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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중’ ‘수사중’ 보훈공단은 왜

“핵심 보직 돌려막기로 이해관계 형성”되면서 엄정한 관리·감독 사각지대화
등록 2021-11-30 13:01 수정 2021-12-01 01:57
2021년 11월22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중앙보훈병원 앞 횡단보도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2021년 11월22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중앙보훈병원 앞 횡단보도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국가보훈처 산하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하 보훈공단)이 일부 임직원의 비위 의혹으로 얼룩지고 있다. 보훈공단은 독립유공자, 제대 군인 등 ‘국가유공자에 대한 진료와 의학적·정신적 재활’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다. 연간 예산 규모가 1조원이 넘고 임직원이 7400여 명에 이른다. 전국에 보훈병원 6곳과 보훈요양원 7곳, 보훈교육연구원 등 18개 산하 기관을 두고 있다. 최근 보훈공단에서 새어나온 비위 의혹과 관련해, 공단이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와 전·현직 공단 임직원 등을 두루 취재해 살펴봤다.

1. 수의계약 몰아주기?

2021년 9월 국회의 국정감사를 앞두고 민형배 의원실에 제보가 들어왔다. 보훈공단이 특정 약품 업체에 ‘일감 몰아주기’로 특혜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보훈공단 본사와 산하 보훈병원들은 의약품 도매업체로부터 매년 약 1000억원어치의 약품을 구매한다. 공개입찰이 원칙이지만, 국가계약법 시행령과 공단 자체 규정에 근거해 수의계약도 할 수 있다. 수의계약은 ‘긴급의약품, 또는 중앙구매(공단 본사가 의약품을 일괄구매) 품목 중 업체의 계약 포기로 계약이 해지된 경우 2천만원 이하’ 소액 거래만 적용된다.

보훈공단은 2012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총 8404억원 상당의 약품을 구매했다. 전체 계약(2063건) 중 공개경쟁 입찰이 543건, 수의계약이 1520건이었다. 입찰 또는 수의계약에 참여한 업체는 80곳이 넘는다. 그런데 특정 업체의 실적이 단연 독보적이다. ㅎ업체와의 납품 계약이 504건이다. 전체 계약 4건 중 1건꼴이다. 2012년 9월 설립된 이 업체는 서울중앙보훈병원 고위 간부 출신 A씨가 고문으로 일하는 곳이다. ㅎ업체의 계약 504건 가운데 95%(480건)는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같은 기간 보훈공단 전체 수의계약(1520건)의 31.6%를 차지한다. 수의계약 2위 업체(212건)보다 갑절 이상 많다. 금액으로 따져봐도, 수의계약 총금액(236억4323만원)의 4분의 1이 넘는다.

공개경쟁 입찰에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업체는 2015~2021년 보훈병원 6곳에서 19차례 낙찰받았다. 평균 낙찰률(예정가격 대비 낙찰금액 또는 계약금액의 비율)이 95%를 넘고, 낙찰률 99% 이상의 정확성을 보인 계약도 5차례나 된다. 보훈공단은 민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에서 “ㅎ업체의 평균 낙찰률은 95.4%로 공단 전체 평균 낙찰률 89.1%보다 높다”면서도 “이는 ㅎ업체 계약 19건의 경쟁률(2.7 대 1)이 전체 평균 경쟁률(4.2 대 1)보다 낮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ㅎ업체 수의계약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ㅎ업체가 다른 업체 대비 최저 견적가를 제시했다. 일감 몰아주기와는 다른 경우”라고 밝혔다.

A씨는 “수의계약 금액을 보면 공개입찰보다 거래 규모가 훨씬 적고 단건(일회성)인데다 마진(이윤)이 거의 없다”며 특혜 거래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수의계약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에 대해선 “보훈병원들은 특정 약품이 긴급하게 필요할 때 유통업체에 수의계약 납품을 부탁하는데, 남는 게 푼돈이고 귀찮기만 하니까 큰 업체들은 잘 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작은 곳(소규모 업체)으로 (거래 요청이) 내려오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의 계약 관행에 밝은 전직 보훈공단 관계자는 “신생업체 또는 소형업체들은 적은 이윤, 심지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정부 기관 계약을 하나라도 더 따내려 한다. 그게 실적으로 쌓여서 이후 대형 관급 공사 등에 입찰할 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훈공단은 11월23일 <한겨레21>에 “현재 감사실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2. 부적절한 연구용역 및 자문?

2020년 6월 보훈공단은 ‘보훈환자들의 의료 이용 실태’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집행 부서는 본부 경영혁신실 소속 경영전략부, 용역 수행자는 연세대 미래캠퍼스(강원도 원주 소재)의 보건행정 전문가 B교수였다. 경영혁신실은 보훈공단 기획이사인 C씨 소관이다. 앞서 2019년 8월 C씨는 연세대 보건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B교수는 C씨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 5명 중 1명이었다. 공단 내부에서는 ‘보은성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문제의 연구용역은 C씨가 2020년 1월 경영혁신실장에 임명된 뒤 급작스럽게 진행됐다. 애초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연구용역이어서, 비용을 다른 예산 항목에서 끌어왔다. 용역은 수의계약으로 체결됐다. 지급액은 1950만원이었다. ‘보훈환자들의 의료 이용 실태’는 의료지원실이나 의료운영부 등 전담 부서가 따로 있는데도, 경영전략부가 추상적인 목표의 연구용역을 진행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공단 내부에서 나왔다.

C씨의 학위 논문 지도교수인 D교수도 2015년 2월부터 2021년 8월까지 23차례나 공단 업무와 관련한 외부위원으로 참여해 총 1043만원의 자문료를 받았다. 이 가운데 22차례(자문료 943만원)가 C씨 박사과정, 논문 저술·심사 기간과 겹친다. 같은 기간 B교수도 5차례 외부위원으로 참석해 자문료 140만원을 받았다.

보훈공단의 ‘임직원 행동강령’ 제8조 ‘사적 이해관계의 신고’ 조항에는 ‘임직원 자신 또는 그 가족이 직무관련자에게 고문·자문 등을 제공하는 경우’와 ‘학연, 지연 등 지속적인 친분관계가 있어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자’에 대해서는 ‘이사장에게 해당 사실을 서면으로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이 강령을 위반하는지가 분명하지 아니할 때에는 행동강령 책임관과 상담한 후 처리하여야 한다’(제30조)고도 돼 있다.

C씨가 학위 과정을 수행하는 기간에 논문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을 외부위원으로 위촉하거나 연구용역을 맡긴 것이 공단 윤리규정에 위배되지 않는지에 대해, 보훈공단은 “2020년 6월 연구용역은 C씨가 학위를 취득한 뒤에 발주해 행동강령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며, 따라서 서면 신고와 상담 같은 절차는 없었다”고 밝혔다. “각종 위원회 자문 및 평가위원은 해당 부서가 전문성을 최우선 고려해 복수 추천 후보 중 최종 결재권자(이사장)가 선정한다. 의료 분야는 (보훈공단 본부가 있는) 강원도 원주 소재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를 적극 활용”했다고 했다.

2021년 10월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오른쪽)이 감신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2021년 10월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오른쪽)이 감신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3. 김해보훈요양원 현장실습 허위 작성?

2021년 1월 보훈공단 감사실은 조사보고서를 내놨다. 2020년 9월 접수된 김해보훈요양원의 허위 실습과 부당해고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였다.

보훈공단 임직원이 산하 보훈요양원에 근무하려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야 한다. 자격을 취득하려면 120시간 현장실습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그런데 2017년 하반기에 1명, 2019년 상반기에 2명 등 모두 3명의 보훈공단 간부가 실제 하지도 않은 현장실습을 완료했다는 허위 증명을 꾸미고, 이 과정에서 실무자들을 회유 또는 압박했다는 내부 문제제기가 있었다. 감사실 조사보고서를 보면, 김해보훈요양원 실습지도자 E씨는 “허위 실습을 진행하면 기관 처벌 및 실습기관 취소라는 징계를 받을 수 있다”며 허위 실습 지시를 거부했으나 상급자가 “그래도 해주라”고 압력을 넣었다.

보훈공단 감사실은 비위 제보를 받고도 두 달이나 조사를 미루다가 2020년 11월 말에야 조사를 벌였고, 관련자 7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보훈공단 관계자는 “2017년 10월 허위 실습 당사자가 감사실 간부여서, 감사실이 내부 징계 시효 3년을 넘기려 조사 개시 시점을 늦춘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7명을 업무방해,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4. 김해보훈요양원 부당 해고?

보훈공단은 2019년 11월 복지기능직 6명을 공개 채용했다. 모두 223명이 응시해 37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1등으로 합격한 유아무개(25)씨는 김해보훈요양원에 배치돼, 공공기관 정규직으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3개월 수습 기간이 끝나기도 전인 그해 12월에 유씨는 면직 결정 통보를 받았고, 2020년 1월에 해고됐다. 면직 통보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서면 통지가 아니라 구두로 이뤄졌다. 유씨의 면직 여부를 심사하는 인사위원회 심의도 규정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김해보훈요양원장은 앞서 부적절한 연구용역 및 자문 의혹을 받는 현 기획이사 C씨이다. 그는 유씨의 상급자가 작성한 1차 근무평정을 반려하고 평점을 부적격 기준인 60점 미만으로 낮추라고지시했다. 2020년 2월 유씨는 경남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보훈공단은 뒤늦게 해고통지서를 등기로 보내고, 해고 이유로 △직무 해태 △입소 어르신에 대한 불친절 △업무 불성실 △상급자에 대한 태도 불량 등을 들었다. 유씨의 동료 직원들이 지노위에 제출한 탄원서에 “유씨가 매우 성실하고 친절했으며, 계속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라고 한 것과 정반대였다.

2020년 4월 지노위는 “부당해고”이므로 밀린 임금 지급과 원직 복직을 판정했다. 그러나 김해보훈요양원은 유씨가 복직해 출근한 바로 그날 유씨의 수습 신분이 해제되지 않았으며 근무평정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다시 해고해버렸다. 지노위는 2020년 9월 두 번째 해고도 부당하다고 유씨 손을 들어줬다. 각각 2차례나 부당해고와 복직을 되풀이한 유씨는 모멸감과 상처를 끝내 치유받지 못한 채 스스로 첫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2021년 8월 보훈공단은 C씨 등 관련자들을 경찰에 고발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2015년 이후 감사원 감사는 9건뿐

이처럼 보훈공단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훈공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핵심 보직을 일부 고위 간부들이 ‘돌려막기’로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이해관계가 형성되고 내부 자정 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감사실, 온라인 내부 고발 등 시스템은 갖춰졌지만, 문제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엄정한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보훈공단이 놓이면서, 내부의 비위 행위가 자체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채 잇따라 경찰 수사 등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보훈공단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 기관이지만 2015년 이후 감사원 감사는 9건뿐이며, 최근 불거진 문제에 대해 감사받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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