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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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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자유 억누른 경찰버스 차벽

코로나19 빌미로 보수단체 집회 원천 봉쇄에 인권·법률단체 “과잉 대응” 비판
등록 2020-10-10 11:20 수정 2020-10-10 11:34
개천절인 10월3일 경찰버스로 만들어진 ‘차벽’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연합뉴스

개천절인 10월3일 경찰버스로 만들어진 ‘차벽’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도 방역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우려가 컸던 개천절 집회가 코로나 재확산을 유발하지 않게 철저하게 대기하여 빈틈없이 차단했습니다.”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5일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 방역의 성과 중 하나로 이틀 전 경찰의 ‘개천절 집회’ 대응을 들었다. 보수단체의 광복절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19 2차 확산의 계기가 됐던 8월과 달리, 이번엔 확실하게 사전 금지를 해서 개천절 광화문 집회발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박근혜 탄핵’ 집회 차단 뒤 3년 만에 차벽 재등장

문 대통령이 높게 평가한 완벽한 방역의 비결은 집회의 ‘원천 봉쇄’였다. 10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일대는 경찰버스 300여 대로 만들어진 ‘차벽’과 철제 차단막으로 둘러싸였다. 대규모로 투입된 경찰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도심 90여 곳에 설치된 검문소는 광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통제했다.

원천 봉쇄로 방역 효능을 경험한 정부·여당은 “대규모 도심 집회와 방역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10월6일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김태년 원내대표)는 원칙을 더욱 강조하며 보수단체가 또다시 예고한 10월9일 한글날 집회도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처라고 설명하지만 광화문광장에 차벽이 다시 세워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차벽의 상징성 때문이다. 2002년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차벽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단으로 오랫동안 활용됐다. 특히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목적의 차벽에 대해선 2011년 헌법재판소가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뒤에도, 경찰은 좁은 통행로를 확보하는 식으로 차벽을 계속 세워왔다. 이후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차벽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 집회를 부분 통제하는 차벽은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끝으로 사라졌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부터 ‘차벽’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던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또다시 광장에서 차벽을 마주하고는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08년, 2011년, 2013년 계속해서 차벽이 시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사실에 대해 유엔에 수없이 진정을 넣었어요. 그때 사진만 봐도 얼마나 끔찍해요. 그런데 이번에는 광화문광장을 차벽이 두 겹으로 쌌더라고요. (과거보다) 더 심하죠.”

법률 전문가들도 집회의 원천 봉쇄가 헌법상 과잉 금지의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공공 안전을 위해 개인의 표현·집회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집회를 아예 못하게 하는 과도한 방식으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걸 가지고 위헌이라고 단정하진 못하지만 좀 덜 제한적인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 (법 집행을) 하는 자체를 위헌이라고 하는 게 기본권 제한 과잉 금지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주요 광장 1인시위마저 ‘금지’

실제 개천절 집회 전 경찰은 공공 이익과 개인 기본권 사이 균형을 찾기 위해 다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크게 기울이지 않았다. 보수단체가 ‘1천 명의 대면 집회’ 대신 내놓은 ‘10명 미만 차량 집회’에 대해서도 대부분 금지 통보를 하고, 불법 집회 참여자는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운전면허를 정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규모 차량 집회에 대한 경찰의 ‘무관용 원칙’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와 52개 인권·시민·노동·사회단체는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정치적 우익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혐오세력이기도 하죠. 광복절 집회 때 일부 회원이 경찰과 간호사에게 침을 뱉고 역학조사를 거부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이들의 과거 행적이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해서 이들의 집회를 막을 수는 없어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했거든요. 만약 집회 내용이 ‘차별금지법 반대’나 ‘성소수자 반대’였다면 (인권단체의) 이런 입장도 안 나갔을 거예요. 혐오는 표현과 집회의 자유 대상이 아니니까요.”(명숙 활동가)

경찰은 광화문 일대를 지나는 일반 시민의 통행을 제한하고 신분증을 요구하는 한편,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닌 ‘1인시위’를 통제하기도 했다. 2015년 차벽으로 광장이 폐쇄됐던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 때 경찰 해산 명령에 불응했다는 등의 이유로 재판을 받기도 했던 권영국 변호사의 비판이다. “1인 표현은 법으로 규제할 수 없어요. 그런데 경찰은 ‘1인시위 방식으로 우회해서 다수가 광장에 모이는 것 아니냐’며 그마저 완전히 막았어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행위 자체를 위험성만 가지고 봉쇄하면 집회를 열 가능성이 도심에선 없어져요.”

이런 전면적 집회 금지는 4월14일 유엔 평화적 집회·결사 특별보고관이 발표한 ‘코로나 시기의 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한 10대 원칙’에도 배치된다. 여기엔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권리 침해의 구실로 사용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권고가 담겨 있다.

개천절 집회 이전에도 서울 도심 집회는 크게 위축됐다. 서울시는 2월26일부터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종로1가 도로 등 주요 광장과 거리를 ‘집회 금지 장소’로 지정해 참가 인원수에 상관없이 모든 집회를 막고 있다.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 뒤인 8월21일부터는 서울 모든 지역에서 10명 이상 집회를 제한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8월 중순 수도권 대규모 확진자 발생 뒤 방역 당국이 (100명 이상 집회를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를 발표했으나, 서울시는 3단계에 준해서 10명 이상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며 “기간은 10월11일까지인데 연장 여부는 앞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장이 닫힌 지난 7개월여 동안 수많은 목소리가 묻혔다. 집회 금지 지역에 있던 한국마사회 문중원 기수의 시민분향소,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자들의 농성장은 철거됐다. 이외 지역에서도 ‘10명 미만’ 기준을 맞추려 구청 단속에 항의하는 노점상들이 피켓을 든 곰인형과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인권활동가들이 서울시청을 찾아가 방역과 집회의 권리를 보장할 방법을 함께 찾자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인권단체 “방역과 집회 권리 보장 방법 찾자”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 활동가의 말이다. “2월 말부터 지금까지 (주요 도심 집회 금지는) 한 번도 안 바뀌었어요. 5월에 방역 조치가 잠시 완화되면서 박물관 문이 열리고 프로야구가 일부 관중을 맞았을 때도요. 정부가 ‘경제와 방역은 양립할 수 있다’면서도 ‘집회와 방역이 양립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집회를 중요하지 않게 본 거예요. 그런데 당사자와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어떤 의지를 표현하는 집회는 코로나 위기 시대에 더 필요할 수 있어요. 방역이 제일이라는 정부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요구를 담아낼 것인지 이야기해야 해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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