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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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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공무원 피격, 세 개의 비극 분기점

북한은 비인도적 과잉 대응, 남한은 관성에 따른 안일한 대처… 민심과 유리된 남북관계 회복은 불가능
등록 2020-10-10 16:36 수정 2020-10-11 09:11
북한군에 피격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서 해경선으로 보이는 선박 관계자들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2020년 9월25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 연합뉴스

북한군에 피격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서 해경선으로 보이는 선박 관계자들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2020년 9월25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 연합뉴스

2020년 9월22일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실종됐던 남한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사건의 총체적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한국 정부는 피살 공무원이 남긴 여러 정황과 대북 감청 정보를 근거로 ‘탈북 시도’로 사실상 결론지었지만, 유가족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사건 초기 남한 국방부가 “북한군이 시신을 불태웠다”고 밝혀 큰 충격을 안겨줬지만, 북한이 이를 부인하자 남쪽 정부도 “판단 유보”라며 한발 물러섰다. 북한군 상부가 지시한 총격인지, 상부의 지시라면 어느 선에서 내려졌는지, 북한의 발표대로 북한군 함정 정장의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7월19일 개성에 도착한 탈북민

남한 당국의 첩보 분석과 북한 당국의 해명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서 정부는 남북 공동조사와 군통신선 복구를 요청했다. 하지만 10월6일 현재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사건 초기 북한의 통일선전부가 전화통지문으로 신속하게 총격 사실을 인정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사과를 표명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주검마저 보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확한 진실 규명이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기초해볼 때,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 악화라는 구조적 요인 속에 북한의 비인도적 과잉 대응과 남한의 안일한 대처가 맞물려 벌어진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연락사무소를 비롯한 남북 사이 통신망이 정상 가동됐다면 이번 사건은 예방할 수 있었다. 남쪽이 실종 사실을 북쪽에 신속하게 통보하고, 북쪽이 실종 공무원 발견 사실을 남쪽에 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북쪽은 6월9일 정오부터 남북 사이 통신선을 완전히 차단, 폐기해버렸다. 6월16일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도 했다. 대북 전단 살포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하는 가운데 남북 사이 소통망이 막히면서 9월22일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실시간 소통망 부재는 이번 사건의 구조적 원인은 될 수 있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우선 북한의 비인도적 과잉 대응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실종 공무원이 단순 표류자였다면 남한에 신병을 인도할 수도 있었고, 월북자였다면 신병을 확보해 체제 선전에 활용하거나 남쪽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전에는 이렇게 처리했다. 하지만 이번엔 6시간 정도 우왕좌왕하다가 사살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올해 7월에 있었던 탈북민의 월북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7월19일 한 탈북민이 임진강을 헤엄쳐 개성 지역으로 들어가자 북한이 발칵 뒤집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할 정도였다. 회의에선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방역체계로 격상하는 특급경보를 발령했다. 개성시 전체를 완전히 봉쇄하고 구역별로 격폐하는 결정도 내렸다. 해당 군 지휘관들도 처벌됐다. 북한은 사람과 물자의 유입을 일절 금지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최우선시한 조처였다. 공무원 사살도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다. 지나친 자기보호가 생명 경시로 귀결된 것이다.

8월 내려진 ‘국경 지역 사살 명령’

남한 군 당국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였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의 수산사업소 선박이 등산곶 앞바다에서 실종 공무원을 발견했다는 정황을 입수한 시간은 9월22일 오후 3시30분이었다. 같은 날 밤 9시40분, 북한군이 실종자에게 사격을 가하고 20분 뒤 “시신을 불태웠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 6시간 사이에 군 당국은 사실상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그렇게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군 관계자의 해명이었다. 실종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다면 북쪽이 신병을 확보해 체제 선전에 활용하거나, 단순 표류자였다면 남쪽으로 돌려보내려 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는 관성에 따른 안일한 판단이었다. 이와 관련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 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공무원 피격 사건이 일어나기 열이틀 전인 9월10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화상회의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에 1~2㎞의 새로운 완충지대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 북한 특수작전부대가 배치됐으며 (무단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에 대한) 사살 명령(shoot-to-kill order)이 내려졌다”고 했다. “북한 정권이 코로나19 위험을 낮추는 데 집중”한 조처라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 사살 명령을 지난 8월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브럼스는 북-중 국경 지역을 특정했지만, 북한의 이러한 특단 조처가 탈북자의 개성 진입 사건과 맞물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무단 침입자에 대한 사살 명령이 북-중 국경 지역에 한정된 게 아님이 합리적인 가정이었다. 이에 따라 남한 군 당국도 평상시와 달리 긴급하게 대처해야 했고, 그럴 수도 있었다. 남북 사이 직접적 통신망이 단절됐다고는 하지만 다른 방법은 있었다. 9월22일 오후 3시30분, 실종된 남쪽 공무원이 북쪽 선박에 발견됐다는 정황을 국제상선 공통망을 통해 북쪽에 즉각 알리고 구조와 신병 인도를 요청했어야 한다. 북쪽이 직접 구조에 나서기 어렵다면 공동 구조를 제안할 수도 있었다. 남쪽 군 당국에 따르면 북쪽도 발견 초기 구조하려는 정황이 있었다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이번 사건에 대해 북한 지도부는 통일전선부 통지문을 통해 신속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남북관계의 추가적인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북쪽의 후속 조처는 실망스럽다. 남쪽 정부가 요구한 공동조사와 군통신망 복구·재가동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여전하다. 북한의 납득할 만한 후속 조처가 조속히 나와야 할 이유다.

비공개 전제로 유가족에게 설명할 수도

문재인 정부 역시 북한의 성의 있는 호응을 계속 촉구하면서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9월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유가족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국민에게도 송구함을 표했다. 하지만 유가족의 울분과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유가족은 실종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다는 정부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대북 첩보와 정보 수집 방식이 노출될 수 있다며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밝히기 꺼린다. 사정이 이렇다면,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가 유가족에게 비공개를 전제로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설명할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통령이 유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다.

남북 당국은 민심과 유리된 남북관계의 회복과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안 그래도 2018년에 본격화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남북관계 개선 조짐이 2019년부터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북한에 대한 국내 여론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도 나빠지고 있었다. 이번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남북 당국을 향한 여론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악화한 여론은 남북관계 회복을 어렵게 하고 이는 곧 실효적인 재발 방지책을 만드는 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남북 당국의 각성을 촉구하는 까닭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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