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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신곡보 허물면 수위 2m 내려가...한강서 수영할까?

신곡보 개방으로 한강 자연 복원 추진… 뱃길 준설, 수상 시설물 이설 등 넘어야 할 산 많아
등록 2020-10-25 22:45 수정 2020-10-31 09:33
1988년 김포대교 하류에 신곡수중보가 설치돼 서울 한강에 펼쳐져 있던 수백만 평의 백사장이 강물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신곡수중보 고정보의 현재 모습. 류우종 기자

1988년 김포대교 하류에 신곡수중보가 설치돼 서울 한강에 펼쳐져 있던 수백만 평의 백사장이 강물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신곡수중보 고정보의 현재 모습. 류우종 기자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울 한강은 온통 백사장과 모래섬으로 가득했다. 현재 너비 800~1천m의 물길은 당시엔 겨우 300~400m 정도였다. 한강은 백사장과 섬들 사이를 구불구불 흘렀다.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하나가 된 한강은 팔당과 미사, 하남, 구리를 거쳐 광나루(광진)에서 서울로 들어왔다. ‘바람들이’(풍납동) 부근에선 300만 평의 거대한 모래밭인 잠실섬을 만나 다시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강 본류는 잠실 남쪽 송파나루, 삼밭나루(삼전도) 쪽으로, 지류는 잠실섬 북쪽을 ‘새내’(신천)라는 이름으로 흘렀다. 송파와 삼밭을 지난 한강 본류는 탄천과 양재천의 두물머리에서 부리도를 만들고, 다시 삼성동 부근에서 무동도를 만든 뒤 잠실 북쪽을 흘러온 새내와 합해졌다.

잠실섬을 지난 한강은 뚝섬 부근 중랑천(한내) 하구에서 다시 저자도라는 큰 모래섬을 만들었다. 닥나무와 별장으로 유명했던 저자도는 1960년대 사라질 때까지만 해도 30만 평이 넘었다. 저자도 남쪽엔 한명회의 별장인 압구정이 있었는데, 1960년대 현대건설이 저자도의 모래를 파서 압구정 쪽 땅을 메웠고 그 자리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섰다. 저자도를 지난 한강은 한강나루(한강진)를 만나는데, 현재의 한남대교 북쪽이었다. 한남대교 남쪽엔 큰 백사장이 있었고, 그곳을 사평리(모랫별)라고 불렀다. 현재의 신사동이다.

1960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일대의 한강 백사장에선 시민들이 여름에 강수욕을 하고, 겨울에 썰매를 타는 일이 일상이었다. 서울시 제공

1960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일대의 한강 백사장에선 시민들이 여름에 강수욕을 하고, 겨울에 썰매를 타는 일이 일상이었다. 서울시 제공


백사장 펼쳐진 1960년대 한강

서빙고와 동작나루를 지나 노들나루 북쪽엔 조선 때부터 가장 유명했던 백사장이 펼쳐졌다. 현재의 동부이촌동 아파트 단지에서 노들섬까지 이어졌던 ‘한강 백사장’이다. 한강은 노들섬에서 남쪽 노들나루(노량진) 사이로만 흘렀다. 1960년대까지 이곳은 시민들의 대표적 놀이터였다. 여름엔 거대한 인파가 헤엄치고 놀잇배를 탔다. 겨울엔 한강대교 아래서 썰매를 타고 얼음낚시를 했다.

노들나루를 지난 한강은 다시 255만 평(약 8.4㎢)규모의 거대한 모래섬을 만난다. 바로 여의도(너벌섬)였다. 당시 여의도는 현재의 3배 규모로, 현재의 여의도에서 밤섬까지가 모두 백사장이었다. 한강 본류는 밤섬과 마포 사이로 흘렀고, 남쪽으로는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에 샛강이 지나갔다. 1968년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밤섬의 돌을 깨내고 여의도의 모래를 파내 백사장 위에 88만 평 규모의 윤중제(둘레둑)를 쌓았다. 이때부터 여의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여의도와 밤섬을 지난 한강 본류와 샛강은 양화나루 앞에서 다시 합해져 선유봉을 만났다. 과거 선유도는 섬이 아니라 남쪽 땅과 백사장으로 연결된 돌봉우리였다. 1960년대 백사장을 파내면서 선유봉 남쪽으로 샛강이 만들어져 섬이 됐다. 그 전에는 선유도 북쪽으로만 한강이 흘렀다. 선유도를 지난 한강은 다시 100만 평 규모의 중초도(난지도)를 만나 본류는 남쪽으로, 지류는 북쪽으로 향했다.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였던 난지도엔 1977년 쓰레기매립장이 설치됐다. 난지도를 지난 한강은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고양, 김포, 파주를 가로지른 뒤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들어갔다.

과거에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굽이치던 한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960년대 박정희 시대와 1980년대 전두환 시대에 두 차례 한강 개발로 상전이 벽해가 됐기 때문이다. 군사정부는 한강 양쪽으로 높은 제방을 쌓고 대규모 준설을 해서 강을 더 좁게, 더 깊게 만들었다. 백사장과 모래섬이 있던 곳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강변북로, 올림픽대로가 들어섰다. 특히 김포대교 부근에 길이 1007m, 높이 2.4m의 신곡수중보(신곡보)가 세워지자 수백만 평의 백사장이 일시에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서울시민들이 보는 거대한 너비의 한강 물길은 실제 한강이 아니라, 신곡보로 막힌 한강호 또는 한강 저수지다.

환경단체들은 한강 하류의 신곡보를 허물어 한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되살리자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2009년 서울환경운동연합은 각계 전문가들로 ‘한강복원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원순 당시 시민후보는 ‘자연형 한강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원순 후보의 당선으로 신곡보 철거를 통한 한강 복원은 순풍에 돛을 단 듯 보였다.

1960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일대의 한강 백사장에선 시민들이 여름에 강수욕을 하고, 겨울에 썰매를 타는 일이 일상이었다. 서울시 제공

1960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일대의 한강 백사장에선 시민들이 여름에 강수욕을 하고, 겨울에 썰매를 타는 일이 일상이었다. 서울시 제공


신곡보 철거와 한강 복원

그러나 박원순 전 시장은 이 사업의 추진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취임 초기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한창 추진됐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중앙정부의 협조를 얻기 어려웠다. 대신 2012년 서울시는 한강시민위원회를 출범시켰고, 4대강 사업의 대표적 비판 단체였던 대한하천학회에 맡겨 2015년 2월 ‘신곡수중보 영향 분석’이란 보고서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보수세력의 등쌀에 밀려 정식으로 공개하지도 못했다. 서울시는 바로 2차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2차 보고서는 2020년 10월21일 서울시의회의 더불어민주당 문장길 의원과 박기열 의원이 연 ‘신곡수중보 개방 검토 이후 한강 복원 전망’ 토론회에서 처음으로 일부 공개됐다. 1차 보고서가 발표된 지 5년 만이었다. <한겨레21>은 전체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보고서 제목은 ‘신곡수중보 가동보 개방 실증 용역 보고서’(2019년 12월)인데, 실제로는 철거할 경우까지 포함해 예상되는 결과와 비용 등을 분석했다. 신곡보를 철거하는 경우 한강 수위는 현재보다 최대 2m까지 낮아진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다시 말해 신곡보가 인위적으로 한강 수위를 2m까지 높여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곡보를 철거해도 물길넓이(수면적)와 물길너비(수폭)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현재 상태와 비교하면 철거해도 물길넓이와 물길너비는 94% 수준을 유지해 감소폭(6%)은 예상보다 훨씬 작다. 애초 한강 자연 복원에 따른 주요 성과로 예상된, 여름철 강수욕과 겨울철 강썰매(강스케이트)는 쉽지 않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강수욕과 강썰매가 어렵다면 시민들에게 한강 자연 복원 효과를 체감하게 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염형철 서울시 신곡수중보 정책위원(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은 “신곡보 철거 뒤 한강에서 강수욕과 강썰매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도 모래가 쌓이는 여의도 샛강 상류나 탄천 합류부 등 퇴적 지역에서는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면 훨씬 더 많은 곳에서 강수욕과 강썰매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곡보를 철거하면 뱃길 구간 20㎞ 가운데 11.2㎞가 하루 9.8시간 동안 수심이 부족하게 된다. 현재와 같이 배수량 700t 이하의 유람선이 다닐 수 있으려면 절반가량 구간에서 준설이 필요하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신곡보를 철거하면 백사장이 복원되고 수심이 낮아지는 등 큰 변화가 나타난다. 이런 변화에 따라 한강 이용 방법도 바꿔야 한다. 지금보다 작은 규모의 배가 다니게 하면 된다. 준설은 신곡보 복원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빛섬과 선착장 등 수상 시설물도 신곡보를 철거하면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수상 시설물이 강가에 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수위가 내려가면 강바닥에 닿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 한강에 있는 58개 수상 시설물 가운데 48개가 신곡보 철거의 영향을 받는다. 이 보고서는 바닥 준설이나 이동설치(이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시설물들은 사용연한이 있는데, 기간이 다 된 것은 새 환경에 맞게 교체하거나 없애야 한다. 한강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불필요한 시설물들은 대폭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이전 한강 모습을 찍은 항공사진. 한강에서 흰색으로 보이는 곳은 대부분 백사장이었다. 서울시 제공

1960년대 이전 한강 모습을 찍은 항공사진. 한강에서 흰색으로 보이는 곳은 대부분 백사장이었다. 서울시 제공


2021년 상반기 신곡보 1단계 개방

신곡보 철거에는 최대 2179억원이 들 것으로 보고서는 예상했다. 가장 큰 비용은 뱃길 준설(876억원), 수상 시설물 이설과 준설(390억원)에서 발생했다. 정작 신곡보 철거 비용은 296억원으로, 전체 비용의 13.6%에 그친다. 백경오 한경대 교수는 “서울시가 한강에서 벌여온 개발사업들이 신곡보 철거 과정에서 추가 비용을 낳고 있다. 한강 복원은 이런 불필요한 사업들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 보고서의 결과를 바탕으로 2021년 상반기까지 1단계인 신곡보 부분 개방을 시작할 계획이다. 1단계 부분 개방은 수문 5개 중 2개를 24시간 개방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강 수위는 현재보다 70㎝ 정도 낮아진다. 서울시는 이 결과를 보고 2단계 신곡보 완전 개방(수문 5개 24시간 개방)과 3단계 신곡보 철거로 나아갈 계획이다.

서울시 김재겸 물순환정책과장은 “1단계 부분 개방을 위해 현재 중앙정부와 협의 중이다. 다만 내년 4월 새 시장이 취임할 예정이어서, 그 뒤 사업이 어떻게 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했다. 염형철 신곡보 정책위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1단계 부분 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이미 결정됐다. 새 시장이 취임하면 이 사업에 변화가 올 수 있지만, 박 전 시장한테 그랬듯 설명하고 설득해서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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