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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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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피난살이, 반지하 집 가족의 비애

햇빛이 들지 않는 고통은 절실하지도 않다. 수해만 당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등록 2022-08-12 22:13 수정 2022-08-13 02:23
2022년 8월8일 오후 9시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에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2022년 8월8일 오후 9시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에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em><em>2022년 8월8일 서울에 내린 폭우로 침수된 관악구 반지하 방에서 장애인 가족 세 명이 탈출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현실이 영화 ‘기생충’보다 더 참혹했다. 반지하 주거공간은 1990년 초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대거 건설되면서 생겨났다. 이후 물난리를 겪을 때마다 반지하에 사는 서민들이 침수 피해를 겪었다. 반지하의 열악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계속됐지만 변화는 더디다. 21</em></em><em>년 전인 2001년 9월 <한겨레21>은 침수 피해에 시달리는 반지하 가족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봤다. 놀랍게도 2022년 8월 현재와 너무나도 닮았다. 2001년 9월 376호에 실린 당시 기사를 소개한다. _편집자.</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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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언제 아파트로 이사가?

“어릴 적에는 비오는 게 참 좋았는데…. 큰물지면 왜, 수박도 떠내려오고 가끔은 돼지도 떠내려오고 그러잖아요, 하하. 근데 요샌 비, 하면 덜컥 겁부터 나요.”

강옥순(43·가명·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씨는 애써 유쾌함을 가장했지만, 목소리에는 어느새 쓸쓸함이 묻어났다. 잇따라 두번씩이나 물난리를 만나 살림살이가 쑥대밭이 된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앞날에 대한 기대만 있다면 어두운 과거쯤이야 추억거리로 남을 수도 있으련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지지 않고서야 반지하살이를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만 곱씹을 뿐이다.

지상의 방한칸은 이루지 못할 꿈

강씨 가족이 지금의 반지하 셋방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4년째. 첫 계약 뒤 2년 되던 해 다시 계약을 맺었지만 전세 보증금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2천만원이다. 수해를 입은 데 대해 미안했던 탓인지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년 5월에 전세기간이 끝나는데 주인은 다른 데로 이사를 가라고 해요. 뭐, 쫓아내겠다는 건 아니고 주인집에서도 물난리 때문에 지하 셋방에는 넌더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이사갈 곳만 정해지면 언제든 보증금을 내주겠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어디 마땅히 갈 데가 있어야지요. 돈도 없고…. 올 가을에 전세금이 얼마나 올랐습니까.”

강씨 가족이 이곳 반지하로 이사온 지 2년 되던 해인 99년의 수해는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 집안에 물이 차기는 했지만,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세간살이도 대부분 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올 여름에는 달랐다. 집안에 들어온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냉장고가 방 안에서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다른 가전제품도 몽땅 망가지고 가구는 물에 젖어 비틀어졌다.

“그게 7월 며칠이었더라, 날짜도 잘 기억 안 나네. 아무튼 일요일 새벽이었어요. 제가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다보니 보통 새벽 2시 넘어서 잠을 자거든요.”

전날 낮에도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밤까지 이어지고 새벽이 돼도 그칠 줄 몰랐다. 새벽 3시를 넘어서면서 집 앞 길바닥의 배수구에서 물이 콸콸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시장통으로 이어지는 집앞 길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집 안에 물이 차는 건 시간문제였다.

강씨는 남편과 함께 비디오가게 바로 옆에 있는 반지하방으로 급히 내려가 곤히 잠든 아이들(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2학년)을 흔들어 깨워 위층 주인댁으로 대피시켰다. 세간살이는 미처 챙길 틈도 없었다. 옷가지 몇개만 대충 싸들고 나오자 하수구에서 역류한 물이 파도처럼 들이쳤다. 역한 냄새는 느낄 새도 없이 양동이, 세숫대야를 동원해 물을 퍼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팔이 빠지도록 물을 푸고 또 펐지만 들어찬 물은 한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급한 김에 생각나는 대로 119로, 112로 마구 전화를 걸었지요. 처음에는 전화가 폭주하고 있으니 좀 기다리라는 안내가 나오더니 나중엔 아예 받지도 않더군요. 통장님댁으로 달려가 양수기를 빌려달라고 했지만, 이미 다른 곳에 빌려줘 남아 있는 것도 없고…. 어찌어찌하여 겨우 양수기를 구했을 때는 이미 날이 훤히 밝아올 무렵이었습니다.”

서울 신당동의 한 골목길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다. 다세대 주택은 대체로 반지하를 끼고 있고, 이는 주로 저소득층 1인 가구의 주거공간이 된다. / 박승화 기자

서울 신당동의 한 골목길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다. 다세대 주택은 대체로 반지하를 끼고 있고, 이는 주로 저소득층 1인 가구의 주거공간이 된다. / 박승화 기자

욕먹을 각오를 하고, 속을 좀 긁어놓을 수도 있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주머니는 이렇게 비디오가게를 운영하고, 아저씨도 돈을 벌 테니 웬만하면 반지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돌아온 답은 역시 핀잔이었다. “하이고, 기자양반은 비디오 많이 보세요? 이거 돈 안 되는 거 잘 알잖아요. 여기저기 비디오가게 들어서고 하도 경쟁이 심해서 월세 30만원(보증금 1천만원)에 이것저것 붙는 세금을 떼고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우유배달하는 남편 수입까지 다 합쳐봐야 한달에 200만원 벌기 힘듭니다.”

반지하 신세에서 헤어날 길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그 일’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넉넉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맞벌이니만큼 몇년 아껴쓰고 모은다면 지상에 방 한칸 마련할 정도는 될 형편이었다.

강씨의 남편은 우유배달을 하기 전에 원래 조그마한 장사를 했다고 한다. 열심히 했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행운(?)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한테서 사기를 당해 벌어놓은 돈을 몽땅 날리는 불운을 겪은 것이다.

“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만….” 흐려지는 강씨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아저씨가 무슨 장사를 하다가 누구한테 어떻게 사기를 당했는지는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말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꼬옥 다물어버려 머쓱하게 물러서고 말았다.

정부 지원금은 턱없이 모자라

“사정 모르는 남들은 애들 가르치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냐고도 해요. 맞벌이하면서 왜 반지하에 사느냐는 거지요. 그렇지만 우리 애들 사교육비 거의 안 써요. 초등학교 다니는 작은애, 글짓기학원에 보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애 둘한테 들어가는 돈 다 해봐야 한달에 50만원꼴입니다. 이게 많이 쓰는 건가요?”

올 여름에 겪은 물난리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주름을 더 보탰다. 정부에서 9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제때 지급되지도 않았던 데다 비디오, 오디오 등 축난 세간을 채워넣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도배·장판 새로 하고 싱크대 고치는 것만 해도 지원금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잇따라 물난리를 당한 강씨에게 환기가 잘 안 된다느니, 햇빛이 들지 않는다는 따위 통상적인 반지하의 고통은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다. 다른 것 다 그만두고 더이상 수해만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간절할 뿐이다. 비디오가게에서 한참 얘기를 나눈 뒤 집안을 한번 볼 수 있겠느냐는 요청에 강씨는 잠시 주저주저하더니 앞장을 섰다.

시장통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비디오가게와 나란히 자리잡은 짙은 녹색 철대문의 다세대주택이 강씨가 세들어 있는 집이었다. 대문에서 곧바로 이어져 내려가는 계단 끝에 닿자 알루미늄제 출입문이 앞을 막아선다. 문을 열자 오른쪽에 주방, 정면에 작은 방 하나, 왼쪽에 안방이 있다. 거실은 방과 방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10평 안팎 될까 싶었다.

아들 둘이 기거하는 작은 방에는 책상과 침대가 놓여 있었다. 둘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좁아 보였다.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로 잠깐 얼굴을 내민 햇빛이 실낱처럼 들어와 반지하치고는 그나마 밝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강씨 부부가 생활하는 안방은 대낮인데도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벽지를 새로 했음에도 허리 높이까지 젖은 흔적이 뚜렷해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집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작은 방에는 점심 때까지 햇빛이 드니까요. 제가 바로 옆에서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자주 환기를 시켜 공기도 괜찮은 편이고. 다행히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요. 그런데, 애들이 자꾸 ‘우린, 언제 아파트로 이사가냐’고 묻네요, 자꾸….” 아이들 이야기에 이르자 강씨는 끝내 목이 메었다.

김영배 한겨레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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