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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자 이주호는 변하지 않았다

책과 보고서, 언론 기고, 최근 발언 등을 통해 살펴본 이주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교육 철학
등록 2022-10-07 18:17 수정 2022-10-08 00:45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2022년 9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2022년 9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엠비(MB) 교육 설계자’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돌아왔다. 이번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란 직함과 함께다. 이주호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거쳐 대통령이 장관으로 임명하면, 그는 10년 만에 또다시 대한민국 교육 수장에 오른다.

윤석열 정부는 이주호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에 대해 “교육 현장, 정부, 의정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대전환에 대응한 미래인재 양성, 교육격차 해소 등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 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방점은 ‘경험’이다. 직전에 임명했던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만 5살 초등학교 입학 추진’이란 설익은 정책을 내놔 논란을 일으키고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가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서만 있는 줄 알았다” 등의 발언으로 학부모들을 실소케 했다.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지낸 경제학자로 국회의원,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 등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로 출마했다가 단일화를 주장하며 자진사퇴한 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자의 인수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진보·보수 막론하고 인사청문회 이전부터 각종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 현장과 소통이 안 됐다’ ‘자율형사립고·일제고사로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킨 장본인이다’ 등의 비판이다. 이주호 후보자는 10년 전 교육부 장관 시절의 교육 철학과 태도 그대로일까. 아니면 10년 새 달라졌을까. 그가 펴낸 책과 보고서, 언론 기고, 최근 발언 등을 통해 살펴봤다.

“해결책은 AI 개인교사와 IB 제도”

이주호 후보자는 2021년 1월 출간한 공저 에서 ‘하이터치 하이테크’를 강조했다. 여기서 하이테크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술을, 하이터치는 학습 과정에 필요한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말한다. 학습 목표는 단순히 ‘암기·이해’로 끝내는 게 아니라 ‘분석·평가·창조 역량’까지 키우는 데 있다. 암기·이해 수준의 기초학력 수업은 인공지능 개인교사와 함께 하이테크 학습으로 진행하고, 학생들의 창조적·정서적 역량을 키워주는 하이터치 학습은 교사와 함께 진행하자는 구상이다.

사교육 업계엔 이미 인공지능 학습 도구가 출시돼 있다. 인공지능이 테스트를 통해 학생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개별화된 강의와 평가로 기초실력을 증진하는 형태다. 이런 기술을 공교육에 적극 도입해 교사들의 단순 주입식 수업 부담을 덜고, 교실은 IB(국제바칼로레아)를 통해 토론·논술 등 창의적인 학습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교육재단 국제바칼로레아기구(IBO)에서 개발·운영하는 교육과정 및 국제인증 프로그램으로, 토론·탐구형 교육방식, 논·서술형 평가 체제가 특징이다.

실제로 이 후보자는 2022년 9월30일 첫 출근길에 “교육격차 해소에 ‘정말’ 집중할 생각”이라고 강조하면서, 해결책으로 “AI 개인교사와 IB 제도”를 거론했다. 그가 8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인수위원장으로서 정책 제안을 담아 전달한 백서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상위권 학생과 하위권 학생의 학력격차 해소는 우리 교육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략) 교사들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학생 개인별 맞춤형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또 “학생 주도적 학습과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한 국제공인 교육과정인 IB 프로그램을 도입해 공교육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썼다.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학교 업무 경감을 추진해야 한다” 등의 내용도 있다.

쓰는 단어는 바뀌었지만 일관된 주적은 ‘평준화’

여기까지는 언뜻 10년 전의 ‘일제고사’ ‘자사고’식 교육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후보자가 변했을까? 송경원 정의당 교육 분야 정책위원은 “이 후보자가 과거 ‘다양화’란 말을 쓰다가 최근엔 개인화, 개별화란 말을 쓰는데 일관된 주적은 ‘평준화’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과거엔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끌어내기 위한 방식으로 자사고·마이스터고 등 ‘고교 다양화 300’ 정책을 주장했다면, 이제는 AI 기술 발전으로 ‘개별화’ 교육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자사고·외고는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이 후보자는 2022년 4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제가 주목하는 건 ‘개별화’ 교육으로, 존재하는 자사고를 없앨 필요는 없지만, (자사고 유지가) 제가 공략하려는 중심 과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학습하길 원하는 보수 지지층을 고려해 당장 자사고·외고 폐지에 적극 나서긴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자사고 관련 정책이 집중 과제가 될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이 후보자를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 교육계의 입장은 단순하지 않다. 한 진보 교육단체 관계자는 “그나마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어 내부 의견이 엇갈린다”고 말했고, 한 보수 교육단체 관계자는 “옛날처럼 현장 모르는 소리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22년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AI 교사’와 ‘창의력·사고력 중심 수업’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 교육감 후보가 주장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과제가 옳으냐 그르냐와는 별개로 현장에선 불만이 나온다. 교육이 왜곡된 근본 이유는 평가·입시에 매달리는 경쟁 과열 환경 때문인데, 이 문제를 먼저 논하지 않은 채 교실의 변화를 얘기하는 건 허구라는 주장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 ㅇ씨는 “탁상공론은 답도 없다”며 “문제는 평가다. 우리 학교만 해도 지금 교사 한 명이 200여 명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 입시에 필요한 세특(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 적어주기도 바쁘다. 토론식 수업도 막막하지만 그 평가는 더 막막하다”고 말했다.

국제학교에 근무하며 실제 IB 교육을 실시한 교사 ㄱ씨도 “국제바칼로레아는 실제 교실 현장에선 허울 좋은 껍데기”라며 “제주·대구 일부 공교육에도 도입됐는데 특히 평가의 공정성이 제일 문제다. 모든 교사가 전문성·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이고 점수도 그냥 준다. 소논문 이런 것도 사교육 도움을 받아서 작성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2022년 10월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제공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2022년 10월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제공

‘선발제도’ 문제만 들여다봐

우리나라는 교육 문제로 전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과열된 경쟁 환경에 노출된다. 성인은 높은 사교육비에 허덕이고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다. 급기야 젊은층은 아이를 낳지 않는 데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집중해야 할 부분은 ‘사회적 보상’ 문제라고 말한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경쟁적인 입시 제도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사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더 많이 얘기하는 건, 학력에 따라 격차가 큰 사회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도 “지난 20년간 교육부의 오류가 있다면 ‘대학 서열’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선발제도’라는 세부 문제만 들여다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평론가는 “금메달은 100만원, 은메달은 90만원, 동메달은 80만원을 받는 사회라면 아이들이 공포 경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상체계가 100만원, 50만원, 30만원으로 나뉜 사회라면 그 경쟁은 엄청나게 격렬해진다. 보상체계는 내버려둔 상태에서 경쟁 과열을 해소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의 교육 경쟁 양상이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일자리 양극화·계층상승 사다리 붕괴로 인한 ‘공포경쟁’”(이범, <문재인 이후의 교육>)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나아가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생애 전반 소득 격차가 극명한 상황에서 경쟁 과열은 당연한 결과란 분석이다. 구 소장은 “윤석열 캠프도 후보 시절엔 정의로운 임금체계를 얘기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추진한다고 얘기하는 게 없지 않으냐”고 비판했다.

‘AI 개인교사’ ‘IB’와 더불어 이 후보자의 또 다른 관심사는 ‘대학에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그는 대학이 교육부의 지도·감독을 받는 것, 사립대학이 재산 처분을 위해 교육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 등을 ‘강한 규제’로 판단한다. 2022년 3월 <중앙일보> 칼럼에서 그는 “교육부가 14년 동안 대학 등록금을 거의 동결 수준으로 통제하는 동시에 정성적 평가와 연계한 재정 지원사업을 확대하면서, 대학은 교육부의 재정 지원에 더 의존하고 교육부의 통제를 더 받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고등교육도 시장경제에 맡기자는 것”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인 김일규 강원대 교수는 “대학에 자율성을 확대해주자는 건 결국 고등 교육을 시장경제에 맡기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대학 자율성이 커지면 당장 돈이 되는 과에 투자하고 돈이 안 되는 학문은 죽는다. 대학생을 산업 현장에 내보내야 할 인력이라는 아주 좁은 시각에서만 바라보는데, 사실은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기초학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대학의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성숙한 민주시민이 양성돼야 한 사회 내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데 그런 관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자는 이 <중앙일보> 칼럼에서 입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대학 입시는 학생의 신뢰 보호 차원에서 현 제도를 당분간 유지하되, 교육부가 아닌 신설된 국가교육위원회가 고교 교육 정상화와 공정성 제고에 부합하면서도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찾지 못한 대입 방향성을 국가교육위가 찾을지는 의문이다.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국가교육위 초대 위원장에 ‘박근혜 정부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임명됐고, 정치색이 강한 위원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송경원 정책위원은 “위원회가 애초에 대통령, 국회 등 정치권이 추천을 너무 많이 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정쟁 도구가 됐다”고 우려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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