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10살 안팎의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혹독한 강제노역과 폭행, 굶주림에 시달리다 숨진 뒤 암매장된 어린 원혼들이 반세기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2022년 9월29일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정근식, 이하 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37-1)를 시굴해,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와 유품을 다수 발굴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의 발굴 용역을 수행하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9월26~28일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봉분 4기에서 당시 선감학원 원생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 20여 개와 단추 4개 이상을 발굴했다. 첫 유해는 시굴을 시작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나왔다. 유해와 함께 발견된 단추가 선감학원에 수용된 원생들의 당시 복장에 달린 단추와 같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발굴팀은 유해와 유품을 감식해 희생자의 성별, 나이, 사망 시점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민간인 집단 인권침해 사건의 희생자 유해를 국가가 직접 나서 발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기사= 72년 만에 진실 밝혀낸 민간인 학살 사건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투입할 병력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한 아동 강제수용 시설이다. 1945년 해방 뒤에는 경기도가 시설을 인수해 ‘부랑아’ 등을 격리 수용했다. 경기연구원 등이 관련 기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전쟁 휴전 뒤인 1955년부터 1982년 시설을 폐쇄할 때까지 최소 4691명이 수용됐다. 그중 13살 이하 아동이 85.3%였다. 6살 코흘리개를 포함해 10살 이하 아동 비중만 살펴보면 44.9%였다. 한창 부모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아야 할 10살 안팎의 아이들 대다수는 헌법이 보장한 인권은커녕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도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과 굶주림, 질병, 구타와 학대에 시달렸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희생자들이 묻힌 토양이 산성인데다 아동의 유해는 뼈가 삭는 속도가 빠르다”며 “선감학원 사건이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암매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치아와 유품이 발굴된 만큼 앞으로 본격적인 유해 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유해 시굴은 진실화해위가 2021년 5월부터 선감학원 피해 신청인 190명에게 “옛 선감학원 원생들이 구타와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섬을 탈출하려다 바다에 빠져 숨진 아이들이 선감학원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다”는 진술을 다수 확보한 데 따른 것이다.
시굴은 9월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 동안 진행됐다. 9월26일 오전, 진실화해위는 유해 암매장 추정지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개토제를 한 뒤 시굴에 착수했다. 현장에는 겨우 형체를 알아볼 만큼 낮게 솟은 봉분 수십 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현장에 참관한 생존자 안아무개(70)씨는 “13살 때 끌려와 3년가량 있었는데 지옥이나 다름없었다”며 “(탈출하려다 실패해) 바닷가로 떠밀려온 친구들을 거적때기에 싸서 어린 원생들이 직접 묻었다”고 말했다.
발굴팀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지표면 밑의 구조를 미리 파악하는 지피아르(GPR·지표면 관통 레이더) 검사로 희생자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큰 곳부터 시굴을 시작했다. 우종윤 원장은 “유해가 묻힌 곳은 지표 밑에 인위적으로 땅을 판 흔적과 빈 공간이 있고 토양 성분도 주변과 달리 이물질이 포함돼 GPR 테스트로 암매장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굴팀은 아이들의 주검이 땅속 깊게 묻히지 않았을 가능성을 고려해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삽과 손호미로 지표 토층을 일일이 조심스럽게 걷어내는 수작업으로 발굴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이번 유해 시굴에서 나온 유해와 유품을 통해 선감학원 원생을 암매장했다는 증언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유해와 유품에 대한 세부적인 감식 결과와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 결과를 10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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