하는 대학교 4학년 박미리내 학생의 말이다.

1984년 저소득층 청소년의 학습·문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청소년 공부방’은 1989년 정부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청소년독서실’로 진화했다. 청소년독서실은 크게 △빈민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한 민간 운영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민간 위탁 △정부 지원, 세 가지 형태로 운영됐다. 2011년부터 정부 지원이 끊겼고, 서울시 청소년독서실은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된다.

서울시 청소년독서실은 2010년 87곳에서 2023년 현재 56곳으로 크게 줄었다. 동대문구는 사회복지법인·종교단체·시민단체 등 민간에 위탁하는 형식으로 청소년독서실 10곳을 운영했는데, 2022년에만 청량리·휘경·전농·배봉 청소년독서실 4곳이 폐관됐고 2023년에는 용두 청소년독서실이 문 닫을 예정이다.

익명을 요청한 동대문구 아동청소년과 관계자는 <한겨레21>과 만나 “청소년독서실은 사양산업”이라며 “청소년독서실은 법정 의무 시설이 아니다. 없는 자치구도 많다.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시설이라면 다른 용도로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22년 8∼12월 동대문구 온라인 민원통합상담창구에 올라온 청소년독서실 폐관 반대 민원 글 22건에 대해 동대문구가 한 공식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용률이 감소하고 작은도서관 등 공립도서관 및 민간 스터디카페 등 대체시설이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해 청소년독서실 건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함.”

정말로 작아서 문제, 작은도서관

동대문구가 작성한 ‘청소년독서실 폐관 및 활용계획’을 보면, 청소년독서실 5곳을 폐관하면 인건비·운영비 등 7억3천만원가량을 절감할 수 있다고 나온다. 해당 계획에서 구는 “공공도서관·작은도서관 등 여타 도서관은 청소년독서실에 비해 집중 열람이 어렵고, 스터디카페는 이용요금이 높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러한 단점을 제외하면 청소년독서실을 대체할 수 있는 시설은 276개(도서관 56개, 스터디카페 220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동대문구 청소년독서실 폐관 문제에 항의하는 활동을 해온 최재식 정의당 동대문구 지역위원장은 “청소년독서실을 찾는 사람들은 싸고 안전하고 가까이 있어서 가는 건데, 그 공간을 없애고 비싼 데를 가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이미 스터디카페를 가고 있다. 스터디카페는 대체시설로 고려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이 동대문구에 있는 스터디카페 프랜차이즈 39곳의 평균 이용료를 계산해봤더니, 두 시간에 약 3천원, 종일권은 1만1천원이었다. 용두 청소년독서실 이용자인 대학생 이원규씨는 “잠깐은 스터디카페에 가기도 하지만 이용료 때문에 오래 공부할 땐 청소년독서실에 온다”고 말했다.

구에서 청소년독서실의 대체시설로 언급한 ‘작은도서관’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월11일 오후 용두 청소년독서실 근처 작은도서관 3곳을 직접 찾았다. 문자 그대로 ‘작은’ 도서관이었다. 책장에 동화책이 빽빽이 꽂혔고,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 앉는 크기의 등받이 없는 의자 그리고 색색의 작은 책상이 보였다. 중·고교생이 앉기 어려운 키 작은 의자와 책상이 대부분이었다. 성인용 책걸상은 10석 남짓에 불과했다. 운영시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밤 11시까지 운영되는 청소년독서실과 달리 저녁에는 문을 닫는다.

용두 청소년독서실을 8년간 이용하고 있는 대학생 박영인씨는 “용독(용두 청소년독서실)을 건드릴 줄은 몰랐다. 여기는 학생 때 머물 곳 없는 나나 내 친구들이 시간을 보내던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며 “나는 7월에 자격증시험 끝나면 그만이지만 동네 학생들이 걱정된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밥 먹고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폐관 재고해달라’ 요청해도

청소년독서실을 폐관하기로 결정하면서, 동대문구는 이용자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2022~2023년 폐관 통보를 받은 청소년독서실 5곳은 모두 민간 위탁으로 운영됐다. 구청이 폐관을 통보하자, 청소년독서실 운영기관들은 이용자의 서명을 받아 ‘폐관을 재고해달라’는 의견서를 구청장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동대문구의회 의원들도 주민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점을 계속 지적했지만, 구청의 뜻은 꺾지 못했다. 박남규 동대문구의원은 <한겨레21>을 만나 “청소년독서실 얘기가 오가던 2022년, 5개 독서실을 관리하는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독서실 폐관은 결정된 게 없다는 업무보고를 오후에 받았다. 그런데 이미 그날 오전 한 독서실이 위탁기간이 끝나면 폐관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동대문구는 나머지 청소년독서실 5곳까지 없애는 계획도 밝혔다. 2022년 10월13일 열린 동대문구의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3차 회의록’을 보면 당시 나현옥 동대문구청 아동청소년과장은 “지금 5개 청소년독서실도 2023년, 2024년까지 위탁이 끝난다. 그 부분도 우리가 순차적으로 폐관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동대문구 관계자는 <한겨레21>에 “남은 5곳에 대해선 결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독서실이 사라진 뒤 (이곳을 이용하던 청소년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 지역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갈 곳 없는 청소년, 비행 청소년을 말하면서 그들의 공간을 뺏고 있다. 결국 청소년이 만만하니 없애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표 안 되는 시민을 배제하는 거다.”(최재식 정의당 동대문구 지역위원장)

동대문구뿐만 아니라 ‘표가 되지 않는’ 청소년을 위한 시설에 대한 예산은 이런저런 핑계로 깎이기 일쑤였다. 2021년 강서구는 청소년 공부방 4곳(내발산·공항·발산·방화)의 폐관 결정을 내렸다. 역시 소통은 없었다. 언론 보도를 본 지역주민들이 ‘강서구 청소년 공부방 지키기 주민모임’을 결성해 대응했고 주민 480명의 서명으로 이어졌다. 주민모임에 참여했던 윤성미 활동가는 “주민 의견은 묻지도 않고 사무감사에 자료에 나온 적자만 보고 공부방을 없앴다. 직접 확인해보니 ‘동 행정’(동주민센터) 관계자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23년 3월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장안2동 동대문 청소년독서실 2층 열람실. 주민들이 좌석이 구분된 개인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2023년 3월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장안2동 동대문 청소년독서실 2층 열람실. 주민들이 좌석이 구분된 개인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동대문만 아냐…잇단 예산 삭감

강서구와 동대문구뿐만이 아니다. 2021년 서울시 마을배움터 예산 삭감, 2022년 11월 서울시의회 청소년 예산 삭감, 저소득층 청소년 교육방송 데이터 요금 지원 예산 삭감, 12월 금천구 주민자치 및 미래세대 예산 삭감, 2023년 은평구 대안교육공간 ‘작공’ 지원 중단 등 청소년 관련 예산 삭감 사례가 잇따랐다.

‘서울특별시 청소년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보면 청소년시설의 설치 목적을 “청소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정당하게 대우받고 권익을 보장받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활동하여 미래사회의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한다. 김아래미 서울여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는 문제는 실태조사를 통해 10년 넘게 지적됐지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청소년시설에 문제가 있다면 그 시설을 이용하는 청소년 당사자 입장에서 바라봐야 했다”며 “안 그래도 부족한 청소년 공간을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없앤다는 건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시민에게 교육, 문화체험, 사회적 교류를 위한 공간은 다양한 공적 효과를 갖는다. 그런 공간을 제공할 역할을 맡은 국가나 지자체가 적자를 이유로 공간을 없애는 건 공적 공간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든 사회적 결핍을 가진다. 개인과 가족만으로는 온전히 채울 수 없기에 사회서비스가 있다. 국가가 이걸 책임지지 못한다면 약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자기계발을 비롯한 삶의 전반에서 단절될 수밖에 없다.”

글·사진 홍지희 교육연수생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