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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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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오세훈 당선 뒤 ‘위기의’ 지역 인권활동

지역 인권조례 위기에 사회적 소수자 피해 우려
2023년 완공 ‘인권센터’가 인권단체 요람 되길
등록 2022-10-22 18:25 수정 2022-10-25 17:49
2021년 10월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스페이스M에서 ‘인권재단 사람’의 교육 프로그램 ‘인권활동가를 위한 인권운동 어떻게 해? 경험 나누고 더하기’에 참가한 인권활동가들. 인권재단 사람 제공

2021년 10월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스페이스M에서 ‘인권재단 사람’의 교육 프로그램 ‘인권활동가를 위한 인권운동 어떻게 해? 경험 나누고 더하기’에 참가한 인권활동가들. 인권재단 사람 제공

전라북도 지역의 인권활동가 정다루(23)씨는 꿈이 있다. 서울로 떠난 활동가 친구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지역에서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떠난 친구가 많았다. “지역은 데이트하며 길을 가다가도 아는 사람에게 쉽게 발견되는 좁은 곳이거든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우리 존재를 환대한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인권활동을 하며 지역에 남으려는 이유예요.” 정씨가 말했다. 그가 청소년 때인 2014년 전북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시행됐다. 고등학생이던 정씨는 2016년부터 학생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인권운동은 직업이 됐다. 2021년 6월부터는 전북평화와인권연대의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정씨 같은 지역의 인권활동가에겐 함께 일할 인력, 자원 모두 부족하다. 안 그래도 힘든데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승리한 지역에선 특히 더 힘들다.

위기의 지역 인권조례

충청남도에서는 2022년 8월부터 인권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주민 청구인 서명이 시작됐다. 6·1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도지사가 당선됐다. 충남은 2018년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 도의원들이 주도해 인권기본조례를 한 번 폐지한 적 있는 곳이다. 인권조례는 몇 달이 지나 2018년 6·13 지방선거 뒤 다시 제정됐는데, 최근 다시 폐지 움직임이 이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시장이 당선된 대구시는 2022년 9월8일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시 산하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인권위)를 폐지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시장이 재선된 서울시도 3기 인권위원들의 임기가 끝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4기 위원회를 출범하지 못했다.

국가 차원의 인권정책기본법이 제정되지 않은 터라, 지방정부는 조례에 근거해 성소수자 차별 등의 인권침해를 관리·감독하게 돼 있다. 지방정부의 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와 별개로, 인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입장 표명, 자문 권고 등을 조처해 지역 인권 문제를 감시·감독한다. 서창호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대구) 상임활동가는 “그동안 인권조례를 만드는 등 지역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지방정부가 책임져야 할 인권행정의 책무를 요구해왔다”며 “이를 버리게 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의 시·도민이나 사회적 소수자가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3년 7월에 개관 예정인 인권센터 조감도. 인권재단 사람 제공

2023년 7월에 개관 예정인 인권센터 조감도. 인권재단 사람 제공

흩어진 역량 아우를 인권 플랫폼

이처럼 지역의 인권활동이 위축되는 와중에, 인권단체들 사이의 연결망을 키워가려는 흐름이 나타났다. ‘부산인권플랫폼 파랑’(이하 파랑)은 2021년 4월 설립을 준비해 2022년 2월 문을 열었다. 부산에는 그간 여성, 장애인, 이주민, 홈리스 등을 위한 인권운동 흐름이 제각각 있었지만 이들을 연결하는 단체는 없었다. 파랑은 이들 단체를 네트워킹하는 플랫폼이 되는 게 목표다. 당장은 부산에서 △활동가의 쉼과 성장 지원 △부산지역 인권운동과 현안 연구조사 △인권운동 현장 지원을 위한 모금과 배분 등을 할 계획이다. 한아름 파랑 사무국장은 “부문별로 활발히 활동하는 단체들의 힘을 모아 현안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지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인권활동 지원단체인 ‘인권재단 사람’도 다양한 인권활동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려 한다. 인권재단 사람은 2023년 7월까지 연면적 583㎡(176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인권센터를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지을 계획이다. 사무실도 없이 일하는 활동가를 위한 공간과 함께, 새로 인권단체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팅 사무 공간이 들어선다. 건물 1층엔 활동가들이 서로 인연을 맺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꾸밀 예정이다. 38억원이나 되는 예산이 필요하다. 이 중 부족한 5억원은 현재 시민 후원금을 모아 마련하고 있다.

정민석 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은 “정권이 바뀐 뒤 시민사회가 해온 역할이 행정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다. 특히 지역의 인권행정은 거의 무력화되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인권재단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유입되는 신입 인권활동가가 꾸준히 활동할 수 있도록 센터를 지어 물적인 토대를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2023년 인권센터가 완공되면 정다루씨 같은 지역 인권활동가들이 만나 연결되고, 또 서로 용기를 북돋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앞서 정씨는 2021년 한 달 동안 인권재단 사람에서 열린 ‘저연차 활동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등록 아동 문제 등 그동안 접하지 못한 인권활동을 알게 됐다. 본격적으로 인권활동을 한 지 1년4개월밖에 안 된 신참인 정씨는 전북에서 유일한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성소수자·노동 문제를 주로 다루는데, 최근엔 새만금 신공항 건설로 철새 도래지가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받아안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씨는 “부산 가덕도에도 공항 신설 문제가 현안이다. 이처럼 경남과 전북 등 지역의 문제가 서로 연결되다보니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하기보다 여러 인권 문제가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내 생각을 확장해보려 노력 중이다. “퀴어 퍼레이드에 민주노총 깃발이 등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노동 이슈가 있을 때 무지개 깃발이 뜨기도 하죠. 노동자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권이 더 많이 연결되는 과정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인권의 흐름 아닐까요.”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인권센터 건립 후원에 참여하려면 펀딩(https://www.ohmycompany.com/reward/13015)에 참여하거나 계좌(신한은행 100-030-155071 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에 직접 후원금을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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