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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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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하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학교 ‘조례안’ 된 목사님 말씀

“성관계는 부부만” “성염색체가 성별 결정” 서울시의회, 보수 기독교단체 주장 그대로인 ‘조례안’ 추진…혐오·차별 조장하고, 헌법·지방자치법·대법원 판례 등에도 반해
등록 2023-02-03 16:39 수정 2023-02-04 22:08
2022년 7월16일 오후 2022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 서울광장 인근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퀴어퍼레이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2년 7월16일 오후 2022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 서울광장 인근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퀴어퍼레이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다시 ‘조례’ 싸움이 시작됐다.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이고, 불을 지핀 건 서울시의회의 요청으로 서울시교육청이 검토한 ‘학교 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과 ‘학교 구성원의 인권 증진 조례안’ 제정 요구다. 조례명도 운동 방식도 다르지만, 목표하는 바는 똑같다. ‘성정체성’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빼고 ‘생물학적 성별’과 ‘이성애’만을 중심으로 하는 성교육이 학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모두 보수 기독교단체가 ‘동성애’를 공격하며 오랫동안 주장해온 내용으로, 현행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대신 위의 두 조례를 제정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목사 주축의 모임이 제출한 조례안

인권조례를 둘러싼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싸움은 처음이 아니다. 이들이 각 지역의 조례를 대상으로 싸움을 조직화한 것은 2010년대다. 이때부터 ‘성정체성’ ‘성적 지향’ ‘인권’ 등의 단어가 담긴 조례를 폐지하거나 발의를 철회해달라는 움직임이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본격화했다. 실제로 부산시 북구(2016년), 대전시(2015년), 경기도 광명시(2016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성적 지향’이란 단어를 조례에서 빼는 방식으로 개정하기도 했다.

이번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 제정 요구는 혐오·차별적인 내용을 직접 조례에 담아 이를 제도화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이전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2018년부터 서울시의원으로 활동하던 한 의원은 “인권조례를 폐지해달라는 요구는 이전부터 있었는데 새로운 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런 내용을 지지하는) 국민의힘 의원 수가 늘어나면서 더 편안하게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1월 서울시의회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을 제출한 ‘건강한가정만들기국민운동본부’(건가본)는 권용태 본부장, 조용식 사무총장 등 현직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 이끄는 모임이다. 해당 조례안에는 그동안 보수 기독교가 사실을 왜곡하며 성소수자를 차별·배제해온 주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소년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교직원의 자율적인 수업권을 침해하는 내용도 담겼다. 대표적인 문제적 조항은 아래와 같다.

혼인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연합을 의미한다.(제2조 6-가)
성관계는 혼인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제2조 6-나)
남성과 여성은 개인의 불변적인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고, 이는 생식기와 성염색체에 의해서만 객관적으로 결정된다.(제2조 6-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간인 태아의 생명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로 보호되어야 한다.(제2조 6-라)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원치 않는 성행위를 거부할 소극적인 권리로 제한되어야 하고,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일한 선상에 두고 취급하거나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제3조 5)
교직원은 자신의 신념을 배제하고 학생들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교육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을 하여야 한다.(제3조 6)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의 목적은 절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제8조 1)
성교육은 생물학적 성별에 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제8조 3)

조례는 이런 내용을 ‘성·생명윤리’로 규정한 뒤 이와 어긋나는 내용을 교직원이 가르치는 경우를 ‘위반행위’로 보고, 별도로 교육감이 임명한 ‘성·생명윤리책임관’이 위반행위를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는 성명을 내어 “헌법상 보장되는 행복추구권과 인권을 부정하고 성소수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해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시민을 길러낸다는 학교교육의 목적”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교육 내용을 검열하는데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CSE)에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으로 구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라고도 지적했다.

‘학교 구성원의 인권증진 조례안’은 언뜻 현재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성소수자를 겨냥한다. 현행 조례에서 ‘성소수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이란 단어를 모두 삭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28조)에 열거된 ‘소수자 학생’의 사례 중 ‘성소수자’를 빼고, ‘학생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관한 정보나 상담내용’ 관련 누설 금지 조항도 삭제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5조) 조항에 명시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14조) 조항의 ‘성적 지향’, ‘학교복지에 관한 권리’(21조) 조항의 ‘성소수자 학생’이란 단어도 빠졌다.

‘건강한가정만들기국민운동본부’가 2021년 6월 열었던 세미나 포스터. 대부분 목사를 주축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건가본 제공

‘건강한가정만들기국민운동본부’가 2021년 6월 열었던 세미나 포스터. 대부분 목사를 주축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건가본 제공

어떻게 서울시교육청 검토 단계까지 갔을까?

이같은 조례는 헌법뿐 아니라 지방자치법, 대법원 판례 등에도 반한다. 박한희 변호사는 “주민의 권리를 제한할 때는 법의 구체적인 위임이 있어야 하는데 해당 조례는 어떤 근거도 없이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헌법상 주어진 권한을 넘는 행위”라고 짚었다. 대법원은 2006년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결정(2004스42)하며, 정신적·사회적 요소로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 행동·태도·성격적 특징 등의 성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등을 예시로 든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조례에 찬성한다면 사실상 의원들이 위헌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에 책임도 져야 한다.”(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

이런 내용을 담은 조례안이 어떻게 교육청 검토 단계까지 갔을까. ‘건가본’의 권용태 본부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에게 제출한 ‘조례안 제안 경위서’를 보면 과정을 가늠해볼 수 있다. 권 본부장은 “차별금지법을 학교에서 구현하는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폐지안을 관철하기 위해 “서울시의회의 여러 의원들과 접촉”했으며, 그중 “모 의원이 건가본과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생활교육과 과장, 팀장과 만나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설명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의회 의원과 건가본이 현재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점을 개선한 조례안을 만들어나가기로 협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의회 교육위 소속 김혜영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10월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청구 관련 정책 간담회를 개최하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했으며 이 자리에 “길원평 한동대학교 석좌교수, 임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조용식 건가본 사무총장, 박은희 전국학부모단체연합 공동상임대표 등이 참석해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는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김 의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당시 간담회는 아주 간단하게 회의한 것이고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은 금시초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서울시의회 복수의 관계자는 “외부 시민단체가 갖고 왔다는 것만으로 바로 전문위원실에서 검토 단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의원실에서 외부 조례안을 받아 검토 요청을 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답은 정치에 달렸다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은 검토 단계에서 공론화되면서 거센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같은 조례를 제정하는 움직임이 가시화했다는 건 상징적이다. 혐오와 차별이 일부 세력의 ‘주장’에 그치지 않고 공식적인 ‘제도’로도 자리잡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음이 울린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교 구성원 인권증진 조례안’은 국민의힘 의원이 시의회 의석수 과반을 차지한 점을 고려할 때 통과 가능성도 높다.

성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하는 이한씨는 “혐오세력의 존재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이들이 최근 보수정권에 힘입어 검증되지 않은 내용과 다분히 특정 존재를 지우려는 형태의 혐오를 조례나 교육의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이런 세력이 민간위탁을 받는 형태로 공공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실제로 대전시는 2022년 11월 ‘대전시 인권보장 및 증진 조례’에 따라 설치된 대전시인권센터 수탁기관으로 동성애 혐오발언과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에 앞장서온 ‘한국정직운동본부’를 선정했다. 이 단체의 박경배 대표는 대전송촌장로교회 담임목사다. 대전·세종 청소년성문화센터 수탁·운영기관에는 ‘넥스트클럽 사회적협동조합’이 선정됐는데 이 단체의 대표 역시 남승제 목사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동성애 비난을 해온 인물이다.

결국 이 경고음에 어떤 대응을 하느냐가 한국 사회의 다음 방향을 결정한다. “(이번에) 잠시 물러난다고 해도 점점 그럴싸한 법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2007년 법무부는 처음 차별금지법 발의 과정에서 혐오세력의 주장을 ‘정당한 의견’인 것처럼 받아들여 퇴행의 길을 열었다. 과오가 반복될까.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는 한국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라고 권고한다. 답은 정치에 달렸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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