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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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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화물연대가 충돌한 이유는?

화물연대 파업과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쟁점 정리
정부, 6월 파업 때 합의 뒤집고 업무개시명령 발동 등 강경책
등록 2022-12-10 03:41 수정 2022-12-10 11:56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29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29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했다. 대통령실 제공

2주를 넘긴 화물연대 파업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이 “북한의 핵위협과 마찬가지”라며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2022년 12월8일 아침 한덕수 국무총리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오늘 2차로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정부와 여당이 제안한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연장을 수용하겠다.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 논의를 위한 여야 간 합의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앞서 화물연대가 소속된 민주노총과 국제운수노동자연맹은 12월6일 국제노동기구(ILO)에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의 파업 탄압에 대한 추가 개입을 요청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도 12월5일부터 단계적으로 연대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의 압박에 화물연대는 12월9일 오전 조합원 총투표에서 파업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6월 화물연대와 합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깨고 노동자들을 반인도적, 반민주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정부가 비전이나 정책이 없으니 노조에 대한 반격으로 정치적 존재 기반을 확보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쟁점을 화물연대와 정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정리했다.

1. 왜 안전운임제를 이유로 파업하나?

2022년 6월 화물연대의 1차 파업 때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는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및 품목 확대 논의’에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 직후 국토부는 “일몰제 폐지(안전운임제 무기한 시행)와 품목 확대는 안 된다”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이 합의에 따른 국회의 입법 논의도 9월 말 시작됐으나, 10월 말 별 성과 없이 끝났다.

현재 국토부는 2022년 말로 끝나는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의 안전운임제는 다시 일몰제로 3년 연장하겠지만 품목 확대는 안 된다는 강경한 태도다. 구헌상 국토부 물류정책관은 “정부 방침은 이미 결정됐다. 다만 그 뒤에 국회에서 여야가 이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국회에서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애초 국토부와의 합의는 안전운임제를 어느 품목까지 확대할지였는데, 국토부는 이를 확대 여부로 변질시켰다. 정부가 화주 편에 섰고 국회가 논란적인 이슈를 제대로 다루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는 분야는 위험물, 곡물·사료, 카 캐리어, 철강, 택배 등 5개 분야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이 같은 날 오후 경기도 의왕시 이동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 앞에서 열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거부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마친 뒤 머리띠를 묶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이 같은 날 오후 경기도 의왕시 이동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 앞에서 열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거부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마친 뒤 머리띠를 묶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2. 안전운임제란?

그동안 지나치게 낮은 화물 운임으로 화물운송 노동자의 과로와 과적, 과속이 나타났고 이것이 교통사고로 이어졌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20년 1월부터 운수사와 차주(화물운송 노동자)에게 일정한 이윤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 안전운임제 1차 대상 차량은 전체 사업용 화물차 가운데 대수로 6.1%, 물류량으로 14.3%를 차지하는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 차량이었다. 시행 기간은 2020~2022년이며, 3년 일몰제로 시행하고, 일몰 전에 확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매년 안전운임을 결정하는 위원회는 공익 민간위원(4명)과 화주(3명), 운수사(3명), 차주(3명)로 구성됐다.

3. 안전운임제, 효과 있었나?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운임은 상당히 올랐다. 컨테이너 화물차(서울~부산 왕복)의 운임은 2019년 76만원에서 2022년 97만원으로 27.6% 올랐다. 또 시멘트 화물차(의왕~단양 왕복)의 운임은 같은 기간 26만원에서 36만원으로 38.5% 올랐다.

이에 따라 화물운송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시간도 개선됐다. 월 임금은 컨테이너 화물차의 경우 2019년 300만원에서 2021년 373만원으로 24.3% 늘어났다. 시멘트 화물차는 같은 기간 201만원에서 424만원으로 109.5%나 늘어났다. 월 노동시간은 컨테이너 화물차는 같은 기간 292.1시간에서 281.3시간으로 3.7% 줄었다. 시멘트 화물차는 375.8시간에서 354.8시간으로 5.6% 줄었다.

그런데 논란거리는 안전이다. 2019~2021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12.9% 줄었으나, 견인형 화물차(78%가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는 사망자가 42.9% 늘었다. 사고 건수도 전체 자동차는 같은 기간 11.5% 줄었는데, 견인형 화물차는 8.0% 늘었다.

이에 대해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노동자들의 소득과 노동시간에선 확실히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다만 교통사고를 줄이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일몰제를 폐지해서 노동자가 이 정책이 장기적·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4. 화물운송 노동자가 고소득자인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1월22일 기자회견에서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는) 철강이나 위험물 등 운송 분야는 월 임금 수준이 500만~600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처우 개선 관련 절박성이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는 화물운송 노동자 가운데 가장 임금이 높다는 곡물·사료 화물운송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화물연대 주장 409만원, 고용노동부 주장 525만4천원이다. 노조 주장에 따르더라도 2022년 전체 노동자 평균 297만4천원보다 37.5% 높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곡물·사료 화물차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평균 14시간 정도로 전체 노동자 평균 8시간보다 6시간이나 더 많다. 시급으로 따지면 전체 노동자는 시간당 1만9806원이고, 곡물·사료 화물차 노동자는 1만1172원”이라고 말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경영학)는 “화물연대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다른 노동자보다 훨씬 길고 노동강도도 매우 높다. 노조의 파업에 반감을 일으키려는 틀에 박힌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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