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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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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수준 성교육’, 왜 없애죠?

전국 최초 ‘포괄적 성교육’ 도입한 울산, 만족도 96점인데 2022년 말 예산 삭감
등록 2023-03-17 11:47 수정 2023-03-23 00:59
2023년 2월11일 오전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초등 예비 4·5학년을 위한 겨울방학 성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이 강사 유미정(51)씨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손을 들고 있다.

2023년 2월11일 오전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초등 예비 4·5학년을 위한 겨울방학 성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이 강사 유미정(51)씨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손을 들고 있다.

“선생님, 생리통이 뭐예요?”

2023년 2월11일 토요일 오전 11시, 강의실에 모인 초등학생 7명 중 한 명이 말했다. 강사 유미정(51)씨는 “생리가 뭔가요?”라고 되물었다. 맨 앞줄에 앉은 여자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여자의 생식기에서 피가 나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울산시 남구 옥동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열린 ‘초등 예비 4·5학년을 위한 겨울방학 성교육’ 2회차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쭈뼛거리면서도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한 아이는 “생리통이 있을 때 어떻게 하냐”는 강사의 질문에 “뱃살을 눌러줘요”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포경수술 해야 할까”… 아이들끼리 ‘썰전’

센터 강의실 벽에는 ‘사춘기는 꼭 오나요?’ ‘트랜스젠더가 뭔가요?’ 등 아이들이 직접 적은 질문지가 붙어 있다. 15년째 센터에서 일하는 유씨는 “수업하다보면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포경수술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는 것으로 ‘썰전’이 열린다. 그러면 청결하게 씻는 방법도 알려주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준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성교육 강의를 들으려면,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교육비(강의 4회에 5만원)를 내고 수업을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2022년까지만 해도 울산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이라면 모두 울산청소년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고 노옥희 교육감의 ‘성교육 집중학년제’ 정책 덕분이었다. 그런데 2022년 12월 관련 예산이 전부 삭감돼 2023년에는 사업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더구나 노 교육감이 타계한 뒤, 2023년 4월5일로 예정된 울산시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 4명 가운데 2명이 ‘포괄적 성교육 폐지’ 공약을 발표하는 등 성교육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네 명의 후보 가운데 2명이 사퇴한 뒤, 입장은 둘로 나뉘었다. 김주홍 후보가 “포괄적 성교육, 학생노동인권 집중이수제 등 이념적 편향성이 높은 교육 내용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반면, 노 교육감의 남편인 천창수 후보는 “포괄적 성교육은 유엔기구인 유네스코가 발표한 국제적 성교육 지침으로 관계 중심의 성교육”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울산시교육청이 2021년부터 운영한 ‘성교육 집중학년제’는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운영한 사업이다. 초등학교 5학년은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와 연계해 체험형 성교육을, 중학교 1학년은 학교로 찾아가는 성인지교육을 실시했다. 2020년 4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알려진,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속옷 빨래를 시켰다는 사건이 계기였다. 그해 8월 노옥희 교육감은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종합대책에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을 언급하면서 울산시는 전국 최초로 ‘포괄적 성교육’에 기반한 교육을 시행하는 지역이 됐다. ‘포괄적 성교육’은 유네스코(UNESCO)가 2018년 개정 발표한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서 권고한 교육과정이다. 생물학적 성뿐만 아니라 젠더 정체성, 성소수자 존중, 구체적인 피임법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 이선영(43) 센터장이 2023년 2월11일 센터에서 교구를 소개하고 있다. 성기 등 신체 모형을 뜨개로 만든 이 교구는 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사용된다. 이선영 센터장은 2008년부터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학년 전체에게 대대적으로 성교육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 이선영(43) 센터장이 2023년 2월11일 센터에서 교구를 소개하고 있다. 성기 등 신체 모형을 뜨개로 만든 이 교구는 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사용된다. 이선영 센터장은 2008년부터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학년 전체에게 대대적으로 성교육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엄마가 해주는 ‘설명식’보다 또래와 공유하는 즐거움

울산청소년문화센터에서는 가정에서 하기 힘든 전문적인 성교육을 한다. 이곳은 2008년부터 사단법인 마이코즈가 여성가족부와 울산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청소년 성교육 전문기관이다. 센터 종사자는 아동학·여성학 등을 전공하고 성교육 실무 경험이 있어야 한다. 전국에는 이런 청소년성문화센터 57곳(2022년 12월 기준)이 운영 중이다.

2023년 2월11일 아이와 함께 센터를 방문한 최수현(가명·40)씨는 11살 아이가 “엄마가 해주는 성교육은 설명식인데, 여기서는 또래와 같이 (생각을) 공유하니까 재미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선영(43) 센터장은 “아이들이 몸을 쓰면서 교구나 공간을 100% 활용하니 굉장히 흥미로워한다. 명상하면서 ‘우리는 다 다르고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듣다가 우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집중학년제 사업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교육청이 실시한 2021년 울산 교육정책 여론조사(1004명 응답) 결과, 시민 82.3%가 성교육 강화를 ‘잘하는 정책’으로 평가했다. 2022년 체험장 성교육에 참여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 9463명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집중학년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만족도는 90%였다. 2021년 초등학교 5학년 학부모 60명을 조사한 ‘성교육집중학년제 학부모연수 만족도’는 4.6점 만점에 4.4점으로 높았다(100점 환산 96점).

그런데 노옥희 교육감 타계 뒤 2022년 12월 울산광역시교육비특별회계 심사에서 민주시민교육과 성교육 집중학년제 예산 4억350만원 전체가 삭감되며 집중학년제 사업은 중단됐다.

천미경 위원(국민의힘 울산 비례대표): 노옥희 교육감님이 주장하는 성평등은 제3의 성을 가진 분, 성소수에 관한 내용도 있습니다. (…) 왜 이런 선동을 하시고 왜 이렇게 포괄적 성교육을 시키면서 이렇게 유도를 시키는지 정말 저는 모르겠거든요. 강대길 위원: 학생들의 성교육은 정제되고 사회 통념에 맞게 실시가 되어야 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분리해서 꼭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존중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게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목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울산광역시의회 행정사무감사 교육위원회 회의록(2022년 11월7일)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동성애를 정상 범주로 가르친다고 비판했으나 울산시교육청에서 배부한 ‘성인지교육 집중학년 공동강의안’에는 동성애나 성소수자가 언급되지 않는다. 체험장 성교육에서 사용하는 워크북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람 모두 소중하고 존중받을 존재’라는 내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수자 존중을 가르치는 정도다.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잘못된 것임’이 명시된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간접적인 표현이다.

강대길 울산시의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성에 대해서는 윤리나 책임이 강조돼야 하는데, 학생들에게 성적 자기 권리를 (가르치는) 부분은 좀 맞지 않는다. (예산 삭감은) 좀더 객관적인 성교육이 필요하지 않은지 점검하자는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성교육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포괄적 성교육은 하면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이선영 센터장은 성교육 집중학년제가 시행된 첫해에 시의원들의 의견과 비슷한 민원을 “업무가 안 될 정도로”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왜 가르치냐, 성관계를 마음대로 하라는 이야기 아니냐’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통화를 녹음한 파일이 인터넷에 돌아다녔고, 두 명의 직원이 퇴사했다.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 ‘말하자면’ 교실 벽에 아이들이 직접 적은 질문이 붙어 있다. 아이들은 ‘사춘기는 꼭 오나요?’ ‘트랜스젠더가 뭔가요?’, ‘성은 언제부터 생긴 거예요?’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2023년 2월 11일 오전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초등 예비 4,5학년을 위한 겨울방학 성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이 성에 대한 고민을 적고 있다.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 ‘말하자면’ 교실 벽에 아이들이 직접 적은 질문이 붙어 있다. 아이들은 ‘사춘기는 꼭 오나요?’ ‘트랜스젠더가 뭔가요?’, ‘성은 언제부터 생긴 거예요?’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2023년 2월 11일 오전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초등 예비 4,5학년을 위한 겨울방학 성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이 성에 대한 고민을 적고 있다.

동성애 비난 단체에서 양성한 강사들이 성교육

성교육을 둘러싼 갈등은 울산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전시에서는 3월부터 동성애를 비난해온 남승제 목사가 대표로 있는 ‘넥스트클럽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양성한 강사들이 성교육을 하게 됐다. 대전시가 이 단체를 대전광역시청소년성문화센터 수탁기관으로 선정해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성교육 전문기관 사업수행단체의 자격요건이 명시됐지만, 교육 내용에 대한 기준은 없다. 대전 지역 75개 단체로 구성된 ‘대전인권비상행동’이 수탁기관 선정 철회를 촉구했으나, 대전시는 ‘청소년성문화센터가 통합 성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일정한 수준의 전문적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철저한 지도·감독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강영미 대전참교육학부모회 대표(대전인권비상행동 공동대표)는 “당장 3월부터 성문화센터에서 양성한 강사들이 학교로 갈 텐데 걱정이다. (학생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을 할 거다. 강의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동성애 진영이 공적 기관으로 진출하며 반인권적 성교육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울산=글·사진 도혜원 교육연수생


‘거들 입어라’에서 ‘방탈출’ 게임으로

12년차 보건교사인 이유진(40·가명)씨는 중학교 1학년 때 받았던 성교육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학교가 산 위에 있어서 ‘바바리맨’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선생님이 저희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성교육 주제가 ‘거들을 입어라’였어요. 그들은 성인 남성이고 우리는 열네 살 여학생이니 힘으로 당할 수 없다, 그때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게 거들이라고 하셨어요. 지금 그렇게 성교육하면 난리가 나겠죠.”
이씨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거들을 입으라’고 가르치는 수업을 듣지 않는다. 대신 메타버스에서 ‘방탈출’ 게임을 하며 디지털성범죄의 특성을 익힌다. 이씨는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과 ‘젭’(ZEP)을 활용해 성교육을 한다. 학생들은 가상의 교실에서 미션을 수행하며 디지털 공간에서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이씨는 “1970~1980년대에 정조를 가르치던 성교육과 2000년대의 성교육은 다르고, 2023년의 성교육은 또 다르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보건교사 이유진(40·가명)씨가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을 활용해 만든 수업 자료. 이유진씨 제공

초등학교 보건교사 이유진(40·가명)씨가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을 활용해 만든 수업 자료. 이유진씨 제공


문제는 수업의 질이 온전히 교사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는 점이다. 중학교 보건교사 문하은(51·가명)씨는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을 하라는 공문이 오면 열심히 검색을 시작한다. 교육청이 자료를 줄 때도 있지만, 안 줄 때도 있기 때문에 각자도생한다”고 말했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에서 활동하는 초등학교 교사 김수진(33)씨는 “여러 교육청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지침서나 수업 자료를 개발하지만, 일괄적으로 안내되거나 실제 현장에 닿는 느낌은 아니다”라고 했다.
교육부는 2015년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하고 이를 토대로 성교육과정을 편성하게 했는데 성차별적 내용을 포함해 논란이 됐다. 이후 교육부는 문제가 된 내용을 삭제했고, 지금은 사실상 표준안이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표준안 원본은 공개됐지만, 2023년부터는 교육청에 표준안 사용 안내를 하지 않는다. 2021년 교육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양성평등교육에 성교육이 포함됐기 때문에 관련 과에서 세부 지침을 만드는 과도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책이 변해야 할 문제지만, 교육과정은 역행 중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심의·의결 과정에서 중·고교 보건 교육과정에 있던 ‘섹슈얼리티’ 용어를 삭제했다. 섹슈얼리티는 성에 대한 태도와 사고, 사회제도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로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중·고교 보건 교육과정에서도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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