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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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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톡’ 하루 1만5천장 깻잎 따는 소리

이주노동자 손 거쳐 오는 먹을거리 4년 관찰기…
“이들의 인권 보장해야 우리 밥상도 건강”
등록 2022-06-02 16:33 수정 2022-06-03 00:52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책 <깻잎 투쟁기>의 저자 우춘희씨. 박승화 기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책 <깻잎 투쟁기>의 저자 우춘희씨. 박승화 기자

“농촌 도로를 달리다가 창밖으로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를 지나친 적 한 번쯤 있을 거예요. 하얀 비닐하우스 사이로 온통 새까만 비닐하우스가 보인다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사람이, 이주노동자가 사는 거예요. 자세히 보면 ○○위성방송 안테나도 달려 있을걸요.”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우춘희(39)씨가 그가 방문했던 비닐하우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검은 차광막을 친 비닐하우스 내부는 이러했다고 한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가설 건축물에 이주노동자 여러 명이 다닥다닥 붙어 산다. 불법 건축물은 지방자치단체의 정화조 설치 허가를 받을 수 없어 화장실은 집 근처 재래식을 이용해야 한다. 퀴퀴한 냄새와 벌레, 곰팡이는 기본. 건성으로 잡은 파리 사체가 순식간에 수북이 쌓일 정도로, 위생도 안전도 엉망인 그 ‘임시’ 거주시설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 수십만원의 기숙사비를 내고 산다. 2020년 겨울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정부의 개선책이 발표됐지만 비닐하우스 안이 아닌 밖에 설치하는 컨테이너 숙소는 사실상 허용되는 등 큰 변화는 없다.

크메르어까지 배우고 캄보디아 현장 연구

우리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는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어떤 곳에서 살고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 최근 출간된 우춘희씨의 책 <깻잎 투쟁기>는 ‘농업’ 이주노동자에 관한 최초의 관찰기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깻잎밭에서 일하고 연구하며 4년 동안 목도한 이주인권의 실상을 담았다. 2022년 5월24일 서울 관악구 인근에서 우춘희씨를 만났다.

‘한국에서는, 누가, 어떻게 농사지을까.’ 우춘희씨의 연구는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가 2015년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다. 농업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계약하고 생산·유통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지원 농업’의 회원이 되면서 직접 작물을 심고, 재배하고, 수확해, 회원에게 배분하는 1년을 보냈다. 우씨의 관심은 자연스레 한국의 농업생산자로 옮겨갔다. 우리나라 전체 농어업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이주노동자다. 채소나 과일 재배 농가는 그 비중이 훨씬 더 크다. 여름방학을 보내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2018년 5월, 이주노동자 인권단체가 주최하는 집회를 찾아갔다. 한 여성 이주노동자의 발언이 우씨 마음에 꽂혔다.

“하루 10시간 일하는데 돈은 못 받고, 사는 곳은 열악하다고 했어요. 뭐가 어떻게 힘든지 궁금하더라고요. 여름 땡볕에 무슨 옷을 입고 일하는지, 쪼그리고 앉아 일하는지, 서서 일하는지, 직접 해보지 않는 한 연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참여관찰의 연구 방식을 택한 거죠.”

2019년 캄보디아 공용어인 크메르어를 배우고 캄보디아로 현장 연구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막 한국에서 돌아온, 곧 한국으로 떠나는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2020년 6~7월 한국의 한 농촌 마을 깻잎밭으로 들어갔다.

딸기도 토마토도 아닌 깻잎밭을 택한 이유는 뚜렷하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고용주는 이주노동자를 1년 내내 고용해야 하는데 농업은 제조업과 달리 고용을 지속하기 힘들다.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는데다 농한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깻잎은 여름, 겨울 번갈아가며 끊이지 않고 재배할 수 있다. 우씨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다가 깻잎으로 갈아타는 농가를 여럿 목격했다. “나이가 들고 힘드니까 이주노동자를 받아야겠다 싶으면 깻잎으로 작물을 바꾸는 거예요. 단위면적당 소득도 나쁘지 않고요. 그래서 깻잎이 고용허가제의 상징적인 작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주노동자 지원 과정에서 만난 한 깻잎 농가에 연구 목적을 밝히고 숙식을 시작했다. 직접 살아보니 농촌 마을의 변화가 더 뚜렷하게 보였다. 내국인(선주민)들이 장을 보고 빠져나간 시내에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오후 6시가 넘어가자 택시들이 멀찍이 떨어진 농가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시내로 태워 날랐다. 베트남 용과, 파파야 같은 보기 힘든 과일과 식자재를 판매하는 아시아마트, 현지 음식을 파는 각국 식당들이 이들을 맞이했다. 결혼이주여성과 그 남편이 운영하는 베트남, 인도 등 각국 식당이 사랑방 구실을 하는데 깻잎밭 이주노동자의 80~90%를 차지한다는 캄보디아의 식당만 세 곳이었다.

“나름 ‘노 코리안 존’이에요. 직장인들, 사장님이랑 밥 먹기 싫잖아요. 똑같은 거죠. 더군다나 식당에서 마주치면 일 끝났는데도 ‘친구나 만나고 있냐’고 고함치니까요. 그 식당을 포함한 시내 풍경이 별천지 같았어요. 시장, 식당, 숙박, 교통수단 할 것 없이 이주노동자들은 엄연한 사회 구성원이 돼서 농촌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사회를 바꿔가고 있었어요.”

2021년 10월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가 한국 농촌 마을의 깻잎밭에서 깻잎을 따고 있다. 우춘희씨 제공

2021년 10월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가 한국 농촌 마을의 깻잎밭에서 깻잎을 따고 있다. 우춘희씨 제공

화장실도 못 가고 돈 버는 소리 ‘톡톡톡톡’

그는 숙식하던 농가에서 일하는 미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 2명을 포함해 20명 가까운 이주노동자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사업주인 농민들과 인력사무소 사장들까지 인터뷰했다. 이주노동이 깃든 농촌 마을은 변화하고 있었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적 대우는 변함없었다.

아침 6시30분 깻잎밭에 들어가면서 이주노동자의 일과가 시작된다.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15상자, 깻잎 1만5천 장을 따야 하는데 아무리 숙련된 노동자라도 힘에 부친다. 속도가 생명이다. 화장실까지 다녀올 틈도 없다.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깻잎밭이 고되기로 유명한 이유다. 그러나 ‘톡톡톡톡’ 깻잎 따는 소리를 이주노동자들은 돈 버는 소리라며 버티고 버텼다.

“임금은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주거환경, 사업장 변경의 부자유, 폭언과 폭행을 견뎌낸 단 하나의 이유죠. 그런데 그 임금이 체불되고 사업주는 적반하장인 사례를 많이 봤어요. 이주노동자가 제게 ‘언니 어떻게 됐어요?’라 묻는데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요.”

농업 이주노동자의 표준근로계약서에는 일종의 공식처럼 ‘근로시간 11시간, 휴게시간 3시간’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만난 한 캄보디아 여성의 휴게시간은 점심시간 35~40분이 전부였다. 초과노동을 했으나 받지 못한 임금, 몇 달째 체불된 임금이 2천여만원에 달했다. 사업주를 고발했으나 그가 몰래 수기로 적어놓은 출퇴근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퇴직금 포함해 750만원만 받기로 합의했다. 2020년 기준 임금체불 당한 이주노동자가 3만1998명에 달한다.

흉가가 딸린 허름한 숙소를 대여해주면서 3명에게 월세 90만원을 받거나, 1만~2만원씩 손에 쥐여주면서 성추행을 일삼거나,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주며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괜찮다고 말하던 ‘사업주’로서의 농민을 만나며 우씨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코로나19 역설, ‘불법 체류자’ 협상력 가지다

“1차 산업이 축소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떠났잖아요. 농산물값은 언제 어떻게 폭락해 빚으로 남을지 모르고요. 농민들도 피해를 봤죠. 그런데 고용허가제로 사람을 들이고 표준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근로기준법을 지켜야 하는 사업주가 된 거잖아요. 사회구조적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주노동자를 억압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된 거예요. 이 위치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피해를 봤다고 남을 착취할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권이 사업주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 2020년 고용허가제로 5만6천여 명이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6688명만 입국했다. 그중 농·축산업으로는 777명만 고용됐다. 인력난이 심화되자 “이주노동자를 옥죄어 불법을 방치하고 확대시키는” 고용허가제의 모순이 극대화됐다.

‘체류기간이 지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합법적 체류기간에 쌓은 전문성과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토대 삼아 일손이 부족한 사업주와 노동조건, 주거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온갖 제도와 법이 구속하는 노예 상태에 놓이지만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서 협상력을 갖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일손 부족이 심해지자 이런 모순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깻잎 투쟁기> 154쪽 참조)

“코로나19로 사람이며 물류며 이동이 제한되니 언제든 필요한 자리에 사람을 수급할 수 있다는 단기 이주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용허가제를 완화하고 미등록 노동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도록 고민해야죠.”

그러나 2021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바꾸려면 원칙적으로 사업주 동의를 받도록 한 고용허가제에 대해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이주노동자의 일터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본 결과”라고 우씨는 지적했다.

‘무감한 공모’에 연루되지 않도록

소비자이자 동료 시민인 우리는 잘 포장된 최종 생산물을 받아보는 데 익숙하다. 유기농, 무농약, 오가닉 표시만 따져볼 뿐 눈앞의 깻잎이 우리 밥상에 오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한다’고 우씨는 강조한다. ‘무감한 공모’(최은영 작가의 추천사)에 자신도 모르게 연루되지 않도록 말이다.

“밥상 위 인권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우리의 한 끼 밥상이 차려지기까지 거친 사람들의 손을 생각해보는 거죠. 이주노동자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 밥상도 건강하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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