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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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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번이 고비’를 넘어서자

사회적 숙의와 토론을 통해 출구전략 수립해야, 생활방역위원회의 환골탈태가 핵심
등록 2021-07-23 17:42 수정 2021-07-24 01:47
2021년 7월14일 밤 서울 여의도공원 근처에서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거리두기 4단계 조치 불복 기자회견’에서 김기홍 비대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차량 시위를 벌이며, 영업시간과 모임 인원 등을 제한하는 방역 조처에 항의했다. 연합뉴스

2021년 7월14일 밤 서울 여의도공원 근처에서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거리두기 4단계 조치 불복 기자회견’에서 김기홍 비대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차량 시위를 벌이며, 영업시간과 모임 인원 등을 제한하는 방역 조처에 항의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우리 일상이 달라진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초기 방역, 물리적 거리 두기, 백신 접종이 팬데믹 대응의 핵심 과제였다면, 다음 반년 동안은 그와 더불어 팬데믹 이전의 삶에 좀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 이른바 ‘출구전략’이 화두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출구전략이 단순히 방역 조처 해제를 의미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두자. 이는 백신 수급과 접종률, 거리두기와 같이 정책으로 조정 가능한 항과, 델타 변이를 비롯한 신종 변이 바이러스의 출몰처럼 조정 불가능한 항이 공존하는 고차방정식이다.

확진자 수에 집중하는 현행 방역 패러다임

실제로 제한적 접종률, 느슨해진 거리두기,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최근 확진자 수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감염자 규모 증가와 사망자 또는 입원환자 수의 증가 고리를 끊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반복해서 확인된다. 게다가 접종률이 제고되더라도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고 엔데믹(Endemic·종식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우리 곁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각종 방역 조처에 대중의 피로는 이미 포화상태다. 이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은, 확진자 수에 집중하는 현행 방역 패러다임(‘장기 억제 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정책적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정부는 ‘중환자 돌봄 역량’을 확충하고 유지하는 데 모든 부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정책 기조 변경은 시민이 겪는 위험의 종류와 정도를 변화시키므로 정부는 한국 사회가 향후 ‘수용 가능한’ 수준의 위험을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포괄적인 토론의 장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초기 대응을 두고 국외에서 한국의 성과에 주목했을 때 우리 정부는 개방성·투명성·민주성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국경을 완전히 닫지 않고 필수 인력의 이동을 허용했으며 방역 경험과 임상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점은 다수가 인정한다. 그러나 방역 정책이 충분히 민주적이었냐는 물음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대표적인 것이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하향식 커뮤니케이션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출구전략을 다룰 공론장을 마련할 때 반드시 해소해야 할 과제다.

방역 정책의 결정, 특히 거리두기 격상 또는 완화에 대한 모든 결정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맡는다. 시민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인데도 그 의사결정 과정은 상당 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어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결정되는지, 어떤 전문가에게 어떤 조언을 받는지, 최종적으로 어떤 가치 판단이 작용하는지 대중이 알 수 없고 대개 최종 결정 내용만 국무조정실이 공개하기 때문이다.

2020년 4월10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1차 생활방역위원회에서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감염병과 경제, 사회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생활방역위원회는 거리두기 단계 등에 대해 자문하는 구실을 한다. 연합뉴스

2020년 4월10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1차 생활방역위원회에서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감염병과 경제, 사회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생활방역위원회는 거리두기 단계 등에 대해 자문하는 구실을 한다. 연합뉴스

정부에서 대중으로, 언제나 하향식

이 관행은 적어도 두 가지 난점을 야기한다. 첫째,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방역 조처를 집중적으로 감내하는 피해 계층과 일반 시민의 역치가 낮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사결정에 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 없이 이들을 설득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둘째, 그런 정보는 출구전략에 관한 사회적 논의에 필요한 자원이다. 기존 정책적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적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새 정책을 효과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향식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중은 방역 당국의 브리핑과 언론을 통해 감염병 유행 상황이나 방역 지침을 전달받지만, 역으로 대중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할 통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정책 반응성(해당 정책에 대한 대중의 이해관계 또는 선호의 반영 정도)을 확보하고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면, 소통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최근 참다못한 자영업자들이 차를 몰고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이어간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민주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2021년 2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주도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개편을 위한 공개토론회’는 그에 관한 문제의식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지만, 주제별 패널 구성에 문제가 있었을 뿐 아니라 단발성에 그친 한계가 있다. 이 점은 3월에 열린 ‘사회적 거리 두기 개편안 공청회’에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취지로 설치된 기구가 이미 존재한다. 감염병 전문가, 역학자, 보건경제학자, 사회학자를 포함한 연구자와 직능단체 대표, 정부 인사와 유관 기관장 등으로 구성된 생활방역위원회(생방위)가 그것이다. 중대본이 개최하는 생방위 회의는 단일 부처의 관할에 국한되지 않고 방역 정책 전반을 자문해 의사결정의 파급력이 넓다.

2020년 4월 활동을 시작한 이래 거리두기 3단계 상향을 두고 그해 8월에는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생방위 활동은 대체로 선제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언론의 조명을 받기보다는 비가시적이었다. 언제 모여 어떤 논제로 회의했으며, 어떤 의견을 방역 당국에 제시했는지 공개된 바도 없다. 이는 2021년 7월 거리두기 단계를 조정하는 개편안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순위에 입각한 단계적 완화를

생방위가 출구전략을 논의하는 민주적 기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차원의 고려가 필수적이다. 첫째, 정책적 우선순위를 논의하고 자문하는 장으로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신설된 생방위는 설치의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제도적 취약성이 있다. 그러나 우선순위 설정은 정치적 결정일 뿐 아니라 기술적 전문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중대본에 이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예컨대 출구전략과 수반되는 거리두기 완화는 반드시 일정 수준의 감염자 수 증가와 그에 따른 의료체계 부담을 야기한다. 따라서 전면적 완화보다는 우선순위에 입각한 단계적 완화가 요구된다.

팬데믹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표적 집단인 초·중등학교 학생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더 이상의 교육 공백을 막기 위해 9월 전면 등교가 필요하다면, 마스크 착용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비약물적 개입이 지속돼야 하고, 이런 조처는 의과학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학자·심리학자들의 자문과 더불어, 이 결정에 영향받는 사회집단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합의를 거쳐야 한다. 특히 교사를 비롯한 교직원이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팬데믹에 따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피해 역시 막대하다. 그러나 지원 규모와 범위에 대한 정부 입장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사회적 연대가 작동해야 할 대중의 지지 역시 취약하다. 그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트고 핵심 사안을 다듬는 데 생방위가 긴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생방위가 소기의 활동 목적을 이루려면 ‘손발’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소위원회로 세분해 주제별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 점에서 영국의 전문가 자문체계(SAGE)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SAGE는 비상시 총리가 주관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과학적이고 독립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조직으로, 80여 개 대학·기관에 소속된 28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팬데믹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모델링과 행동과학 소위원회 외에 SAGE는 분자역학, 아동과 학교보건, 사회복지, 임상정보, 병원 내 감염, 인종 등을 주제로 한 소위원회를 구축해 해당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문성 강화와 사회적 통찰 필요

예컨대 코로나19는 연령대별 위험이 상이하므로, 백신접종률이 올라갈수록 집단적 위험은 떨어진다. 그에 따른 방역 전략의 변경이 요구되는 시점을 언제로 볼지,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떤 조처를 내릴지 정할 때 수학적 모델링과 행동과학 전공자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방역 완화에 따라 백신 미접종자의 위험은 더욱 증가하므로 의료 접근성 격차를 해소하고 접종을 유도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 사회과학적 통찰이 결정적이다. 이런 전문성의 확대·심화와 함께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청취하면서 정책에 필요한 근거를 마련하고 종합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필요한 경우 현장조사를 포함해 근거를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생방위가 자체 예산을 확보하거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등을 통해 필요한 연구용역을 적시에 발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안전한 출구전략 수립은 백신접종에 따라 우리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다음 단계다. 동시에 민주주의하에서 사회적 숙의와 토론을 통해 출구전략 수립이 진전돼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럴 때 비로소 방역 완화의 결과로 찾아오는 일정 수준의 코로나19 유행 앞에 매번 우왕좌왕하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이 고비’라는, 그래서 ‘이번만 잘 참고 넘기자’는 공허한 메시지의 반복을 넘어설 계기가 마련되는 시점 역시 그때다.

김상준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보건정책학)

정웅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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