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졌다. 그러나 거리에서 혼자만 마스크를 벗으려니 괜한 눈치가 보인다. 이럴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국가가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었으니 쓰지 않아도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할까. 마스크 쓰기를 선택한다면 그 근거는 내 건강을 위한 것일까, 남의 시선 때문일까. 애초에 국가가 마스크 쓰기를 ‘강제’한 것이 옳은 일일까.
앞서 4월18일 모임 인원,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 등 사회적 거리 두기 조처가 전면 해제됐다. 3년째 이어져온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시대에서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체제로 전환하는 과도기다. 그러나 이를 통한 일상 회복은 과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의 감염병 유행이 끝날 무렵 선언됐던 완전한 종식과는 다르다.
의료윤리학자이자 연세대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 교실 조교수인 김준혁 작가는 최근 출간한 책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반비 펴냄)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의료윤리 관점에서 K-방역, 건강 불평등, 백신과 인권, 돌봄, 장애와 노화, 혐오와 차별, 인간중심주의의 한계, 휴먼챌린지(공격접종실험)라는 논쟁적 사안에 이르기까지 첨예하고 근본적인 주제를 다뤘다. 5월4일 김준혁 교수를 서울 연세대 치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준혁 교수는 마스크 착용을 국가가 강제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개인이 자기 건강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게끔 하는 것이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를 수행하는 이유가 건강의 실천이라고 말할 때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특히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는 식의 감정적인 접근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기관에서 일하거나 감염에 취약하거나 코로나19 확진자와 마주칠 가능성이 큰 업무에 종사한다면 마스크를 착용함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거나 환기가 잘되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까지 마스크를 쓰게 할 필요는 없다.”
보호 내세운 ‘강제’보다 개인의 ‘선택’ 지원해야백신 또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감염시키지 않게 하는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신 접종은 사회적인 의무이자 윤리다. “백신 접종은 타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성인에게는 의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은 타인을 보호할 의무를 지는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에게 국방의 의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청소년에게 백신 접종을 확대할 의도로, 학원·독서실에 ‘백신 패스’(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출입 가능)를 적용하려던 정부 방침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 “청소년에게 백신 접종을 확대하려면 방역 패스 적용이 아니라 청소년과 부모의 인식 변화를 위한 활동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한 번도 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게 했다. 이를테면 환자 중 누구를 먼저 치료할 것인가. “2020년 초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75살 이하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우선 배정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나이가 더 적은 환자를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는 뜻이다. 노인 차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수 있는 이 정책이 유럽에서 문제없이 시행됐던 건, 이런 윤리적 기준에 대한 오랜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의료정책에서 윤리를 고려해본 적이 없다.” 김 교수는 이제 한국 사회도 관련한 합의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인공호흡기나 중환자실이 부족한 상황은 코로나19 유행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이후 다른 감염병이 유행할 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희소한 의료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해야 한다면 ‘삶의 기회를 얼마나 누렸는가’가 그 기준이 될 수 있다. 즉, 청년부터 살려야 한다. 시민 각자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질 토양은 생긴 것 같다. 이제 다 같이 이야기해봐야 할 때다.”
공공의료 논의도 한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감염병 사태는 일상적이지 않아서 민간의료기관이 이를 계속 맡을 동력도, 자원도 없다.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 이제 필요성을 느꼈으니 장기적인 안목에서 감염병 관리 인력과 시설을 확충하는 계획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지나간 뒤 먼 미래를 준비하려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까. 김 교수는 ‘보호’라는 이름의 강제 대신 개인 선택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이제 건강을 위해서라도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 영양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맛있는 음식이나 영양 구성만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식재료가 식탁까지 올라오는 경로를 이야기해야 한다. 고기와 관련해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지, 동물복지를 고려하는지 등도 살펴봐야 한다. 그동안의 정책은 페널티 위주였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공공장소 출입을 못하게 하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 식이다. 이제는 건강을 위해 친환경을 선택하는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인터뷰가 끝날 무렵 책 제목과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김 교수는 “건강 자체를 재정의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그는 ‘건강’을 정의할 때 질병 유무나 혈압, 혈당, 체질량 지수 등의 ‘정상’ 측정치보다는 손 씻기, 실내 환기, 운동 같은 건강 행동의 수행 여부를 포함하자고 제안한다. “건강 행동의 수행 여부가 건강의 정의에 포함된다면 우리 사회는 윤리적으로 좀더 공정해질 수 있다. 열악한 생활 습관을 지닐 수밖에 없거나 운동할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 사회가 건강 행동을 할 여건을 제공해주는 것, 그 자체가 공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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