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 찬스’를 이용한 논문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최근 20년간 고등학생이 해외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례를 전수조사해 분석한 연구보고서가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에 있는 강동현씨와 카이스트 경영공학 석사과정 강태영씨(미디어스타트업 ‘언더스코어’ 대표)는 공동연구한 ‘논문을 쓰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알아봅시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2022년 4월18일 공개했다.
2001~2020년 해외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한국 고등학생은 980명(논문 558건)으로 집계됐다. 전세계 학술연구 정보를 수록한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서 국내 고등학교 213곳 소속으로 작성된 논문 저자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980명 가운데 67%는 고등학생 시절에 논문 1편만 작성한 뒤에는 추가로 논문을 작성한 이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스펙 쌓기’로 논문 쓰기가 활용됐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고등학생이 쓴 해외 논문 수를 연도별로 나눠 살펴보면, 2014년부터 학교생활기록부에 논문 등재 이력을 기재할 수 없게 되자 2015년까지 오르던 ‘자율고·외고·일반고’ 학생이 작성한 논문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논문 수는 2008년을 기점으로 2010년까지 급상승하다가 내려가는 추세를 보였다. 2007년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10년까지 확대됐던 입학사정관제의 영향으로 보인다(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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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급 해외 논문을 쓰면 학교에서 보도자료를 뿌려줄 정도로 고등학생 해외 논문 작성은 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원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었지만, 논문 주제를 잡기 쉽지 않아서 하지 못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최우등 졸업해 서울대에 입학한 이동현(26)씨의 설명이다.
전수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율고·외고·일반고의 학생이 작성한 논문의 종류는 과학고나 영재고에 견줘 대입 인기학과와 관련성이 높은 의학, 컴퓨터공학 비중도 더 높게 나왔다(그래프 참조). 강 대표는 “20년간 한 해 평균 해외 논문을 쓴 고등학생은 60만 수험생 가운데 어림잡아 50명에 불과하다”며 “과학고나 영재고에서 논문 입시비리는 일탈에 가깝다면 자사고에서 발견된 해외 논문은 유명 학회지와 이름만 같은 약탈적 저널에 조직적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2018년에 낸 ‘교수 논문에 미성년 자녀 공저자 등록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확인된다. 2007~2017년 교수 논문에 미성년 자녀가 공저자로 등록된 논문이 모두 82건 발견됐다. 연도별로 보면 학생부에 논문 등재 이력 기재가 금지된 2014년이 13건으로 정점이었다. 강 대표는 “입시를 자꾸 독립변수로 보고 제도를 바꾸면 공정해질 거라 믿지만 오히려 문제는 커진다. (입시의) 변동성을 잘 견디는 건 상위계층”이라고 말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도 “입시제도가 계속 바뀌면 정보를 누가 먼저 입수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냐가 중요해지는데 돈이 많은 이들이 사교육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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