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코로나19가 국내에 유입된 이래 가장 큰 위기 상황이다.”(12월7일 나성웅 중앙방역대책본부 1부본부장)
겨울철 코로나19가 유행하리라는 전망은 11월 중순부터 현실이 됐다. 정부는 11월19일 사회적 거리 두기 수준을 1.5단계로 올린 뒤, 수도권에선 2단계(11월24일) → 2단계+α(12월1일) → 2.5단계(12월8일)로 강화해왔지만 확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2월13일(0시 기준) 신규 코로나19 환자가 950명이나 발생했다. 12월10일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따르면 수도권에선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이 있어 입원치료가 필요한데도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환자가 100여 명에 이른다. 2020년 초 목격한 것처럼, 고위험군임에도 병상이 부족해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집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로 의료체계가 흔들리면, 다른 질병으로 인한 중환자와 응급환자도 적정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
또다시 닥친 위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한겨레21>은 12월8일 밤, 임승관(46)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원장과 김진용(45)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예방의학 전문의 김종헌(40) 성균관대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 주영수(55)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과 긴급 온라인 좌담회를 열었다. 김진용 과장은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를 비롯해 지난 10개월 동안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인 임승관 원장은 병상 관리에 매달려왔다. 김종헌 교수는 경기도감염병관리지원단 소속 민간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우리나라 전체 병상의 90%를 보유한 민간 의료기관이 코로나19 치료에 참여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헌 교수(이하 김종헌) (12월5~7일) 하루 검사받은 사람 중 확진 비율이 5% 가까이 되더라. 20명 검사하면 1명꼴로 양성이 나오는 상황이라, 도처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유행 때와 다르게 지금은 기온이 내려가고 있어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실내에 머문다. 1월 말까지 계속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내 밀집도가 높아져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올려도 확산세를 잡기 쉽지 않은 상황으로 가고 있다. 실내 밀집도가 높으므로 공조시설(오염된 공기를 배출하고 신선한 공기를 유입시키는 것)이 없는 곳엔 출입하지 말라고 요청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열악한 중소기업 같은 곳은 타격을 받는다.
주영수 실장(이하 주영수) 처음엔 공포감이 커서 국민 스스로 자신을 격리해 유행이 가라앉은 측면이 있다. 8월 수도권 유행 당시 정부가 획일적인 통제를 시작했고,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로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11월19일 통제를 시작했지만 20일이 지난 지금까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 초 신천지, 5월 서울 이태원이나 8월 광화문광장 8·15 집회 같은 특별한 매개가 문제를 일으켜 통제적인 방식이 통했지만, 지금은 초점을 둘 곳이 명확하지 않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론 감염 확산을 막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임승관 원장(이하 임승관) 중환자 병상 부족이 주로 이야기되지만, 더 중요한 건 ‘일반병상 부족’ 문제다. 경기도에선 지난주 토요일 밤부터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 집에 남겨지기 시작했다. 일반병상이 부족하면 크게 네 곳에 분포한 환자에게 각각 문제가 생긴다. 먼저, 집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다. 12월7일 아침 기준, 경기도에선 집에서 대기 중인 환자가 360명이었고 그중 72명은 병원 치료가 필요하지만 병상을 배정받지 못했다.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환자도 병상이 꽉 차버리면 증상이 나빠져도 병원에 가기 어렵다. 지금까진 응급실에서 확진되면 몇 시간 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원이 가능했다. 일반병상이 부족하면 응급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바이러스 노출 위험도 커져서 응급의료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요양병원과 요양원에도 병상을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 이 경우 확진자·접촉자·비접촉자 세 그룹으로 나눠 그중 한 그룹을 시설 밖으로 빼줘야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지만, 유행 상황에선 이런 조처를 하기 어렵다. 생활치료센터를 늘려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면, 환자 100명 가운데 40명가량은 병원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진용 과장(이하 김진용) 수도권에서 1~2주 내 자택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가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첫 환자 발생 뒤 지난 10개월 동안 의료자원 배분을 소홀히 해서 매를 맞는 거라고 본다. 이 시국에도 감염병 전담병원(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를 전담 치료하도록 지정한 곳으로, 전국 지방의료원 35개를 비롯한 공공 의료기관이 대다수)에서만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것 자체가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치료는 공공과 민간이 다 같이 해야 한다. 공공병원에만 맡기는 정부도 잘못하고 있고, 뒷짐 지고 정부 탓만 하는 민간병원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주영수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지나치게 민간 의존적이고, 정부가 손도 대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에 민간이 참여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공공병원 대부분은 코로나19 대응으로 1년 내내 소진돼 있고 할 만큼 하는 중이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중환자를 볼 수 있는 병원은 다섯 곳도 안 된다. 상반기 유행을 겪으며 병상, 시설·장비,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것들이 정책으로 만들어져 발주된 게 대략 8월, 결과 취합과 의사 결정이 9~10월, 그에 따라 실제로 병상확충 등 최종적인 정책 효과를 보게 되는 시점은 내년 1~2분기나 되어서다. 이번 겨울 유행엔 전혀 대응이 안 되는 거였다. 의사 결정과 행정 집행 프로세스가 너무 느렸다.
김종헌 민간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도 환자를 다른 곳에 보내기 어려워 자체적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공공·민간 구분 없이 의료기관 스스로 환자를 돌볼 준비를 해야 한다.
의료현장을 지키는 이들에겐 인명 피해에 대한 위기감이 크지만, 정부는 보여주기식 ‘병상 수 늘리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12월6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방역 당국, 지자체, 모든 의료기관이 힘을 모아 필요한 병상과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중수본은 12월7일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공문을 보내, 다음날까지 이견이 없으면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일부를 ‘중증환자 전담병상’으로 지정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중수본이 중증환자 전담병원으로 추가하겠다는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상당수는 이미 해당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중환자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임승관 중수본은 남은 병상 수를 강조하지만, 중요한 건 병상 가동률이다. 성별에 따라 병실을 나누고 환자 상황을 고려하다보면 병실을 다 채울 수 없을 때가 있어, 코로나19 병상 가동률은 100%가 될 수 없다. 간호사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병상을 운영하면 가동률 90%까진 가능하다. 어느 지역 병상 가동률이 90%가 넘었다면 어딘가에 병상을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는 의미다.
좌담 참여자들은 정부와 우리 사회가 검사(Testing)·추적(Tracing)·격리(Isolation) 중심의 ‘케이(K) 방역’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방역에 자원 투입이 집중됐지만, 대규모 유행 상황에 대비한 의료자원 분배와 감염 취약 시설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투자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12월7일 문재인 대통령의 “공무원·군·경찰 등 가능한 인력을 모두 투입해 코로나19 역학조사 역량을 강화하라”는 주문도 지금까지 전략의 연장선상이다.
임승관 ‘군경 투입’이 아닌 ‘병상 확보에 전력하라’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국민이 마스크만 잘 써준다면 통제가 될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오류가 있다. 내가 이해하는 팬데믹은 파도가 치듯 몇 달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뒤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다.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내 격리하는 전략뿐 아니라 감염 확산 추이가 통제를 벗어날 경우를 대비한 ‘생존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두 전략 가운데 하나밖에 알지 못한다.
김종헌 군경을 동원한다고 했을 때, 학회 차원에서 ‘역학조사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란 성명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하는 건 접촉자를 찾아 격리하기 위한 ‘콘택트 트레이싱’(Contact Tracing)이다. 역학조사는, 유행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전파가 더 확산하지 않았는지 등을 세밀하게 따져보는 거다.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우리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미국은 역학조사 전문요원(EIS)팀이 감염 사례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질병관리청 소속 중앙역학조사관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만 접촉자를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다중이용시설인 영화관은 공조시설이 잘돼 있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영화만 본다. 그래서 아웃브레이크(유행)가 안 터진다. 반면 음식점은 다중이용시설도 아닌데다 마스크도 풀어놓으니 바이러스가 잘 퍼진다. 역학조사관들이 이런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안 나온다.
당장 이번 유행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역 전략은 무엇인가.
김종헌 록다운(봉쇄)엔 반대하지만 록다운을 시행한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국가의 경제지원책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조시설이 없는데 마스크까지 벗는 공간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등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최소한 겨울이 끌날 때까지 일정 기간 문 닫도록 제안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김진용 이동을 제한하더라도 거리두기를 극대화해 환자 수를 줄인 뒤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거리두기는 시간을 버는 것이지 병을 제거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가져선 안 된다. 그동안 정부는 ‘2주만 기다리면’ 풀어줄 것 같은 메시지를 주었는데, 그렇게 하면 시민들이 생활 영역에서 스스로 바꿔야 할 걸 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헬스클럽 트레이너가 코로나19에 걸렸는데 그가 가르친 회원 50명이 모두 음성이었고 그 비결은 ‘환기’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감염 위험이 큰 밀집된 도시 생활을 피할 수 없다면 위험을 낮출 ‘뉴노멀’을 사회 각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 이렇게 다시 올 유행을 준비하지 않고 2주 기다렸다 문 열고 다시 문 닫기를 반복하다간 결국 다 지쳐 쓰려진다.
정부는 코로나19 예방 백신 4400만 명분을 선구매해 이르면 2021년 상반기 접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 임상시험 중인 혈장치료제(완치자 혈장을 투여해 바이러스 저항력을 갖게 하는 치료법)를 통해 환자가 완치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도 장기전을 준비해야 하나.
김진용 백신 접종으로 항체가 형성된다는 거지, 프로텍션(보호)을 얼마나 잘하고 길게 하는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고령 환자는 나빠지는 게 눈에 보이지만 무기력하다보니 치료제 개발에 조금이라도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그러나 ‘완치’라는 기사 제목은 자극적이다. 치료제만으로 코로나19 청정국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임승관 코로나19로 생명을 잃는 사람들은 고령이다. 약물보다는 환자의 신체 요인이 생명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백신은 잘 모르는 분야라 의견을 내긴 어렵지만, 백신에 기대하는 모습이 마치 슈퍼히어로를 기다리는 것 같다. 거리두기로 경제적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분배 정의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을 고민하는 ‘사회적 신뢰’를 쌓기보단 백신·치료제·진단키트 같은 과학기술에 지나친 신뢰를 갖는 게 걱정스럽다. 백신 접종이 현실화했을 때 백신의 불완전성 이슈가 사회를 더 힘들게 할 것 같다. 백신이 얼마나 빨리 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백신이란 무기를 잘 다루는 숙련도가 우리에게 있는지에 집중하면 좋겠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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