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기일을 앞당긴 기습적 판결이었다. ‘일본이 준 무상 3억달러가 한강의 기적에 기여’했다고 말하면서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박탈했다. 재판을 거부하는 각하 판결을 한 것이다. 31만 명 넘는 국민이 이번 각하 판결을 한 재판장 탄핵을 요구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글에선 각하 판결이 기대고 있는 국제법 논리를 국제법으로 비판하려 한다.
2018년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 판결을 했다. 강제동원 노동이란 일제강점기의 반인도주의적 강제노동을 말한다. 이는 단지 일한 보수를 달라는 임금청구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점해 피압박 식민지 민중에게 가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은 인간 존엄성이라는 국제사회의 근본적 가치를 침해했다. 인도주의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였다. 유엔은 2000년 국가가 인도주의에 반해 가한 중대한 인권침해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국제법적으로 보호함을 총회에서 의결했다. 이러한 ‘강행 규범’은 어떤 국제 약속보다 우선한다.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빌려 설명하면, 아무리 국가 사이에 ‘빚을 갚지 못하면 허벅지를 베어 주겠다’는 약속이 있더라도 국제법적으로 무효라는 뜻이다.
그런데 2018년 대법원 판결은 피해자들의 강제노동 참상을 서술하면서도 국제법상 강행 규범의 법리를 굳이 적용하지 않았다. 대신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를 해석하면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판단했다. 협정 체결 당시 일본 스스로 일제 식민지배가 국제법상 불법임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 이는 객관적 사실이다. 일본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제노동으로 인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를 인정하지도, 인식하지도 않았다. 일본의 태도는 2015년에도 반복됐다. 일본은 박근혜 정부 때 이른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공동발표에서조차 국가에 의한 전시 성폭력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의회에서, 일본이 공동발표에서 말한 ‘관여’가 이른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성병 검사 등을 일본 군대가 맡았다는 그런 의미라고 공언했다.
대법원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애초에 일본은 식민지배 불법성과 직결된 반인도주의적 강제동원 피해자 청구권을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다시 셰익스피어 문장을 빌리면, 못 갚으면 살을 베어 주겠다고 약속한 그 빚이 처음부터 빚이 아니었다고 해석했다. 이번 각하 판결은 이러한 대법원의 해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 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다.”(판결문 27쪽)
그러니까 지금 각하 판결 재판장(법관)은 대법관들의 한일청구권 협정 해석이 ‘국내법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판결문에서 이렇게 대법원 해석을 크게 걱정한다.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재판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만으로 사법 신뢰에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고 만일 패소하는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 이어져 헌법상의 안전보장을 훼손하고….”(판결문 31쪽)
국제법에서, 대법원의 청구권 협정 해석은 그저 국내용일 뿐 국제사회에선 쓸모가 없는가? 대법원의 협정 해석의 잘잘못을 심판하는 국제재판소가 있어 대법원 해석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가?
국제재판, 대법 판결 취소 못해먼저 2018년 대법원의 청구권 협정 해석은 정상적인 재판절차를 거쳐 나왔다. 피고인 일본 기업에 국제법상 재판절차 참여권을 적법하게 보장했다. 이 점은 이번 각하 판결의 재판장이 잘 알 것이다. 법관이니 대법원 판결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국제법상 어떤 국제재판도 대법원의 해석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무효화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 심지어 일본 정부도 한국의 대법원 해석이 한일청구권 협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말하지 못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만일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합의해서 한일청구권 협정 해석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더라도 국제사법재판소는 자신의 한일청구권 협정 해석론을 제시할 뿐이다. 대한민국 대법원의 해석을 심판해서 취소하거나 무효화할 수 없다. 만약 만에 하나 대법원의 해석과 국제재판소의 해석이 다르게 나오더라도 한국 대법원의 신뢰가 깨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할 것인지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결정한다. 대법원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해석에 기초해 어떤 조처가 있더라도 다시 그에 대해 한국의 헌법과 국제법 원칙에 따라 적법성 여부를 심판할 수 있다. 이처럼 조약과 대법원의 관계는 각하 판결의 재판장이 말하듯 그저 조약에 구속된다고 간단히 말할 수 없다. 대법원의 해석은 그저 국내용이 아니다. 이것이 국제법이다.
여기 또 하나의 국제법이 있다. 이번 각하 판결은 또 다른 국제재판인 한일투자협정의 ‘국제중재판정’을 언급한다. 한국에 투자한 일본 기업을 보호하는 한일투자협정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한일투자협정에서 정한 국제중재판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제기한다. 그러나 국제중재판정은 한일청구권 협정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 그저 한일투자협정을 해석할 뿐이다. 그리고 적법한 재판절차를 거친 대법원의 청구권 협정 해석을 한일투자협정 위반으로 판정할 가능성은 없다. 대법원 해석을 취소하거나 무효화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국제법이다.
법관은 모든 조약을 국내법과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면 된다. 그러나 이번 각하 판결의 재판장은 대법원 판결을 ‘국내용’으로 부르면서 식민지배 불법성 판결에 따른 일본의 반발이 한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한국 헌법의 기본 가치에 어긋나는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이 모순을 ‘대법원 패소시 치명적 손상’과 같은 국제법을 만들어 덮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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