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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 가린 ‘차별받지 않을 권리’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 릴레이 좌담 ①
중증장애인 입시성적 조작 사건에는 조용하고 비정규직 직고용은 ‘불공정’하다고 반발하는 이유는?

제1388호
등록 : 2021-11-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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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을 출발해 30일간 걸어온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오른쪽)가 2021년 11월1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 도착해 무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가운데는 수어 통역자이다. 박승화 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21년 11월8일 국회 앞에서 24시간 농성을 시작했다. 2021년 안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이다. 차별금지법이 왜 지금 시급하게 필요한 것일까. △평등 관점 없이 전개된 ‘공정’과 ‘능력’ 논의가 차별금지법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채용·임금 차별 등 먹고사는 문제와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차별금지법 유예가 어떻게 모두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지 등을 세 차례 대담에서 살펴보려 한다. _편집자
2021년 11월10일, 500㎞를 걸어온 발걸음이 국회 앞에서 멈췄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부산시청에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까지 30일 동안 도보 행진했다. 무지개 깃발을 든 시민들도 함께 걸었다. 이날은 시민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한 국민동의청원 심사 기한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도 “국회에서 지금까지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조속한 입법 논의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국회는 발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2024년 5월29일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 심사를 연장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1월9일 회의를 열어, 심사 기한을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까지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국민동의청원 150일 만에 나온 응답이었다. 바로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긴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21대 국회에는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이라고 부르는 법안이 4개 발의돼 있다. 차별 방지를 위한 국가 책무를 강조하면서 고용·교육·행정 등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 재발 방지 등을 규정한 법안들이다. 많은 정치인이 차별금지법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고 ‘나중에’ 처리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차별은 시민의 삶을 뒤흔드는 절실한 문제다.

2021년 4월 국립대인 진주교육대학에서 중증장애 학생에 대한 입시성적 조작 사건이 발생했다. 입학팀장이 ‘얘(중증장애인) 뽑지 마라’고 노골적으로 지시했고, 수년에 걸쳐 진주교대에서 장애인을 뽑지 않기 위한 입시조작 관행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대입에서 ‘공정’을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유독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은 놀라울 만큼 냉담하다.

오직 시험만이 공정하다는 믿음
반면 또 다른 ‘공정’ 논란을 두고는 반응이 뜨겁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직원들을 직접고용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어떤 직무인지, 직무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와는 무관하게 시험만이 가장 공정하고, 시험에 통과하는 것만이 능력으로 인정된다. 공무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반발은 ‘시험에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 정규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장애인은 열외로 두고 시작하는 왜곡된 공정 감각, 실제 직무 역량이 아니라 시험 등수로 자격을 얻지 않으면 차별받아도 괜찮다는 불합리한 능력 기준. 평등의 관점 없이 공정이나 능력을 논할 때 빠지는 함정이다. 중증장애학생의 성적을 조작한 진주교대를 상대로 맞서고 있는 이학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 각종 공무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민간위탁직원 직접고용 과정에서 반복되는 ‘공정’ 논란에 대응하는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진주교대 성적 조작 사건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

이학인 “진주교대에서 중증장애 학생을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제보가 있었다. 입학팀장이 입학사정관에게 ‘장애학생 다 날려야 한다’ ‘내 아이 선생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봐라’ 등의 발언을 하며 장애학생들을 불합격시키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입학사정관의 양심고백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2013~2018학년도 장애학생 성적 조작은 물론이고 고교등급제를 운영한 정황 등도 발견돼 교육부가 특별감사를 포함해 관련 조사를 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고발한 입학사정관은 여러 압박으로 인해 현재 휴직 중이다. 당사자인 학생은 성적을 조작했는데도 결국 예비번호로 합격할 만큼 애초에 고득점자였다. 그럼에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예 열외인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이 교사가 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교육 기회에서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장애 여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이는 그러한 보편적 권리로부터 열외인 존재, 특수하게 취급돼도 좋은 존재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차별적 인식, 장애인 교사를 꺼리는 차별적 시선이 이 사건을 일반적인 입시 조작 사건과 다르게 받아들이게 한다.

10월25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공공운수노조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차별을 없애라’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면서 무기계약직이 된 노동자들은 명절휴가비부터 차별받는다. 공무원의 명절휴가비는 기본급의 60%인데, 무기계약직은 일괄적으로 40만원으로 책정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가 있었는데도, 정부는 이번에도 예산을 그대로 편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발한다. 김용균 노동자가 숨지고 난 뒤에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직고용하는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하나.

공성식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없다.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노동하는 것이 권리로 보장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보니 괜찮은 일자리는 시험으로 자격을 얻은 이들의 특권, 신분처럼 여겨진다. 사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원래 취지는 이런 구조를 없애자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법 개정은 없고 민간에 제대로 확대도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공공부문을 넘어 구조의 전환을 위한 펌프질이 시작됐어야 하는데 멈춰버렸다. 그러다보니 정규직 전환이 특정 시기 어떤 이들의 행운처럼 여겨진다.”

2021년 11월6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 공공운수노조 농성장에서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왼쪽)과 이학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능력주의 맹신이 ‘공정’ 개념 왜곡해
공정 논의가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이학인 “공정이란 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공정이 능력주의, 시험주의와 결합하며 왜곡되는 듯하다. 사실 한국 사회는 매우 비장애인 중심적이고, 장애인이 겪는 차별은 차별로 인지되지도 않는 상황 자체가 매우 불공정하다. ‘공정하다’의 기준이 언제부터 시험으로 줄세우기가 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대학 입학부터 시작해 시험으로 줄세우는 것에 익숙하다. 이전에는 공정이라는 개념이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요즘의 논의를 지켜보면 씁쓸하다.”

공성식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도 우여곡절 끝에 민간위탁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채용하느냐’인데 여기서 또다시 ‘시험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2년, 길게는 10년 동안 건강보험공단 상담전화를 받아온, 누구보다도 경험 있고 역량이 검증된 사람들인데 그 모든 경험은 차치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 그 직무를 잘할 수 있는지를 가려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한정된 시간에 문제를 푸는 것에만 갇혀 있다.”

평등과 반차별의 관점에서 ‘공정’ ‘능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학인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사회구조가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평등한지 인식해야 모두가 같은 시험을 치르는 것이 공정한지 고민해볼 수 있다. 공정과 차별이 떨어지는 개념이 아닌데 공정이 반차별의 관점 없이 이야기되면서 구조를 바라보지 못하게 악용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공성식 “임금을 이야기할 때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게 또 자칫 가치평가를 어떻게 할 거냐의 논의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때의 가치는 또 ‘능력’ ‘기여’ ‘생산성’과 연결된다. 기여를 가능한 한 폭넓게 해석해야 하는데 시장 이윤 하나만으로 기여를 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느 정도 일하든지 간에 인간다운 존엄이 보장되는 임금을 줘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우리 모두의 기본권
공정 담론이 차별과 불평등을 오히려 정당화하는 지금의 악순환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구조를 보면 우리 사회의 불균형이 보인다. ‘장애인은 본래 차별을 많이 겪는 특수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모두가 누릴 기본권’이라는 명제를 가려버린다. 우리가 얼마나 울퉁불퉁한 지형의 사회에 서 있는지를 보지 않으면 공정·차별·평등이라는 개념 역시 모두에게 동등한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그러하기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불평등한 구조의 문제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공정의 개념을 다시 고민할 수 있도록 평등과 반차별에 대한 관점과 기준을 사회적으로 제공한다. 불평등한 구조 개선, 인식 전환은 추상적이다. 그렇기에 어렵다. ‘차별’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규정해 실효성 있는 시정조치가 이뤄지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장 빠른 길이자 유일한 길이다.

장예정·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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