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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에서 풀려난 동성 군인의 사랑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성관계한 동성 군인 처벌은 잘못”1·2심 유죄~대법원 ‘무죄’ 파기환송 재판 당사자와 헌법소원 청구인 인터뷰
등록 2022-05-04 22:51 수정 2022-05-05 10:34
2022년 4월25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ㄱ씨와 ㄴ씨. 신지민 기자

2022년 4월25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ㄱ씨와 ㄴ씨. 신지민 기자

“유죄가 확정되면 바로 파면될 것이라고 했다. 무죄든 유죄든 빨리 (대법원 판결)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 그래야 직장이라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몰랐다.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행동이 ‘추행’이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복직도 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기쁘다.”

성소수자 색출하려 함정 판 육군

군인 ㄱ(29)씨는 동성의 군인과 서로 합의해 사적인 공간에서 성관계했다는 이유(군형법의 ‘추행’)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군형법 제92조의 6에는 “(군인·군무원·사관생도 등을 대상으로)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소수자를 낙인찍는 대표적인 인권침해법으로 비판받아왔다. 위헌 논란도 끊이지 않아 헌법재판소에 여러 차례 헌법소원도 제기됐으나 헌재는 2002년, 2011년, 2016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국회에도 이 조항을 삭제한 군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2022년 4월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군형법의 추행 혐의로 기소된 ㄱ씨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로 판결을 선고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군인들 사이라고 하더라도 근무시간 외에 사적인 공간에서 자발적인 합의에 따라 성관계했다면, 군기를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추행)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도 못박았다. 법조계와 인권단체 등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군형법 제92조의 6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헌재의 판단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인 ㄱ씨와 ‘군형법의 추행 조항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ㄴ(33)씨를 4월25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육군 장교이던 ㄱ씨와 ㄴ씨는 육군이 성소수자 색출에 나섰던 2017년 3월 동성의 군인과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수사 또는 재판을 받았다. 당시 한 군인이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에서 수십 명의 군인을 군형법 추행죄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고 군인권센터에 제보하면서 관련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수사 결과 군인 ㄷ씨가 구속되자 시민들이 국방부 앞에 모여 “나도 잡아가라”며 시위하고, 시민 4만605명이 ‘성소수자 군인을 석방하라’는 탄원서에 서명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육군 중수단은 성소수자가 주로 접속하는 데이팅 앱을 통한 ‘함정수사’로 ㄱ씨를 유인했다. “(앱에서 만난) 상대방이 ‘군인과 잠자리를 한 적 있지 않냐’고 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내 사진과 위치를 보고 어느 부대의 간부라는 것을 알아냈다. 수사받으러 갔더니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메신저 대화 등을 뒤져 다른 부대의 군인과 성관계한 증거를 찾아냈다. 모두 서로 합의해 사적인 공간에서 한 행위인데 이를 ‘추행’이라고 했다.” 중수단은 ㄱ씨를 수사해 군형법의 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ㄴ씨에게는 전 애인에게서 자백을 먼저 받아냈다. “수사단이 나를 찾아와 ‘다 알고 왔다’며 전 애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과 알지 않냐’고 했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전 애인과 영상통화를 시켰다. 헤어졌지만 한때 사랑한 사이였고 군대 안도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의 관계였는데 문제가 됐다. 내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를 넘겨보면서 ‘이 사람 동성애자 아니냐’고 물었고, 다른 군인과 관계를 하지 않았는지도 추궁했다. 당시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위병소에서 수사받았는데, 부대에 소문이 다 났다.” 군은 ㄴ씨를 군형법의 추행죄로 수사했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2017년 4월 군인권센터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소수자 색출 수사에 항의하고 있다. 한겨레 신윤동욱 기자

2017년 4월 군인권센터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소수자 색출 수사에 항의하고 있다. 한겨레 신윤동욱 기자

성관계 많이 하면 처벌도 세진다?

수사 과정에서 군 수사관은 인권을 침해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남자의 어떤 점이 좋냐, 나는 남자가 왜 좋은지 이해가 안 간다, 등의 말을 했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지휘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ㄴ씨) “성관계를 어떤 식으로 했는지까지 물었다.”(ㄱ씨)

ㄱ씨는 현재 휴직 상태다. 군인 신분이라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없다. 복직을 신청했지만 군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돈을 버는 생계부양자지만, 가족에게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아직 밝히지 못했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만 말했다. 그 친구가 끝까지 나를 응원해주고 돈도 빌려줘서 생활을 유지했다.”

ㄴ씨는 적발된 성관계 횟수가 한 번에 그친 ‘덕분’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횟수가 많으면 처분 강도가 세지고 횟수가 적으면 기소유예라는 것도 황당했다. 기소유예가 되니 군은 징계위원회를 열려고 했다. 결국 징계는 받지 않은 채 전역했고 지금은 다른 직종에서 일한다.”

그러나 동성의 군인과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은 ㄴ씨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ㄴ씨가 헌법소원을 내게 된 결정적 계기는 군에서 쓴 ‘출정서’ 때문이다. “군생활 중 훈련을 앞두고 출정서를 써내는 시간이 있었다. 진짜 전쟁이라 생각하고 내가 아끼는 가족이나 친구, 애인 등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거다. 당시 우리 사단에 군인 부부가 있었는데 서로에게 썼더라. 그 출정서가 사단 우수작품으로 뽑혀서 그들은 표창장을 받았다. 만약 내가 동성 군인에게 출정서를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성애는 장려하면서 성소수자는 2등 시민, 하급 시민으로 취급하는 부당한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됐다.”

현재 군은 동성 간 성행위를 추행죄로 엄히 다스리지만 이성 군인 간의 성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징계받는 것으로 그친다. “근무시간 중 영내에서 문제를 저질렀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성 군인 간이든 동성 군인 간이든 무관한 문제다. 그런데 이성애와 달리 군대 내 동성애만 범죄로 보는 것은 불평등하다.”(ㄴ씨)

“오늘날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

한국의 군형법 추행죄는 미국 법을 참고해 1962년 만들어졌지만, 정작 미국은 이 조항을 폐지한 지 오래됐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비판이 지속해서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는 계속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 이유로는 군 전투력 보존이 첫손에 꼽혔다. 2016년 헌재 결정문을 보면,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5명은 “군대는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으며,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방치하면 군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헌재 결정은 동성애자를 ‘비정상’으로 전제하고, 정상적인 성관념이 없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나는 성소수자로서 군대 내에서 특히 더 조심하며 지냈다.”(ㄴ씨)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문제다.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를 미리 문제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ㄱ씨)

다행히 ‘시대의 변화’가 최근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전원합의체 재판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성행위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군형법의 해당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2017년 7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군형법 제92조의 6(추행)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7년 7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군형법 제92조의 6(추행)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5년 만에 얻은 ‘당연한 판결’

ㄱ씨는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내린 판결이니 세상 사람들이 이 결과를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동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고 말했다. ㄴ씨는 “대법원 판결을 보고 쇠사슬에서 풀려난 기분이 들었고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건을 겪고 난 뒤 무거운 쇠사슬이 나를 감싸고 있는 기분에 시달렸다. ㄱ씨의 1심, 2심 판결문을 읽고 화도 많이 났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나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가족이고, 연인이다. 성정체성으론 소수자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내가 다수나 강자 입장이 될 때도 있다.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고, 소수자는 일상 어디에든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이번 사건을 이성애자에 대입해보면 이렇게 반인권적으로 색출할 일이었는지 답이 나올 것이다. 헌재도 위헌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ㄴ씨) “‘서로 합의하에 사적인 공간에서 성관계를 가진 것이 죄가 될 수 없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판결이 나오는 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많은 이가 도와줬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ㄱ씨)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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