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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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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활동가 마음에 청진기를!

인권활동가 자기돌봄 프로젝트 ‘슬기로운 마음생활’ 이끄는
‘통통톡’ 오현정 심리상담사와 ‘인권재단 사람’ 양여옥 팀장
등록 2021-09-18 22:44 수정 2021-09-19 11:05
2021년 9월11일 서울 중구 ‘뜻밖의 상담소’에서 오현정 통통톡 심리상담사(오른쪽)와 양여옥 인권재단 사람 배분지원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9월11일 서울 중구 ‘뜻밖의 상담소’에서 오현정 통통톡 심리상담사(오른쪽)와 양여옥 인권재단 사람 배분지원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7월 시민단체 ‘인권재단 사람’은 코로나19 인권단체 긴급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운영이 어려워진 인권단체의 임차료나 인건비 등 최대 350만원을 지원한다. 예정에 없이 급작스러운 공고에 심사 기준도 까다로웠지만, 공고된 선정 규모(10개)를 넘어 18개 단체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교육 사업, 회원 대상의 사업 등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던 주요 사업이 취소됐다” “후원금이 줄었다” “개인 대출을 받아 운영비로 쓰고 있다”는 사연이 줄이었다.

인권활동은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 잊힌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모아내 힘을 싣는다. 코로나19는 이런 인권활동의 근간을 흔든다. 방역 지침으로 인해 집회·시위는 물론 오프라인 만남까지 제한되다보니 코로나 시대 인권활동가는 대안을 찾기도 벅차다. 코로나 시대, 누군가의 마음을 돌보는 그 마음은 안녕할까.

고통의 곁에 머물다 고갈된 마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자기돌봄 프로젝트 ‘슬기로운 마음생활’은 그런 인권활동가의 마음을 돌아보고 돌보게 한다. 인권활동가를 대상으로 세 가지 심리검사와 일대일 해석상담을 진행한다. 마음돌봄을 주제로 한 강연도 연다. 건강검진 받듯 인권활동가 마음에 청진기를 대보는 것이다. 비용은 후원받고 사회활동가·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과 협업한다. 2020년 시작해 그해 50명(34개 단체), 2021년 35명(29개 단체) 등 지금까지 80명의 인권활동가(5명 중복 참가)가 지원받았다.

‘슬기로운 마음생활’의 두 전문가에게 인권운동가 마음건강의 현주소를 물었다. 심리상담가로서 인권활동가의 마음을 마주하는 오현정 통통톡 심리상담사(‘뜻밖의 상담소’ 공동대표)와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는 인권재단 사람의 양여옥 배분지원팀장을 2021년 9월11일 서울 중구 뜻밖의 상담소에서 만났다.

오현정 심리상담사(이하 오) 2016년 7월 통통톡 출범 이후 노동자와 사회활동가 마음건강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인권활동가는 고통을 겪는 당사자 곁에 서서 당사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간다. 우리 사회의 치유자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소진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인권활동가들의 마음돌봄이 중요하다.

양여옥 배분지원팀장(이하 양) 인권활동가로 10년 일하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잠시 일을 쉬었다. 2019년 ‘인권재단 사람’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를 돕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다보니 과거의 나와 비슷한 활동가를 많이 만났다. 인권활동가의 습성일 수 있는데(웃음) 그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슬기로운 마음생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건다는 생각이 든다.

양 팀장이 인권활동을 시작한 건 2005년이다. 그를 포함해 상근활동가가 2명뿐인 단체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기자회견과 집회를 준비하고, 당사자와 상담하며, 법과 정책을 공부해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여러 일이 동시에 주어졌다. 100만원 이상의 월급을 쥐어본 적 없다보니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렇게 일해도 사회제도나 정책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성과 없는 일을 반복한다’는 우울감이 심해졌다. 2016년 시민단체 활동가를 그만뒀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그 뒤 알게 됐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며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레 활동가 생활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다. 의지와 열정만으로 10년 넘게 버티다가 결국 고갈돼버린 것이었다.

그의 과거는 다른 인권활동가의 현재다. 시민단체 상근활동가 가운데 절반(51%)이 하루 평균 9시간 넘게 근무하고 3분의 1(33.4%)이 주 6일 이상 일하지만, 3분의 1(30.4%)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활동비를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2019년 나왔다.1 그러나 낮은 임금, 불안정한 노동환경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더해, 인권활동가 스스로 ‘자기착취적’으로 일하는 문제가 있다.

최초의 ‘활동가 마음건강’ 설문조사

뜻밖의 상담소가 실시한 ‘인권활동가 마음건강 기초조사’는 활동가의 마음건강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설문조사다. 2020년 7월~2021년 3월 인권활동가 42명의 직무 스트레스를 살펴보니, 불안정하거나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반 노동자보다 더 높았다. 본인이나 조직의 사정으로 활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지만, 노동시간에 비해 휴식이 적다. 그럼에도 시민단체 선배나 동료로부터 적절한 도움과 지지는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이는 인권활동가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발적으로 운동에 뛰어들어 몰입한다. 그 가치와 신념이 깊을수록 자기실현과 노동의 목표가 일치하게 된다.2 그사이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고, 자신을 돌보는 일은 후순위로 밀린다. 노동자로서 건강권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다.

오 인권활동가의 스트레스를 가늠할 수 있는 맞춤형 척도가 존재하지 않고, 인권활동가 전체를 모집단으로 삼아 표집한 게 아니라는 설문조사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활동가들이 상담에서 나눈 이야기와 조사 결과가 일치하는 면이 있다.

인권활동의 성과와 사회 변화는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우울과 무기력, 좌절과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 변화를 향한 신념과 소신으로 활동하는 인권활동가들은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미흡하거나 부족한 자신을 탓하기 쉽다. 마음건강 문제도 그렇다. ‘내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나를 잘 돌봐야 했다’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디 털어놓으려고 해도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안 그래도 힘든데 나까지 짐을 얹는 건 아닐까’ 자기검열을 한다.

양 활동가도 노동자다. 그러나 그 논의의 출발을 어렵게 하는 지점이 있다. 2~3명이 전부인 소규모 단체가 많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이슈 대응, 행사 기획, 회계 관리까지 여러 가지 일을 그야말로 몸으로 때운다. 필요할 때 활동가 개인이 대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자영업자처럼 일하다보니 노동자와 같아질 수 없는 구분이 존재한다.

코로나19 이후 코너에 몰린 ‘인권’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고통을 사회로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다보니 감정전이(타인과 동일한 정서를 경험하게 되는 경향)를 겪기 쉽다. ‘슬기로운 마음생활’에 참여한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 ㄱ(29)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2021년 봄 성소수자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며 심리적 타격을 겪었다고 말했다. “장례를 치르고 와서도 상담을 재개하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했다. 상실감을 겪으면서도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게 벅찼다.” 인권활동가 마음건강 기초조사에 따르면, 공감 만족이 높고 공감 피로(소진, 간접 트라우마 스트레스)가 낮은 건강한 참여자는 42명 중 4명에 불과했다. 공감 만족이 낮고 공감 피로는 높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증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응답자(9명)를 비롯해 즉각적 개입이 필요한 활동가는 참여자의 42.5%(17명)에 달했다.

오 정서전이를 겪고 마음건강을 위협당해도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인권활동가들은 더 급격히 소진된다. 사회복지사나 정신건강 전문가는 정서전이로부터 경계를 긋고 자신을 지키는 직업적인 훈련을 받지만 활동가는 그런 심리 기술을 교육받을 기회도 적다.

양 적은 게 아니라 아예 없다.

오 정서전이나 대리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돌볼 수 있는 훈련, 존재로서 존중받기보다는 대상으로서 착취된다 느낄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강한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 교육에 이런 심리교육이나 컨설팅 프로그램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양 동의한다. 특히 코로나는 인권활동가를 코너로 더 몰아넣는다. 코로나로 인해 집회나 기자회견은 멈췄지만 인권은 멈출 수 없지 않나. 인권활동가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단체의 재정 상황도 더 열악해졌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우면 시민단체 후원부터 끊는데 그렇다고 후원회원 모집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악순환에 빠진다.

2020년 ‘코로나19 인권단체 긴급지원사업’을 시행했다. 선정된 10개 단체의 재정 상황을 따져보니 전년도 상반기 수입 대비 2020년 상반기 수입 증감률이 평균 -22.7%(-1560만5017원)에 달했고 절반(-50%)이 감소한 단체도 있었다.

‘이어달리기’ 다음 주자를 위해

“고통을 겪는 이는 대체로 바깥은 붕괴하고 자기에게 함몰돼 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그에게 곁이 존재한다면, 그 곁은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증하는 희망이 된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고통을 겪는 이를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3 오현정 상담사와 양여옥 팀장은 고통의 곁을 지키고 선 사람의 곁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길 바란다. 인권활동가의 마음건강 문제를 심리 상담이나 휴식 등 개인적인 대처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인권활동가의 소진을 예방하고 마음건강을 지키는 것은 인권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양 인권활동은 이어달리기와 같다.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못하면 후배가 그 길을 이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노동조건이라면 누가 인권활동에 나서겠나. 활동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오 인권활동가의 마음건강 문제를 개인의 고통이나 병리적 차원으로 생각하면 놓치는 게 많을 것이다. 활동가들에게는 동료와의 연결감도 중요하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집담회 등 활동가들의 마음건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 자신과 동료가 어떤지 그 상태를 인식하는 것에서 마음돌봄은 시작될 수 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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