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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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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아프간 난민 품은 진천을 향한 응원

온라인 쇼핑몰 ‘진천몰’ 주문 폭주로 중단되기도
시민단체 “이제 난민 수용 문제 공론화해야”
등록 2021-09-21 14:06 수정 2021-09-22 02:36
2021년 9월13일 오전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자가격리를 마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9월13일 오전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자가격리를 마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코로나19로 인한 ‘어두운’ 명절은 2020년 한가위, 2021년 설에 이어 올해 한가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의 가족을 만나고 성묘를 가던 명절의 풍습은 옛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이 70~80%를 넘긴 뒤 2022년 설에나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불렸던 명절의 옛 풍경이 되살아날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에선 이번 한가위에 직접 고향을 찾지 못하는 전국의 독자들을 위해 설에 이어 고향 소식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우동(우리동네) 뉴스’입니다. 올해 ‘우동 뉴스’에는 밝은 소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밝은 뉴스라면 충북 진천에 머무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소식입니다. 또 문화시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는 전남 신안군 이야기, 친일파를 제거하는 데 앞장선 울산의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관련 뉴스도 있습니다.
어둠 속에 희망을 보여주는 뉴스도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 지원에서 탈락해 오히려 시민들에게 더 사랑받게 된 인천 인하대, 폐업한 서울의 한 동네서점에 대한 시민들의 열렬한 응원 소식입니다.
이번 한가위에도 가장 많은 우동 뉴스는 역시 개발 관련 논쟁적인 이슈입니다. 제주 제2공항, 전북의 노을대교 건설, 부산 황령산 개발, 강원도의 알펜시아 매각 등은 개발과 환경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경북 군위군의 대구 편입, 경기도의 남북 분리도 한창 논쟁 중입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사퇴 이후 뒤숭숭한 경남의 소식도 있습니다.
아주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부실한 철거 공사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광주의 유가족 소식, 대전의 민간인 7천여 명 학살지 발굴 소식입니다.
이번 한가위까지는 ‘우동 뉴스’를 읽으면서 고향에 못 가는 아쉬움을 달래시고, 내년 설에는 모두 활기찬 모습으로 다시 고향을 찾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_편집자주

“진천군민 당신들은 참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면 방문해 먹고, 놀고, 즐기다 가겠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잊지 않겠습니다.”

전남에 사는 류아무개씨가 충북 진천군청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남긴 글이다. 류씨 말고도 전국에서 ‘국격을 높였다’ ‘자랑스럽다’ 등 진천을 칭찬하는 이가 줄을 잇는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390명은 2021년 8월27일 충북 진천 혁신도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인재원)에 고단한 몸과 짐을 내렸다. 생사를 건 탈출, 비행, 코로나19 진단 검사 등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국내 수용지 결정도 탈출처럼 ‘미라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이룬 이들의 탈출은 작전명 ‘미라클’처럼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들을 반기면서도, 혹시 모를 테러에 관한 불안이 공존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행선지가 관심이었다. 물밑에서 움직인 정부는 진천 인재원을 택했다. 정부는 ‘협의’라고 했지만 진천은 ‘통보’라며 반발하다, 이들의 입국 하루 전 수용했다. 인재원이 있는 덕산읍의 박윤진 이장협의회장은 “다른 데라면 누구나 쉽게 반길 수 있지만 위험이 곁으로 오는데 누가 좋겠나. 사회단체와 주민 등이 격론 끝에 이들을 맞기로 했다”고 밝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진천의 이방인 수용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1월 코로나19를 피해 입국한 중국 우한 교민 173명도 인재원에 머물게 했다. 수천 명의 확진·사망이 발생하는 중국의 위험을 본 주민들은 입소 당일 아침에야 교민들을 받아주기로 마음을 돌렸다. 서재석 덕산읍 주민자치위원장은 “우한 교민, 아프간 기여자 모두 딱히 갈 곳 없는 이들이어서 인도적·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대책을 세워 주민을 이해·설득시켜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식이 강하다. ‘왜 또 우리에게, 우리가 만만한가’ 등 불만과 불안이 나올 만하다”고 말했다.

마음을 연 주민들은 ‘머무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 가시길 바랍니다’ ‘환영합니다’ 등이 쓰인 펼침막으로 이들을 맞았다. 우한 교민 수용 때도 그랬으며, 가는 길엔 ‘꽃길만 걸으세요’란 펼침막으로 교민들을 감동하게 했다. 두 번의 통 큰 결단은 ‘진천스럽다’는 말까지 만들었다. 최창원 인재원장은 “진천 주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어려울 때 이해해줘 존경스럽다”고 했다.

왜 번번이 진천, 인재원이 이들을 안았을까? 윤창열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주민간담회에서 “국가시설 대부분 코로나19 수용시설 등으로 활용하고 있고, 가족 단위의 다인 수용시설이 필요해 인재원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치안 이유도 있다. 공무원 교육시설인 인재원은 비교적 한적하다. 혁신도시 중심 상가, 터미널, 아파트 등과 1㎞ 남짓 떨어져 있고 사방이 공원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입구엔 경찰버스가 대기하고, 길에는 바리케이드가 쳐 있다. 내부는 법무부, 외부는 경찰이 관리한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은 “경찰 등이 테러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어 주민은 안심하셔도 된다”고 했다.

우한 교민 수용에 이어 두 번째 ‘통 큰 결단’

이들은 인재원 안에서만 생활한다. 방에 배달된 할랄(이슬람교도가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도시락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한다. 격리기간이 9월10일로 끝나면서 옆방·아래층 등으로 마실 다니고, 조를 짜서 인재원 운동장을 산책한다. 요즘엔 바깥바람을 쐬며 공을 차거나 뛰노는 아프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인재원 울타리를 넘나든다. 이들은 비로소 한국 생활을 실감하고 있다. 기여자 절반에 가까운 유아·청소년 190명은 곧 한글·문화 등 교육도 받는다.

이들이 진천에 오면서 ‘생거진천’이란 옛말도 소환됐다. ‘사는 곳은 진천이 제일’이란 뜻인데 요즘 딱 맞아떨어진다. 6만5천 명 남짓하던 인구는 2014년 혁신도시 조성 뒤 85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9만 명대로 불었다. 지방 소멸을 피해가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더욱이 요즘 ‘Buy 진천’(진천을 사자) 열풍으로 진천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진천군 운영 온라인 쇼핑몰 ‘진천몰’(jcmall.net)은 주문 폭주로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전국 누리꾼들은 ‘돈쭐내자’(돈+혼쭐내자)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진천으로 몰렸다. 이들은 ‘고품격 진천 돈쭐나야 한다’ ‘돈쭐내니 뿌듯하다’ ‘돈쭐 동참’ ‘진천 대박’ 등의 글과 함께 쌀·들기름·빵 등 진천 특산물을 샀다. 안아무개씨는 “진천을 응원한다. 돈쭐이 이어져 진천이 방긋 웃으면 좋겠다”고 했으며, 김아무개씨는 “전염병에, 한심한 정치에 우울했는데 진천의 감동에 살맛 난다”는 구매 후기를 남겼다.

진천몰은 그야말로 대박 행진이다. 진천 수용을 결정한 8월25일부터 쇼핑몰이 다운된 29일까지 닷새 동안 1800건 주문에 6900여만원어치가 팔렸다. 누리집을 재개장한 9월1~10일 2245건 주문에 1억1300여만원어치가 판매됐다. 진천몰을 관리하는 신현정 진천군농업기술센터 축산유통과 주무관은 “2020년 우한 교민 수용 때도 칭찬과 주문이 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 한 달 평균 1200건 주문에 6500만원 정도가 팔렸는데, 요즘 물량과 일손이 달릴 정도다. 특산물 판매는 물론 진천의 좋은 이미지가 널리 홍보돼 더욱 좋다”고 말했다.

감동한 국민, 전국서 ‘바이 진천’ 열풍

이와 함께 아프간 기여자와 진천을 응원하는 성금·물품 1억여원이 접수됐다. 조경순 진천군 부군수는 “진천의 크고 착한 마음을 알아준 시민들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한국 생활을 할 이들에게도 진천과 진천의 사랑이 각인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 사이에선 불안 정서도 여전하다. 덕산읍 행정복지센터는 최근 관내 이장단 등에게 아프간 관련 치안 안심 문자를 보냈다. 최아무개(42·주부)씨는 “솔직히 밤에 나다니기를 꺼릴 정도로 불안하다. 아마 이들이 떠날 때까지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제 아프간 기여자를 포함해 난민 수용 등에 관한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의 불안 감수를 전제로 이들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가 숙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진천=오윤주 <한겨레>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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