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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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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뷰 아파트’ 건설로 세계문화유산 취소되나

김포 장릉 주변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중지됐으나
서울 노원 태·강릉, 고양 서오릉도 경관 침해 우려돼
등록 2021-11-06 14:35 수정 2021-11-07 05:14
수도권 막개발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서울 노원구 강릉의 앞산 조망이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 아파트로 인해 가려졌다. 류우종 기자

수도권 막개발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서울 노원구 강릉의 앞산 조망이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 아파트로 인해 가려졌다. 류우종 기자

“대한민국 문화재이자 세계유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국민의 의식 수준에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관리 수준이 한참 못 미칩니다. 관리 능력의 부재가 ‘장릉’ 건으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태·강릉 건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 유네스코가 더 이상 이 사안에 대해 좌시하지 말고, 나서주시기를 간곡하고 강하게 요청드립니다.”(2021년 10월12일 ‘초록태릉을 지키는 시민들’이 유네스코의 메히틸트 뢰슬러 세계유산센터장에게 보낸 편지)

“건설사 방안으로는 문화적 가치 유지 어려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의 지위가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왕릉 40기 가운데 하나인 경기도 김포시 장릉의 경관이 주변에 지어지는 수도권 2기 새도시 검단지구의 신축 아파트 3만8천 채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이번 사안이 자칫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40기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0월28일 문화재위원회는 세계유산분과, 궁능문화재분과와 합동 회의를 열어 김포 장릉 주변 아파트 건설에 따른 현상 변경을 2차 심의했다. 이날 문화재위는 “3개 건설사가 제안한 방안으로는 김포 장릉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심의를 보류했다. 문화재위는 앞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단지별 시뮬레이션 등 기술적 검토를 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 앞서 7월 문화재청은 3개 건설회사가 건설 중인 아파트 19개동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고, 8월 건설사들은 공사 중지 명령 취소 소송과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9월 서울행정법원은 19개동 가운데 12개동의 공사 중지를 인정하는 가처분 결정을 했다.

그 뒤 3자가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먼저 문화재청은 “이 아파트 건설 사업의 승인권자인 인천 서구청이 2017년 변경된 김포 장릉 주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 고시’를 확인하지 않고 사업계획을 승인했다”고 서구청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 서구청은 “문화재청이 보존지역 변경 고시를 장릉이 있는 김포시청에만 통보했고, 장릉 바로 옆에 있는 서구청에 통보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문화재청에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다.

한 건설사의 관계자는 “2014년 이 토지를 인천도시공사에서 매입할 때나, 2019년 인천 서구청에서 사업 승인을 받을 때 장릉과 관련해 개별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고지가 없었다. 문화재청과 서구청 사이의 행정 잘못으로 애꿎게 건설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문제는 문화재위원회에서 현상 변경 관련 결정이 나온 뒤 벌어질 본안 소송에서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김포 장릉의 계양산 조망 역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의 아파트가 가로막았다. 연합뉴스

경기도 김포 장릉의 계양산 조망 역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의 아파트가 가로막았다. 연합뉴스

태릉에서 50m, 강릉에서 200m 거리에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이 조선왕릉 40기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여성희 문화재청 세계유산정책과장은 “두 차례 열린 문화재위는 검단신도시의 아파트 건설이 세계문화유산 장릉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일이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지위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무분별한 수도권 주택 개발이 잇따라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2020년 8월 정부는 개발제한구역인 태릉골프장(73만7250㎡)에 아파트 6800채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태릉골프장은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인 태릉에서 50m, 강릉에서 200m 거리에 있다. 서울에선 통상 문화재에서 100m 안 지역의 현상을 변경하려면 개별 심의를 받아야 한다.

애초 태릉골프장 자체가 태릉의 영역이다. 문화재청은 2015년 연구보고서에서 태릉골프장 안 외금천교와 연못 부지를 매입해 복원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2016~2018년 태·강릉 1㎞ 앞에 최고 29층 높이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앞산인 구릉산의 경관을 막아 논란을 일으켰다.

태릉 지역 주민단체인 ‘초록태릉을 지키는 시민들’은 2020년과 2021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편지를 보내, 대한민국 정부의 세계유산 가치 훼손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정인 ‘초록태릉을 지키는 시민들’ 대표는 “정부는 세계유산이 훼손되지 않게 태릉골프장을 저밀도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저밀도로 지을 거면 굳이 여기에 아파트를 지을 이유가 없다. 이 사업을 중단하고 모두를 위한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5월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3기 새도시 지역에 포함된 창릉신도시(813만㎡)의 주택 3만8천 채도 서오릉(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의 경관을 훼손할 것으로 우려된다. 창릉신도시 사업지 가운데 8만5천㎡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포함됐다.

양희관 국토교통부 공공택지기획과장은 “태·강릉이나 서오릉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문화재청과 협의해왔다. 미리 세계유산에 대한 영향 평가를 해서 그 결과를 유네스코에 보내 사전 심의를 받으려고 한다. 세계유산에 악영향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속한 추진 위해 절차 간소화”

그러나 전문가들은 세계유산 지역에 대한 정부의 개발이 무분별하다고 비판했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팀장은 “태·강릉이나 서오릉에 적용되는 공공주택특별법은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 과정에서 생태환경이나 역사유산 보존을 사실상 간과한다. 또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인구가 전국의 절반인 수도권에 계속 집을 지어 인구를 끌어들이겠다는 정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현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 서울은 문화재로부터 100m, 경기는 500m인데, 유네스코는 1㎞를 권고한다. 이를 확대해야 한다. 보존지역 안에서 높이 규제를 5~7층 정도로 강력하게 하되, 용적률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게 맞다. 경관 보존을 위해서는 높이 규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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